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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Mar 22. 2020

익숙한 이별이란 없습니다.

-당신은 처형 병원에 한 번을 안 가...(서운하게....란 말이 줄었겠지요)-

-......-


 

당신의 서운함에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합니다. 


와이프의 언니는 암입니다. 벌써 8년째 

콩팥에서 시작한 암세포는 잘 버텨왔는데 조금씩 사람을 갉아먹고는 이제 폐로 림프관으로 머리로 

조금씩 삶을 집어삼키고 있습니다. 

구정이 시작될 때, 병원 입원을 앞두고 잠시 부탁한다는 아이들도 벌써 두 달 가까이 우리 집에 머물고 있습니다. 

1주일이면 될 거라던 입원과 진료는 60일을 넘겨버렸고. 하루하루 앞날을 예측할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아이들은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해맑게 웃고 떠들고 길어진 방학을 맘껏 누리고 있는데 

당신의 언니는 하루가 다르게 생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볼이 퀭한 광대와 앙상해진 손목, 항암을 위해 짧게 잘라버린 머리카락은 다 하얗게 세어버려 10년은 더 들어 보입니다. 힘이 없는 목소리와 흐려진 눈의 초점. 

입에 담는 것조차 끔찍한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금씩 조금씩 들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이 물었지요? 

왜 나는 처형의 병문안을 가지 않느냐고. 

당시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세월호가 가라앉던 그 해 동생을 잃었습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생각지 못했던 이별에 

참 당황했고, 어찌할 바를 몰랐으며, 슬픔과 분노를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옆에서 위로해 주는 지인과 친구들의 말조차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내 동생이 죽었다고.... 넌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데'라고 속으로 외칠뿐이었습니다. 


진심 어린 위로도 상처 받은 마음을 어루만져주지 못했습니다. 상처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처형이 병원에 입원하기 전 모두가 모여 이야기할 때 제가 말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안타까워하고, 맘 아파해도 와이프만큼... 가족들만큼 가슴 아프지 않을 거예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걸 할게요. 처형이 아이들 신경 안 쓰이도록 아이들 잘 돌보고... 돌볼게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거 같아요 죄송해요 - 


그날 이후 내가 돌보는 아이들은 5명입니다. 갓 돌이 된 사내아이와 6,10,11살 여자아이 13살 사내아이 나이도 다양합니다.  내가 처형을 보러 가기 위해서는 누군가 남아서 아이들을 돌봐야 합니다. 와이프가 돌봐야 합니다. 


나는 누군가 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와이프를 보내려 합니다. 나는 동생을 보낼 때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아무도 동생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했습니다. 예고 없는 이별이었으며, 누구도 원하지 않던 사고였습니다. 


가족들 모두 처형이 훌훌 털고 일어나리라는 걸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만약을 이야기한다면


와이프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갈 수 있는 시간을 와이프에게 양보하고, 그 시간만큼 더 가족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미리 내 동생에게 벌어질 일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하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어야 했었습니다. 


와이프가 느끼는 서운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지만, 최악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 조심스러워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습니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순간이지만 누구에게도 익숙해지는 이별은 없습니다. 



당신의 언니가 회복될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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