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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Mar 19. 2020

12년이 지났다. 그래도 잊혀지지 않는다.

예정 시간보다 두 시간 정도 빨리 발표가 났다. 담담했다. 그냥 담담했었던 것 같다. 

2주간의 현장 평가 3-4일간의 합숙을 함께 보내며 나름 전우애가 생겼던 경쟁자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쟁자라고 해봐야 나를 포함한 6명 그중에 2명의 합격자를 뽑는 전형이었다. 


나름 자부심이 있었다. 서류 전형부터 계산하면 4-500대 1의 경쟁률의 입사 시험이었고, 그중 최종 6명의 명단에 올랐다. 그 8주간의 전형이 끝나는 날이다. 


-야~ 발표 났어 좀 일찍 올라왔던데? - 

-네?? 발표 났어요? 벌써? -

-오~ 축하해! 이제 최 PD라 불러야겠네! 축하한다!-

-예?? 저요?? 우와아와!! 저 된 거예요? 정말요? 형! 정말 감사합니다.-

-그려 수고했어 담에 보면 밥 한 번 사라-

-예?... 형은... 안.. 된 거예요?-

-.. 응 너랑 지연이랑 합격이야. 난 이번도 패스! -

-..... 형... 고마워요...-


무슨 오지랖이었을까? 5명 모두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선택받은 이에게는 축하의 메시지를  선택받지 못한 이에게는 위로의 말과 함께 저녁 술자리를 약속했다. 합격한 이가 오면 맘껏 분노하지 못할까 봐 슬퍼할 이들과만 약속을 잡았다. 떨어진 네 명 중에 1명은 도저히 참석하지 못하겠다며 거절하고, 3명이 모였다. 


오늘의 패자들 답게 장소는 포장마차였다. 

뜨거운 여름만큼이나 치열했던 인생의 중요한 시험이 끝이 났다. 

때마침 그 여름의 열기를 식히려는 듯 빗방울이 떨어졌다. 포장마차의 천막 위로 후드득.. 후드득.. 


빗방울이 천막에 떨어지고, 떨어지는 울림이 파동이 되어 상처 입은 자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술병이 늘어가고, 취해가고 마지막까지 점잔 빼던 우리들도 술병이 비어 가는 만큼 가슴도 비어져 갔다. 

가슴속의 한을 내뱉었다. 


-왜? 걔가 붙..은거야? 현장 평가도 그렇고 합숙도 그렇고!-

-..그래도 학벌은 제일 좋았지... 둘 다.. S대 출신이잖아-

-씨X 학벌 좋고 나이 어린애들 뽑는다더니...딱 그대로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걔는 아니지 않아? 차라리 형이면 수긍하겠어-


넋두리... 못 가진 자들의 혹은 실패한 자들의 넋두리.. 

긴 여름의 해처럼 긴 넋두리가 이어졌다. 웃었다가 울었다가 소리쳤다가 담담했다가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술자리는 끝이 났다. 

그와 함께 어떻게 끝날지 몰랐던 나의 입사시험이 끝이 났다. 

누군가 이야기한 한 여름밤의 꿈은 끝이 났고, 나는 또다시 백수가 되었다. 


그렇게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다시 자리로 돌아온 것뿐인데 세상은 달라져 있었다. 

내게 기대했던 주위의 시선과, 조금만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던 꿈을 놓쳐버린 자의 후회


한 발걸음. 마지막 그 마지막 순간에 필요했던 그 단 한걸음.

더 노력했다면 이룰 수 있지 않았을까... 손에 반쯤 쥐었던 나의 꿈은 

뜨거운 태양 아래 모래성처럼 내 손 안에서 흩어져 버렸다. 


그랬다. 


꿈은 사라졌다. 20여 년을 꿈꿔온 내 꿈을 손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놓쳐버렸다. 

차라리 닿을 수 없는 거리였다면, 차라리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면.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 나는 내가 꿈꿔온 모든 것을 잃었고, 


시간은 치유보다 그 아픔을 차곡히 쌓아두었다. 담담했던 하루가 지나고 

후회되는 일주일이 지나고, 미치도록 화가 나는 3개월을 보내고, 계절이 바뀌고 


뜨거운 대지에 눈이 쌓여서야 나는 주저앉은 자리에서 겨우 일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순간을 평생 잊지는 못할 것이다. 

12년 전 이야기지만 나는 지금도 화가 나 있다. 

그 순간의 나를 평생 용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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