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떤 연유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건
이 글은 저자가 자발적으로 쓴다는 것을 전제로 시작해야 합니다.
글을 쓴다고 타인에게 말할 때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 왜 글을 쓰는 거야? 작가가 되려고?-
맞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어 글을 쓴다. 글을 쓰는 것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나는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이 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대부분의 작가들은 나와 같지 않을까? 이곳은 글을 쓰라고 강요받는 곳이 아니다. 모두가 글을 사랑하는 마음에 힘겨운 테스트마저 통과했던 사람들이다.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다 보면, 그들이 얼마나 글을 사랑하는지, 자신의 삶을 글로 옮기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애정하는지 엿보인다. 참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삶을 글이라는 도구로 써 내려간다. 잘 표현하지 못하지만 속으로는 언제나 응원하고 있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스스로 세운 작은 목표가 있었다. 글로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만족이 아닌 속물적 일지 몰라도 '팔리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도 꾸었다. 물론 아직도 그 꿈은 가지고 있다. 꿈이란 때로는 실현 가능하지 않아 보일 수 있다. 하루에 한 줄도 쓰지 못하는 모습이나. 다른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내 스스로의 재능이나 노력이 하등 보잘것없어 보이고,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세상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독특한 사람들도 많고, 그 이야기를 재미있게 써 내려가는 사람들도 많다. 게다가 꾸준함마저 겸비한 사람들도 많으니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 어쩌면 당연해 보일 수 있다.
불가능해 보이는 꿈일지라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나는 여전히 작가를 꿈꾸고 있다. 나는 왜 이루지 못할지도 모르는 꿈에 매달리고 있을까?
내게 꿈이란,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다.
어린 시절 너의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그리 큰 고민 없이 대답을 했다. 나는 신문기자가 되고 싶었고,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는 PD가 되고 싶었고, 어느 날에는 멋진 회사원이 되고 싶었다. 꿈은 시시때때로 바뀌기도 하고, 변하기도 한다. 모든 꿈을 다 이루며 살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꿈을 가지고 있는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막연히 그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기자가 되고 싶을 때는 신문을 좀 더 꼼꼼히 읽어 나갔고, 과학자가 되고 싶었던 시절에는 교내 과학반에 지원해 보곤 했다. 회시원을 꿈꿀 때는 학점에 신경을 쓰고, 시사 상식이나, 대회 활동에 집중했다. PD 가 되고 싶었던 때는 여러 나라의 드라마들을 몰아보기도 하고, 끙끙거리며 기획안이나, 작문을 연습하곤 했다.
나에게 꿈이 없었다면, 이런 경험을 모두 할 수 있었을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 하루를 살아가는 방식 말고,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무언가를 위해 준비하거나, 대비할 수 있었을까? 성공의 여부를 떠나 꿈이 있었기에 나는 그 많은 일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나는 기자가 되지도 못했고, 과학자가 되지도 못했다. 다행히 PD가 되었고 회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기자가 되지 못했다고, 과학자가 되지 못했다고 그 꿈을 꾸는 동안 내가 경험했던 일들은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을까? 오히려 그간의 경험이 때때로 내가 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키가 되기도 했고, 장애물을 넘어서는 발판이 되어주기도 했다. 꿈은 보이지 않는 곳에 위치한 무지개 일 수 있다. 그러나 무지개의 끝을 믿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 우리는 많은 경험을 달리 할 수 있다. 당장의 현실에 안주하고, 만족하며, 현실이 혹독하여 다른 꿈을 꿀 수 없다 할지라도 꿈을 꾸는 것을 부탁한다. 당신에게 세상 어떤 꿈일지라도 꿈이 있다면, 존재 만으로 당신의 삶은 방향을 잃지 않을 것이다.
내게 꿈이란, 이루지 못할 목표라 할지라도 삶을 지탱하는 지지대가 된다.
어느 정도 삶을 살았다고 판단될 때, 현실적인 생각에 익숙해진다.
-그거? 내가 해봤는데~ 안돼..-
-그것보다 이 방법이 더 효과적이야. 괜히 힘쓰지 마 -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갈래? 현실에 눈을 떠-
와 같은 말들이 더 쉽게 나온다. 이제는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들 보다 당장의 일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삶들이 좀 더 평안한 것도 사실이다. 당장의 눈앞의 일들을 해결하면 되고, 이미 경험했던 일들이기에 어느 정도 방법도 알고 노하우도 생겼다. 이제는 일 자체가 나의 삶이 되었다.
때로 우리는 이렇게 안주하고 있지는 않을까? 현실의 삶이 보장해 주는 인생과 타협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때때로 찾아오는 위기의 순간에 나는 그제야 꿈을 되새겨 본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원했던 일 그 일을 위해 내가 해야 하는 일들. 천천히 되짚다 보면, 조금은 차분해진다. 지금의 만족감과 현실이 고마우면서도, 미처 이루지 못한 일들이 남았기에 다시 시선을 고정하게 된다. 그리고 막막해 보이는 현실을 나 대신 받쳐주는 기둥을 하나 더 세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현실이 달라진 것은 없지만, 나는 여전히 안주하며, 위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내 어깨의 무게감은 가벼워졌고, 어느 곳을 바라보아야 할지 몰랐던 내 눈빛은 한 곳을 바라보게 된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덜 방황하게 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저 앞에 아주 작은 희미한 불빛이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얼마나 더 가야 할지 가늠도 되지 않지만, 저 앞에 보이는 작은 불빛 하나만으로 나는 가야 할 방향을 알게 되었다. 내가 작가의 꿈을 버릴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나의 어느 인생의 순간에 놓여 있을지도 모르는 빛나는 한 순간을 위해서,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나는 꿈을 버릴 수 없다.
성공의 여부? 상관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것보다 내가 그 꿈을 놓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처음 써본 글들이, 과거에 써본 글들을 다시 읽을 때면, 나는 그때보다 나아졌음을 느끼고, 내가 작가의 꿈을 잃지 않는다면, 내일의 나는 오늘보다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음을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여담 : 글을 쓰고 나니, 글을 쓰는 목적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해 버렸습니다. 오늘의 글을 쓰는 이유라 제목을 바꾸어야 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