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라내야 할 것 같지만 차마 그러지 못할 때는 일단 잘라내 봅시다.
이 글에 대한 부끄러움은 내일의 나에 몫일지니...
최근에 들어서야 퇴고에 좀 더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한동안 글쓰기를 쉬어가면서, 다시 글을 쓰려 노력하면서 약간의 경로수정 같은 셈이다. 꽤 단순하지만 심각한 이유로 글쓰기의 경로가 바뀌었다. 만약 당신이 스스로의 글쓰기에 대한 성장에 의심이 든다면, 한참 전에 발행한 글들을 다시 읽어보시길. 브런치에서 100편 이상 글을 쓴 혹은 6개월 이상 글을 쓴 작가라면, 초기에 발행된 글들을 찬찬히 읽어 보시길 바란다. 아마 당신의 성장을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좋은 말로 글쓰기의 성장이요, 다른 말로 초창기의 글은 많이도 부족했다는 말이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본 나의 오랜 글들은 내가 그동안 참 열심히도 쓰긴 썼구나 하는 반증 같았다. 부끄러운 글도 있었고, 아쉬운 글도 있었다. 성의가 부족해 보이는 글도 있었고, 열정만 넘쳤던 글도 있었다. 어딘가 아쉬운 부분 한 군데는 꼭 눈에 보였다.
그때는 왜?라는 당연한 질문은 삼가자.
내가 퇴고를 하지 않았거나, 그때보다 지금의 나의 글솜씨가 더 나아졌거나. 둘 중 하나겠다.
나는 전자가 80% 후작 20%쯤 되는 것 같다. 나의 글쓰기도 아주 조금은 더 나아졌다. 내 글을 읽고 스스로 부끄러움을 아는 작가라면 성장한 것이 분명하다. 의심한다면 다시 말하지만 한 번 시도해 보시길 추천한다. 당신의 초창기 글에 만족한다면, 당신은 천재이거나, 성장하지 않은 사람이다.
부끄러움의 당연한 수순은 "지금이라도" 퇴고를 하는 것. 문장을 잘라내고 앞 뒤의 문맥을 살피고, 적절한 단어가 자리 잡고 있는지 주소를 잘 못 찾은 것은 아닌지를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퇴고를 하면서 느낀 분명한 사실 중의 하나는 "문장을 아까워하지 말자"였다. 꼭 거기에 있어야 할 문장도, 돌아보니 그 순간의 감정일 뿐이었다. 열에 아홉은 고치고, 고친 문장이 더 낫다. 모든 것의 근거는 과거에 쓴 우리의 글에 있다. 매번 충분하다 느끼는 글이 증거다. 과거의 글들을 고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창피해하지 말자.
글을 썼던 순간보다 당신이 성장한 탓이다.
그 순간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졌기에 당신은 글을 고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성장의 증거라는 퇴고를 싫어할 일이 있을까. 오히려 고치고 싶지 않은 것이라면 잠시 쉬었다 가자. 글을 썼던 그 순간보다 당신은 전혀 성장하지 않은 탓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