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188-191 <김은경,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뭔가를 화려하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최대한 그것들을 가라앉히고 써야 합니다.
오늘 저녁은 된장찌개를 끓여야겠다. 감자와 호박, 버섯을 깍둑 썰어 넣어 끓이고 잘 익은 된장을 크게 한 스푼 넣어 보글보글 끓이면, 별 것 없는데도 생각 없이 떠먹게 되는 된장찌개가 완성된다. 간단하기도 하고, 단순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것이 참 별난 점이 있다. 한동안 먹어 주지 않으면 꽤나 바라게 된다는 것이다. 한식은 꽤나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이 있고, 이제는 한식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의 음식들도 전화 한 통이면, 혹은 인터넷의 레시피 검색이면 그리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된장찌개를 먹는 횟수가 줄기는 했지만, 된장찌개에 대한 인식과 욕구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무언가를 먹어야 할지 애매한 날에는 배달 앱의 메뉴를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도, 에이 된장찌개나 끓이지 뭐~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별 매력이 없는 것 같은데도, 묘하게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글을 쓰면서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독자들에게 전달할까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옮길 때면 어떤 문장을 써야 할지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단 한 문장으로 독자의 관심을 사로잡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마치 그 문장을 찾아야만 내가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주옥같은 문장들을 떠 올리면 그것도 맞는 것 같다. 나는 왜 이런 문장을 쓰지 못할까? 지금 하고자 하는 단어와 문장이 내 이야기를 잘 전달하고 있을까? 이런 고민이 필요한 것은 맞다. 단지 지금해야 할 고민이 아닐 수도 있다.
된장찌개를 끓일 때 중요한 것은, 물의 양과 된장의 비율 그리고 넣어줄 채소와 건더기들의 비율이다. 된장만 주야장천 넣은 찌개는 소태다. 물의 양을 많이 넣은 건 된장국도 되지 못한다. 야채와 건더기들도 하나만 너무 과하게 넣으면 맛의 밸런스가 깨어지기 쉽다. 결국 된장찌개의 가장 중요한 점은 밸런스인 것이다. 우리가 먹는 찌개 하나만 봐도 밸런스가 중요하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는데, 글을 쓰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이 화려한 문장만일까? 어쩌면 화려한 문장은 가장 나중에 고민해도 될 것이다.
나의 감정과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글의 주제와 짜임을 더 신경 써야 할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가이드와 이정표를 차곡차곡 쌓아 가는 것이 더 먼저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우리가 작가의 글을 읽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는 것은 작가들이 친절하게 세워놓은 이정표를 따라 우리의 감정과 생각이 이입되기 때문이다. 작가의 글에 안타까워하고, 흥분하며, 가슴 아파하기도 하는 것들은 작가의 화려한 문장보다 담담하게 세워 놓은 글의 짜임 때문인지 모른다.
메시지는 간결할수록 전달이 수월하다. 화려한 문장은 글을 읽는데 더한 집중력을 필요로 학고, 피로도를 높이기도 한다. 담담한 글이 수월하게 읽힌다. 구불구불한 배관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물과, 직선으로 쭉 뻗어진 배관에서 나오는 물의 속도는 다르다. 어쩌면 작가의 감정이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것은 바로 쭉 뻗은 관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화려한 문장이 필요한 때가 있다. 화려한 문장이 주는 강렬함과 번뜩이는 재치가 필요한 문장과 글들도 있다. 우리가 매일 먹는 한식도 한정식 집에서 접할 때면, 같은 음식이 맞을까 놀라기도 하는 것처럼 때론 그런 화려함이 필요한 글들이 있다. 나에게 화려함 보다 담백하고 기본이 충실한 글쓰기 필요한 것은 아직 내 역량이 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빙판을 스치지도 못하는 스케이트로 트리플 악셀을 연습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맛은 필요하다. 담백한 음식도, 화려한 음식도 모두 우리의 입맛을 돋우고, 미각을 만족시킬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음식을 만들고, 어떤 글을 써야 하는 가에 대해서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다. 걷지 못하는 아이에게 달리기를 가르칠 수 없고, 깃털이 돋지 않은 새에게 비행을 가르칠 수 없다.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글쓰기는 어떤 점인지에 대해서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가장 편안하고, 가장 진솔하게 나의 이야기를 말하고 싶다면,
오늘 황금 비율의 된장찌개 끓이기에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