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의 영향을 받아 원치 않는 글쓰기 습관이 생겼다면
더 많은 표본을 접하면 됩니다.
사람은 그릇이다. 자신의 모양에 따라 담아내는 것의 모양이 달라진다. 또 어떤 것들이 담기느냐에 따라 그 용도 또한 달라진다. 그릇의 생김새도 중요하고 동시에 담아내는 것의 종류도 중요해진다. 보통 우리는 우리가 보고 듣고, 읽는 것으로 담아낼 것을 받아들인다.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것을 보고 듣느냐에 따라 우리의 그릇에 담기는 것들이 달라지는 셈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고운 말을 쓰고, 예쁜 말을 사용토록 강조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말하고 듣는 것에서 우리에게 담기는 것들이 정해진다.
맹모는 그래서 세 번의 이사를 다녔다. 아이에게 좋은 것만 듣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실의 대한민국은 이 성어가 약간 변형되어 때로는 높은 교육열을 보이는 부모들을 비꼬는 말로도 사용되긴 하나, 근본적으로는 보고 듣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어린 시절 좋은 교육을 받지 못했다면, 혹은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못난 것들만 담아버린 상자가 된 것일까? 맹모의 논리대로라면, 좋지 못한 환경에서 좋지 못한 영향을 받았음은 분명할 것이다. 우리는 한 가지 고려하지 못한 것이 있다. 그릇에 어떤 것이 담기느냐가 중요한 동시에 그릇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중요하다. 네모난 상자에는 무엇이 담겨도 네모난 모양이 되며, 동그란 그릇에는 동그란 모양으로 물이 담긴다.
환경뿐만 아니라 우리의 성정 역시 중요한 이유가 이것이다. 우리는 똑같은 물을 담아도 각자의 모습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과거의 좋지 못했던 환경 속에서도 꼿꼿한 대나무가 자랄 수 있고, 진흙 속에서도 고고한 연꽃이 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제껏 우리가 글을 써오는 과정은 대부분 본인의 경험과 삶에서 시작될 것이다. 내가 살아왔던 삶 속에서의 일들을 그간 내가 사용하던 언어와 말로 글을 남기는 것이다. 때때로 현재의 나의 글쓰기가 만족스럽지 못할 수도 있다. 점점 좋은 글을 읽고, 많은 글을 접하면서 자신의 글이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더 나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들기도 한다. 지난날의 글들을 다시 한번 읽었을 때 아쉬움을 느끼는 경험을 종종 했다면, 당신은 발전하고 있고, 발전하고 싶은 것이다.
더 나은 글을 쓰고 싶다면 내가 가진 것들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것의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가지고 있는, 내가 담고 있는 것들을 변화시켜 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고, 접하지 않았던 더 새로운 경험을 하거나, 참고할 만한 더 좋은 글을 접하는 것이다. 나의 글은 내가 가진 것으로부터 나오니, 내가 가진 것을 더 다양하게 만드는 것이 올바른 정답일 수밖에 없다.
때로는 가장 간단한 것에 답이 있다. 나의 부족한 부분은, 내게 부족한 부분이며, 이를 내 안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만큼 어렵다. 내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나의 바깥에서 찾아보자. 내 빈 곳간을 채워줄 너른 들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