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149-151 <김은경,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식상한 교훈은 누가 말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흔한 메시지를 담고 있고,
노골적이며, 그래서 어쩐지 잔소리처럼 느껴집니다.
책을 읽는 입장에서 글을 쓰는 입장에서 무언가 얻어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의심은 항상 따라오기 마련이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을 읽을 때는 그 이야기가 좋아서, 작가가 표현하는 인간상이 좋아서, 캐릭터가 사랑스러워서 읽게 된다. 애써 교훈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쓰는 입장에서는 때론 내 글에서 무언가를 얻어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곤 한다. 때로는 억지로 그 교훈을 집어넣으려 애를 쓰기도 한다.
글에는 교훈이 있어야 할까?
이는 문학과 비문학 작품의 목적과 기능에 대한 오랜 논쟁이기도 했다. 아직도 진행 중인 논쟁이다. 작가의 의도, 독자의 기대, 글쓰기의 역할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책에는 교훈이 있어야 한다. 읽으면 무언가 남는 게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책을 통해서 교육적인 가치를,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가치를 추구한다면 책에서는 무언가 배울 점이 있어야 한다. 독자가 삶의 중요한 교훈을 배우는 데 책만 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사회적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결국 세상의 변화를 이끌게 된다는 것이다. 또 책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으로,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을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 반대의 입장도 있다. 글을 예술로서 바라보는 것이다. 예술은 자유로운 표현일 뿐이며, 모든 작품이 교훈이나 메시지를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창의성을 탐구하고, 독자는 다양한 해석으로 개인적인 의미를 찾게 된다. 이로서 글의 의미와 가치는 독자에 의해 결정된다. 교훈을 강조하는 것은 작가의 의도가 독자의 개인적 해석과 경험을 제한할 수 있게 된다.
결국 그 몫은 쓰는 자, 읽는 자 각자의 몫인 셈이 되어버렸다. 교훈이 담긴 글을 쓰고 싶은 작가는 그렇게, 자유로운 표현을 하고 싶은 작가는 또 그렇게 각자의 글을 쓰면 되는 것이다. 독자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글을 읽으면 되는 것이다. 일 년에 6만 권의 책이 나온다. 하루에 160권 정도의 책이 쏟아져 나온다. 그렇게 많은 책인데, 다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교훈이 있을 수도, 혹은 없을 수도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독서에 옳고 그름은 없다. 독자의 취향이 있는 것뿐이다. 작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신이 제일 잘하는 방식으로 표현하고, 독자가 그 책은 선택하며, 소비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그 소비에 정답은 없다. 얻기 위해, 혹은 단지 읽는 것이 좋아서 모든 것이 정답이다.
교훈이 좀 없으면 어떤가.
하루 160권의 책들이 다 교훈적이라면, 얼마나 새로운 교훈들이 쏟아져 나올까.
오히려 그것이 더 큰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읽고 싶은 글을 나의 방식대로 써 나갈 뿐이다.
오늘의 글은 독자가 읽는 방식으로 마무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