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46.다른곳에서볼수없는글을쓸것

by 성준

p 154-156 <김은경,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내 것이 아닌 무언가에 기대어 사람들의
관심을 얻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와 상관없이
이것이 명백한 사실입니다.


난 천만 영화를 늦게 보는 편이다. 극장에서 보는 일은 드물고, 천만이 넘고 극장가에서 영화를 내리고 티브이나 OTT를 통해서 보곤 한다. 이상한 습관이다. 이런 요상한 고집으로 브런치에서 아주 구독자가 많으신 분들의 글을 일부러 피하곤 한다. 습관이기도 하고, 왠지 모를 질투에 글에 대해 오해할까 일부러 거리를 두곤 한다. 그런데 그렇게 피하려 해도, 천만이 넘는 아니 웬만한 흥행한 영화는 모두 관람했고, 브런치의 글들도 하나하나 다 읽곤 한다. 단지 최근 게시물이 아니게 되었을 뿐이다.


이런 삐뚤어진 마음에도 그런 글들을 읽으러 가는 건, 단 하나다. 그 이야기는 거기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글에서는 느낄 수 없는 긴장감, 따스함, 유려함, 기타 등등의 긍정적인 요소들이 그 글에만 있기에. 나는 '나도 쓸 수 있는데...'라고 혼자 투덜거리며 글을 읽곤 한다.


욕 하면서 보는 아침, 주말 드라마들, 매번 그 나물에 그 밥이라면서도 챙겨보는 사랑과 전쟁들. 모두 그 콘텐츠에만 담긴 감성들이 있다. 무엇이 되었던 그 매력 하나가 우리를 그 앞으로 끌어다 앉힌다. 거부할 거라 하면서 보는 안티팬처럼 빠져든다. 이 모든 것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글이며, 영상이며 작품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것은 창작하는 사람에게 있어 최고의 찬사인지도 모른다.




창작의 고통은 으레 두 가지에서 시작된다. 무엇을 쓸 것인가? 어떻게 쓸 것인가?. 내가 고민하는 이야기는 어디선가 읽은 것 같고, 너무 뻔한 결론도, 식상한 교훈도 재미없다. 무언가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클래식하면서도 캐주얼한, 컴플리케이트 하면서도 심플한 주제를 찾아야 한다. 그렇게 고민 고민을 거친 주제들도 막상빈 화면서 옮겨 적으려면, 자꾸 꼬인다. 문장이 안되고, 말이 안 된다. 기껏 적어놓은 문단도 읽다 보니 앞뒤가 따로 논다. 우와 총체적인 난국이다. 이런 류의 고통을 이겨내고 한 편의 글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모두가 겪듯 별 반응이 없다. 나의 글은 어디선가 본 듯한 글 같다. 못 쓴 것은 아닌데 따악히 재미도 없고, 톡톡 튀는 무언가가 없다. 뭐... 나쁘지는 않으니 좋아요는 누르고 간다.


그리고 읽고 싶은 글은 따로 찾아서 간다. 특이할 것 없는 소재인데도 재미가 있다.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이 되면서도 응원하면서 읽어간다. 다 읽고 나면 좋아요는 기본으로 눌러주고, 여운이 가시기 저에 작가님께 응원의 댓글을 한 줄 놓고 간다. 그 댓글은 내 글쓰기 보다 더 고민하고 압축한 글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는 나의 평소 지론대로라면, 이런 경험들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겪은 일이라 생각된다. 나만 특이한 것은 아닐 것이라 강력하게 믿는다. 우리는 결국 소재에서건, 혹은 글에서건 희소성이 있는 혹은 필력이 있는 수준으로 글을 써야 하는 것이다. 메인에 걸린 글들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참신한 소재의 이야기, 첫 문단만 보아도 다음이 궁금해져 스크롤이 내려가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이 걸리는 것이다.


나는 천만 영화, 메인의 글들을 잘 읽거나 보지 않는다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들을 찾아보고 난 후부터 글도, 이야기를 찾는 것도 좋아졌다. 주제나, 소재를 찾는 일에 좀 더 유연해졌고, 다른 사람의 문장을 흉내 내어 좀 더 감각적이고 편안한 문장을 써 가곤 했다. 나의 글은 좋아졌다. 어떻게 자신하느냐고? 내 초창기의 글을 다시 읽어보니 형편없었다는 것을 알았고, 지금이 그때보다 성장했단 것을 반증했다. 오늘도 고민한다. 새로운 시각과 시점, 읽고 싶은 글에 대해. 나 만의 글에서 전달해 줄 수 있는 매력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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