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력 있는 인물의 글을 인용하는 것은 내 글에 좋은 영향을 줍니다.
인생 마흔은 불혹이라 했고, 쉰은 지천명이라 한다.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를 지나 하늘의 명을 깨닫는 나이가 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어느 정도 인생의 가치 판단과 자신의 인생에 대해 완성형의 모습이 갖추어진다는 이야기 인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를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아직 약관을 지나 이립을 갖추었는지 자신 없는 모양새다. 스스로에 대해 겸손한 것인지, 박한 평가인지도 모른다. 불혹은 아니고 그냥 마흔을 지나고 보니 조금은 겸손한 편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적을 덜 만들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인생에 있어 내 편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라 믿는다. 싸움을 싫어하기도 하는 성정이기도 하고, 관계의 스트레스에 취약한 편이기에 스스로 적을 두려 하지 않는다. 이에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다.
누군가는 손해 보는 성격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손해 보는 일도 많다. 그러고 보면 조금 드세고 싸우기를 피하지 않는 성격이 좀 더 많은 이득을 얻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끝까지 놓지 못하는 믿음 중 하나는 조금 손해 보듯 살아가는 것이 결국 얻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이다.
어찌 이런 셈이 맞느냐 의심할 수 있다. 손해 보는 것은 손해 보는 것이 아니냐는 말도 맞을 수 있다. 조금 더 크게 보자면 인생은 단 한 번과 짧은 순간의 셈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것이 승리 중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는 순간의 이익을 집착하는 대신 양보하고 타협하는 과정에서 더 큰 성공과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을 지키며 사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순간의 손해를 감수하는 것은 당장 속이 쓰리다. 다른 이의 이익을 온전히 축하해 주기에 내 맘 속에 상처가 생기기도 한다. 때로는 포기해야 할 이익이 당장의 내 삶에 큰 요소가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을 다 양보해서 살아갈 수도 없다. 균형이 필요한 셈이다.
삶의 어떤 부분에 의미를 두느냐에 따라 이런 삶이 쉬울 수도 아니면 고난의 연속이 될 수도 있다. 평온하고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약간의 손해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일이다. 그들에게는 다툼 없는 삶이 더 중요한 것이다. 또 어떤 이에겐 당장의 이익을 손해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물질적인 가치가 더 우선시될 수도 있다. 그들에게는 손해를 감수하는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더 큰 위협이 될 수도 있다. 각자의 선택인 셈이다.
어떤 삶이 정답인지는 모른다. 각자의 인생은 각자만의 답이 있을 뿐 공통된 잣대나 평가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저 자기만족의 정도차이인지 모른다. 하늘의 명을 깨닫는 것 또한 각자의 답을 찾아가는 것인지 모른다. 세상에 정답은 정해져 있지 않았고, 내 삶의 문제에 내가 원하는 답을 내어 놓을 뿐이다. 그 답의 옳고 그름 또한 각자의 판단에서 결정될 것이다.
나는 나의 답을 정해놓았는지 모른다. 내가 정해 놓은 답을 옳은 답으로 만들기 위해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정답이 옳다고 느끼는 순간까지 나는 그 길을 갈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원하는 것은 답을 찾는 순간이 아니라,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서 있는 것인지 모른다. 내가 믿고 있는 길 위해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스스로의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