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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Mar 04. 2024

압축된 밤의 시간들

밤은 짧다. 짧게 지나가는 듯하다. 

쌓아두었던 감정을 폭발시키는 주말의 밤도, 자신의 동굴 속에서 보내는 조용한 밤도 

밤은 금세 지나가 버린다. 물리적인 시간이야 다르지 않겠지만 밤을 보내는 우리들은 밤이 짧다고만 느낀다. 

자도 모자란 잠과, 지인들과 보내는 흥분된 밤을 우리는 충분하다 느낀 적이 거의 없다. 


즐거워도, 슬퍼해도 밤의 시간은 짧다. 


밤이 짧은 것은 순간순간의 찰나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인지도 모른다. 집중의 순간은 우리에게 여유를 주지 않는다. 많은 감정과 정보의 정수만을 모아 꾹꾹 눌러 기억하다 보면, 시간도 함께 압축된다. 그래서 밤은 점점 짧아진다. 


그런 밤의 시간을 길게만 가지고 싶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늘어나지 않는 시간들이 야속했고, 밝아오는 여명이 미웠다. 나 스스로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밤 시간을 너무도 쉽게 보내버리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좋아하는 만큼 아껴주고, 소중히 다루어야 했는데, 나는 그저 밤을 곁에 두고만 싶었고, 아끼는 법을 알지 못했다. 나에게는 모든 것을 나눠줄 것만 같다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었다. 


밤을 즐기기엔 밤은 마냥 친절하지만은 않다. 


밤은 그저 자신의 곁에 나의 자리를 내어주지만, 

달콤한 것은 원래 그 위험함을 꼭꼭 감추어 두곤 한다. 달콤함에 속아 밤을 탐닉하게 되면 우리는 그 대가를 충분히 치러야 한다. 밤을 즐긴다는 것은 두더지나 지렁이처럼 땅 속으로 깊은 굴을 파고드는 것과 같다. 깊이깊이 더 깊은 곳을 탐하다 보면, 주위가 보이지 않는다. 정말 어둠 속에 갇혀 버린다. 주변의 것을 잃게 된다. 나의 밤은 그랬다. 한없이 내어줄 것 같다가도, 내 손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반짝이는 흔적만을 남겨두고는 소문도 없이 사라지곤 했다. 


우리는 밤을 항상 살아내지 못한다. 어쩌다 밤의 시간을 즐길 때면, 항상 크건 작건 이벤트가 있기 마련이다. 밤을 항상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내가 느끼는 밤이 없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밤은 때때로 찾아오는 작은 축제와도 같았다. 화려한 볼거리가 있어서가 아니라. 어찌 되었던 나를 즐겁게 만들어주는 거리가 존재했다. 적막과 집중, 차분함 등을 밤에게서 얻을 수 있었다. 밤을 만나기 위해서는 충분히 준비를 해 두거나, 각오를 해야만 했고, 어느 쪽이 되었건 밤을 만나는 순간에 집중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각오와 함께 밤의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와 나누어도 충분할 양의 밤이었지만 나는 욕심을 부렸다. 그래봐야 내 것을 온전히 챙기는 것도 다 하지 못할 정도로 밤은 언제나 여유가 있었다. 단지 내가 조급했을 뿐이다. 내게 밤의 기억은 점점 작게 압축되어 간다. 집체만 한 기억이 어느 세월에 컨테이너 정도로, 또 다른 날엔 사과상자정도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처음에 얻은 기억이 누락되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압축되어 밀도가 높아졌다고나 할까? 


밀도 높은 밤의 기억은 어쩌면 그것을 꺼내어 보는 지금의 내 여유와도 상관이 있는지 모른다. 마치 영화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스킵하듯 나의 밤도 그렇게 스킵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스킵되며 걸러지는 밤의 조각들은 점점 작아지고 순도가 높아져 이제는 가방에 넣어 다녀도 될 정도가 되었다. 나는 이렇게 고르고 고른 밤의 기억들로 낮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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