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쓸 버릇이 들었다. 잠을 잃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수면의 패턴이 완전히 뒤틀렸다. 한 달 정도 되었으려나 나는 요즘 저녁 8시면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는 자정 무렵에 깬다. 때로는 한 두어 시간을 더 잠들기는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새벽 1시에는 책상 앞에 앉는다. 그리고 한 밤을 보낸다.
딱히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은 없다. 가족들이 깰까 캡슐커피 머신 대신 인스턴트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고는 컴퓨터를 켜 앉을 뿐. 백색 소음이 그리운 날에는 캠핑 동영상을 틀어두거나 유튜브의 음악을 하나 재생시키고는 그저 앉아 있는다. 빈 여백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드디어 키보드에 손가락을 얹는다.
왜 나는 밤을 선택했을까?
젊어서 나는 올빼미였다. 미라클 모닝 따위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야간형을 넘어 심야형 인간이었다. 어둠이 주는 진중함을 좋아했다. 해가 지면 사람들은 좀 더 솔직해진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해가 진 이후에야 시작되었다. 나의 밤은 낮보다 더 빛이 났다.
어쩌다 나는 그 밤을 버렸을까? 갑자기 신데렐라처럼 통금 시간이 생긴 것도 아닐 텐데. 정확히 말하면 나는 밤의 시간을 버려둔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밤의 시간에 살고 있다. 저녁부터 심야까지 즐기던 밤의 시간을 심야부터 새벽까지로 좀 미루어 즐기는 것뿐이다. 덕분에 나는 밤 시간과 함께 미라클 모닝까지 경험하고 있다. 제법 새벽의 여명이 운치가 있다는 걸 느껴가고 있다.
밤을 좋아하는 이유는 감정이 풍부해져서다. 밤엔 작은 소리마저 더 크게 들린다. 감정도 더 크게 울리고 이어져 나의 글을 타고 내려온다. 한밤중의 글은 감성적이다. 때로는 너무 감성적이어서 한낮에 읽으면 손가락이 사라지곤 한다. 낮의 이성이 밤의 감정을 버거워하곤 한다. 그래서 한밤중에 쓴 글은 밤에만 읽어야 한다. 더 이상 손가락을 잃기 싫다면 말이다.
낮에 읽을 수 없는 글을 쓰기로 했다. 밤에 읽을 글은 한밤중에 마구 써 주어도 괜찮을 듯하다. 오히려 글쓰기 최고의 시간일는지 모른다. 감정을 타고 내려오는 정도 아니라 마구 뚝뚝 떨어지는 글을 쓰려고 한다. 작은 소리마저 증폭되어 감정을 마구 휘젓는 상태에서 나온 글. 거르지 않고 쏟아지는 거친 글. 평소 꺼내지 못한 비밀도 가벼이 꺼내어 써 내려가는 글들. 그런 글을 쓰고 싶다. 한밤중에 마구 쏟어내어 두고는 다음 밤이 올 때까지 읽지 않을 것이다. 밤에만 읽을 글. 낮에는 읽지 않을 나의 글은 밤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