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53.OO일기는 좋은 기획

by 성준

p 173-175 <김은경,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요가를 다니고 있다면 요가일기를, 달리기 일기도 좋고, 미싱일기,
산책 일기도 좋고, 술, 라면등 뭐든 좋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기록에서부터 시작된다. 방학이 끝나는 날 몰아 쓰는 일기부터 우리는 글쓰기를 시작한다. 오늘 하루가 어떠했는지, 어떤 친구와 무슨 놀이를 했던지 시작해 "참 재미있었다"로 끝이 나는 일기로 우리는 글쓰기를 배운다. 때로 글이 써보고 싶어지는 때가 되면, 나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내 주변의 것들로 이야기를 채우기 시작한다. 하루의 보고 듣은 이야기들, 경험했던 이야기들을 소재 삼아 글을 쓰기 시작한다. 주변의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되면 참 쓸 것들이 많다. 하루종일 스치고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과 일들이 소재로 둔갑해 버린다. 타인과 주변의 이야기를 쓰다 보면 이상하게도 다시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진다. 정말 하고 싶은 말들을 찾기 시작한다. 몇 편의 이야기를 쓰게 되면 좀 더 긴 호흡의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나의 삶이 투영된 긴 글이 쓰고 싶어 진다. 일단 나는 그랬다.


긴 글. 혹은 연재를 시작하기 가장 좋은 방식은 일기를 쓰는 것이다. 하루의 기록이 아닌 내가 정기적으로 하는 그 어떤 것에 대해 하루하루 성장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조깅이 되어도 좋다. 독서가 되어도 좋다. 매일매일 정기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 어떤 일이 되어도 좋다. 그 작은 어떤 것이라도 일기의 주제가 될 수 있고, 기록이 될 수 있다.


일기의 가장 큰 장점은 내가 매일 해야 하는 것이며, 반복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제와 다른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약 설거지를 가지고 일기를 쓴다고 한다면, 어제의 설거지와 오늘의 설거지가 다른 나름의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바쁜 하루를 보내어 간단히 요기로 식사를 때운 날이면, 적어진 설거지 가짓수로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이다. 건강을 생각해 요리를 시작했더니 급격히 늘어난 설거지로 건강도 챙기도 자잘한 손 근육도 운동되는 그런 이야기를 쓸 수 도 있겠다. 새로 산 주방 세제가 이전에 쓰던 것과는 어떤 면이 다른지 장점을 비교하는 글이 나올 수도 있고, 예뻐 보여 산 텀블러가 씻기에는 아주 불편한 녀석이라 다음에 구입할 때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점이 생긴 일을 적을 수도 있다. 설거지를 주제로 매일 한 편의 글이 뚝딱 나올 것만 같다.


이렇게 글이 쌓이다 보면, 설거지가 더 이상 설거지로만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매일의 다른 점을 찾으려 할 것이고, 기록할 것이다. 기록이 쌓이면 내가 설거지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얼마나 설거지 스킬이 발전해 왔는지 알게 될지도 모른다. 글이 완성되는 순간쯤에 나는 이미 설거지에 대해 프로페셔널한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일기는 단순한 기록의 의미를 넘어서 하나의 성장기가 되어 줄 것이다.


우리의 일상과 하루가 단순히 보내는 날이 아닌 성장하는 과정으로 변하게 되는 것은 일의 과정이 변화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일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을 바꾸었다는 이유 하나로 우리의 일상은 일상이 아닌 성장기가 되어버린다. 일기는 글을 쓸 때의 가장 좋은 글감일 뿐 아니라 나를 변화시키는 가장 작은 한 걸음인지도 모른다. 다시 일기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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