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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Mar 01. 2024

밤이 짧아진다.

오랜만에 찾은 밤이 짧아진다. 동지를 벗어난 어둠은 그 힘을 잃고, 해가 짐도 해가 뜸도 점점 그 길이를 잃어간다. 밤이 짧아지는 만큼 새잎의 봉우리는 살이 오르기만하고, 차가웠던 바람도 어느 순간 냉정함을 내려놓는다. 


밤이 짧아지는 만큼 나의 고민은 길어만 간다. 한 줄을 쓰기 위해 한참을 키보드에 손을 얹고는 빈 여백만을 바라보다 또 가만히 손을 내려놓는다. 생각의 끝자락을 잡아 여백 위로 옮기려던 내 바람은 짧아진 밤을 따라 어디 먼 곳으로 달아나는가 보다. 


밤은 유달리 소곤소곤 떠들곤 한다. 바람도, 차 소리도, 내 걸음걸이도 낮에는 들리지 않던 소음들마저 소곤소곤 잘도 귓가에 울려놓는다. 그럼 나는 그 소리를 따라 생각에 꼬리를 물고, 지나간 일들 속에서 글감을 찾으려 머릿속을 헤아리고 끝자락이라도 잡으려 발버둥을 친다. 


잡히지 않는 생각, 길어만 지는 빈 여백은 밤을 여명으로, 아침으로 밀어내고는 하루하루 짧아지는 꼬리를 감춘다. 그럼 나는 미처 잡지 못한 글감에 또 빈 화면을 저장하지 못한 채로 노트북을 덮는다. 


짧아지는 밤


점점 짧아지는 밤


짧아지는 밤의 길이만큼 나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빈 여백은 늘어져만 간다. 

밤이 길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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