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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Mar 18. 2022

홍대 거리를 걸었습니다.

약속을 마포로 잡았습니다. 정확히는 홍대로 잡았습니다. 

결혼을 하고 분당에서 신혼을 시작하고, 방이동에 직장을 잡고, 강남권에서만 생활하다보니 

예전 학교 쪽으로 올 일이 없었습니다. 이직 이후에 커리어가 망가지다보니 일부러 선후배를 찾아 다니며, 소식을 나누기도 어려웠고, 아이들이 어리다는 핑계로 스스로의 동굴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마포에 일이 생겼습니다. 한 달여 쯤 마포를 오가는 일이 계속되다보니 가슴이 조금은 말랑해 진 것 같습니다. 일하는 곳에서 5분쯤만 더 가면 예전에 다니던 학교가 있고, 또 10여분쯤 가면 온갖 흑역사 가득한 거리가 있었습니다. 


한 달 쯤 일을 다녔습니다. 코로나도 있고, 그간 연락이 뜸했던 터라 누구 한 명 쉽게 부를 사람도 없었습니다. 말랑해진 가슴은 점점 넘실거리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몇 년 만에 연락을 합니다. 


반가워 하면서도, 경계하는 목소리가 느껴집니다. 보험도 아니고 자동차도 아닌데... 어찌보면 그 것 이외 내 욕심에 전화를 한 건 맞긴 하네요 


반 쯤은 졸라서 10여년 만에 약속을 잡았습니다. 

15-6년 전 학기 동기들과 숱하게 다녔던 고기집이라는데... 전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입니다. 

철길 옆은 이제 산책하기 좋은 길이 되어 있습니다. 금요일의 저녁은 코로나 시국도 다르지 않습니다. 

무엇이 좋은지 자꾸만 웃음이 납니다. 오랜 만에 만난 형도 그렇답니다. 


[내는 여기 엄~청 자주 왔거든. 너는 안 왔었다고?]

[어 형 나는 여기만 한 번도 못 왔었네. 말만 엄청 들었고]

[참... 여기가 내 청춘에 화려한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곳인데.. 여서 많은 일이 있었지]


엊그제 점을 빼 술을 못마신다는 형인데 눈이 촉촉해 집니다. 


[나도 오랜만에 여 오거든 근데.. 기분이 좀 이상타]

[그치 나도 그래...]


40대가 넘은 아저씨 둘이서 고기집에 만나 소주를 마시며 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우리의 가장 화려했던 날들, 살아가는 날들, 그리고 살아갈 날들의 이야기들.. 그랬다. 


그런데 오늘은 그 중에서 우리들의 가장 화려했던 날들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만났던 옛 친구들의 이야기, 술을 진탕 마시고 밤을 세워 거리를 쏘다니는 이야기들, 첫 사랑인지 아무도 모르지만 지나간 사랑 이야기들


한 사람은 마시는 술에 취하고 

다른 사람은 나누는 이야기에 취하는 밤은 시간이 너무도 빨랐다.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워 홍대 거리를 걷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가 내려다 보이는 2층 술집 창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어리다는게 예쁘다는거... 알겠네]

[...그치 형...나도 느끼는게 예쁜것도 아닌데 예뻐보이네...여자건 남자건..]

[...우리도 ... 그랬겠지?]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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