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은 매일의 반복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은 아무리 얌전히 생활을 해도 먼지가 쌓인다. 아니 비어 있는 집도 하루하루의 먼지가 쌓이는 것을 보면 사람이 생활하는 유무는 크게 관계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물며 다섯 식구와 강아지 두 마리가 살아가는 집에서 하루 한 번의 청소기는 어쩌면 최소한의 환경개선인지도 모른다. 보통 식구들이 나가는 오전 시간이 청소기를 돌리기 제일 좋다. 아침 식사를 정리하고, 밤새 주무신 침대를 정리하고, 생존을 위한 옷차림으로 갈아입고 난 허물들을 정리해야 비로소 청소기를 돌릴 순간이 주어진다. 청소기를 돌리는 일상이 무엇이 새로울 것이 있겠냐마는 우리 집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청소기를 돌리기 전에 집안의 모든 불을 끈다.
보통 집안 불을 환하게 밝히거나,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을 맘껏 받아야 먼지가 잘 보일 것도 같지만 우리 집은 그 반대다. 그간 사용했던 청소기가 수명을 다 하던 날, 선이 없고 가벼운 무게의 새 식구를 받아들였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청소기 헤드에는 녹색의 레이저빔을 뿜뿜 하는 최첨단의 청소기였다. 바닥에 붙어 쏘아대는 레이저는 오히려 어두워야 먼지가 더 잘 보인다. 청소기가 지나간 자리와 그렇지 않은 자리가 확연히 태가 나는 이 청소기가 나는 좋다. 그래서 나는 청소기를 돌리기 전에 집안을 어둡게 만든다.
주방에서 시작하는 청소기는 생각지도 못하게 많은 먼지들을 빨아들인다. 매일 청소기를 돌리는 데 이렇게나 매일 먼지가 쌓이는 걸 보면, 우리 집 식구들의 생활이 꽤나 활기찬 것인지도 모르겠다. 주방을 지나, 식탁 아래의 먼지는 의자를 하나하나 순서대로 젖혀가며 먼지를 찾는다. 여자 셋이 외출 준비를 하는 안방에는 무슨 머리카락이 이렇게도 많은지, 막내의 침실에는 왜 이리도 먼지덩어리가 많은지, 사각형의 헤드를 코너에 맞게 방향을 잡으며 참 열심히도 왕복운동을 한다.
거실을 지나고, 또 건너방을 지나 내가 주로 글을 쓰는 작은 방에 이르러서야 청소기 돌리는 일이 끝이 난다. 한 번만 돌려도 먼지통이 가득 차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피부병으로 온몸을 긁어대는 강아지 주변엔 각질이 한가득하다. 내가 괜히 강아지 알레르기가 있는 게 아니다. 그래도 꽉 찬 먼지통을 비우고 며칠에 한 번씩은 먼지통도 물청소를 하는 날에는 집안도 꽤나 깔끔해진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미세먼지가 없는 날에는 환기를 위해 창을 열면 창을 타고 들어오는 맞바람도 기분 좋다.
청소기 돌리는 일이 끝이 나야 우리 집은 비로소 다시 환하게 밝혀진다. 오히려 밝아진 조명에 청소한 것이 덜 태가 나는 것이 신기하다. 그럴 때면 발바닥에 밟히는 무언가 작은 조각들이 사라졌다는 감촉으로 오늘의 청소가 제대로 되고 있음을 확인한다.
우리 집도 청소기를 돌리고, 아파트의 같은 라인, 위 아랫집 모두 청소기를 돌린다. 때때로 층간 소음으로 들려오는 청소기소리에 나만 이러고 있지 않다고 위안을 삼는다. 그들도 청소기를 돌리기 전에 불을 끌까? 문득 다른 집의 청소 방법도 궁금해진다. 아마 각자의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최적화된 방식으로 먼지를 제거할 것이다.
각자 비슷한 문제들을 안고 살아간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는 어른들의 말이 크게 틀리지 않았다고 점점 느껴가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차근차근 살펴보면 각자의 문제 해결 방법은 모두 같지 않다. 오히려 같은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들이 더 쉽게 보인다. 각자의 문제는 각자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세상을 경험하고, 해결하는 방식은 각자의 삶을 살아온 방식과도 비슷하고, 좀 더 그럴듯하게 표현하면 우리의 개성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나만 세상을 어렵게 살아간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남들은 쉽게 살아가는 세상을 나는 혼자 고민하고, 어렵게 방법을 찾고 있는 것 같아 소심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보자. 아파트의 위아래 집은 우리 집과 똑같은 구조와 평수의 공간이지만 각자 꾸미는 방법도 다르고, 청소하는 방법도 다르다. 우리 집에 청소하는 시간이 다른 집보다 한 참이 더 걸린다고, 좌절하지 않는다. 그저 다른 방식으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왜 다른 문제들은 남들이 쉽게 풀어간다고 의기소침해할까?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도 각자의 집안을 청소하는 것처럼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인데도 말이다.
타인이 살아가는 방식이 좋아 보여도 나에게 맞지 않는 방식일 수 있다. 다른 집의 청소기로 우리 집을 청소할 때는 지금처럼 방 안을 어둡게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조명을 켜고, 눈에 힘을 주어 먼지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이것은 타인의 방식일 뿐이다. 내가 가진 청소기로는 비효율적인 방식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조건과 상황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들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가진 청소기의 성능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정답일 수밖에 없다.
오늘의 청소기에서 얻은 교훈
타인이 살아가는 방식은 타인의 것. 내가 가진 청소기에 최적화된 방식을 찾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
때론 세상의 방식이 나에게 맞지 않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