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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Dec 13. 2023

감정의 보릿고개를 겪다

경기가 좋을 때 전세금을 무리해서 높게 받았던 게 화근이 되었다. 부동산 경기는 곧 가라앉았고,  가지고 있는 아파트의 전세금은 곧장 이전 시세로 돌아가 버렸다. 게다가 더 있을 것 같던 세입자마저 딱 2년만 채우고 이사를 가겠다고 했다. 당장 돈이 급해졌다.


그동안 가지고 있던 현금은 아파트 앞에 새로 분양하는 오피스텔의 중도금으로 넣었고, 이것도 잔금을 치러야 했다. 갑자기 한 두 달 사이 근 2억 가까이의 금액이 필요하게 되었다. 있는 대출 없는 대출 마통까지 모두 끌어 쓰고도 모자란  돈은 부모님께 손을 벌렸다. 이번에도 도움을 주시긴 하셨지만 이제는 우리를 보는 시선이 영 탐탁지 않아 하신다.


"이제는 돈을 모으는 재미가 없네. 모인다 싶으면 누가 홀랑 갔다 쓰고 홀랑 갔다 쓰고"

"엄마... 미안해요 이번에 급한 불만 끄...."

"됐어. 말이나 마. 맨날... 말만.. 말만.. 지킨 게 없잖아?"

"아고. 미안해요.. 엄마.."


못난 아들은 둔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도 미안해하신다. 아들이 혹 너무 기죽어 살까 필요하다는 돈을 거절을 못하신다. 급한 불은 껐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아내의 사업상 비수기가 겨울이다. 보통 모아놓은 돈으로 야금야금 빼먹으며 버티는 계절이다. 문제는 이제 빼먹을 돈이 없다는 것. 우리는 모든 돈을 깔고 살고 있는 셈이다. 자산이 없는 건 아닌데 써야 할 현금은 막혔다. 정말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 넣어다는 것은 마음의 여유도 털어 넣은 것과 같다.


부부는 모든 일에 예민해졌다.


"어떻게 좀 해보라고. 쫌 뭐라도 쫌 해야 할거 아냐..?!"

"아니 이렇게 손발 묶여 있는 사람한테 갑자기 뭘 어떻게 하라고 그래? 그리고 그동안 내가 뭘 말하면 당신이 듣기는 했니? 문제 생겨야 내 말이 들리니?"

"언제까지 집에서 이렇게 있을 건데? 이제 더 늦으면 아예 기회도 없어. 알아 지금이 이제 마지막 기회라고?"

"하... 말을 말자 정말.."


갑자기 새로 문제가 된 일들은 없었다. 그저 서로에 마음에 바늘 하나 꽂을 여유가 없어 그랬을 뿐. 부부는 같은 이유를 다른 감정을 담아 싸우는 것뿐이다. 아니라 여기다가도 모든 게 남 탓 같고, 그렇지 않으면 모든 칼날을 자기에게 꽂아야 하는 그런 상황이니까. 양보할 여유가 없는 것뿐이다.

 


여유가 있어야 용서가 되고, 이해가 된다. 내가 조금 손해를 보아도 넘어갈 수 있는 것은 그래도 먹고 살만은 하니까 할 수 있는 셈법이다. 여유가 없는 날의 싸움엔 서로의 말이, 감정이 더 날카롭게 상대방을 할퀸다. 그렇게 싸운다고 나아지는 것 하나 없고, 해결되는 문제 하나 없는데 서로는 순간의 억울함과 분노의 끝을 서로에게 향한다. 한바탕 쏟아부어도 만족스럽지가 않다. 순간 쏟아내었다는 생각에 시원함을 느낄지 모르지만 끝은 찜찜하다. 차라리 안 했어야 했던 말들이 공중에 떠다니던 순간들이 떠올라 얼굴도 달아오른며, 상대방이 내게 했던 같은류의 말들에 또 서운함과 분노가 이끌려온다


경험상 경제 상황이 좀 나아지면 이런 다툼이 줄어든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득이 천만 원 이상이 되는 가정의 이혼 비율은 그렇지 못한 가정의 이혼 비율보다 낮은 편이다. 먹고살만하면 싸움도 덜하고, 싸워도 해결도 빠르다는 건지. 이제는 감정도 소득에 따라 참을 수 있는 수준이 달라지는 건가 싶다. 이해가 되면서도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어느 정복자가 넓은 영토를 정복한 후 대장장이에게 멋진 반지를 주문하며 글귀를 넣어주길 요청했다.


"내가 이 승리에 교만하지 않고, 다가올 위기에 준비하고 극복할 수 있는 문구를 넣어주게"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 대장장이는 현자를 찾아 문구를 요청했고, 현자의 조언을 새긴 반지를 정복자에게 바쳤다. 정복자게 낀 반지의 문구는


- 이 또한 지나가리 -


지금의 영광도, 상처도, 슬픔과 기쁨 모두 지나간다. 영광에 끝이 있기에 영원히 자만할 수 없으며, 슬픔도 끝이 있기에 극복할 수 있고, 기쁨도 끝이 있기에 경계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보릿고개만 넘기면 된다. 모든 일은 끝이 있고, 어찌 되었건 지나가게 마련이다.

인간은 끝을 모르기에 두려워하고, 견딜 수 없어한다. 모든 일은 끝이 있다. 당장은 보이지 않더라도 지금 이 순간도 끝은 다가오고 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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