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때 멈추기만 해도 성공
최악의 실패에서 한 발정도 뺄 수 있는 법
몇 년 전 회사를 다닐 때 이야기다.
사장님과 함께 회식 후 퇴근길에 대리 운전을 불러 경부 고속도로를 타고 분당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용인 서울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속도를 줄이고 있는데 앞차가 차량 간격을 너무 좁게 달리던 탓에 사고가 날 뻔한 일이 있었다. 다행히 앞차는 급하게 핸들을 꺾어 사고를 면했고, 여유로운 간격으로 따라가던 우리 차는 무사히 멈출 수 있었다.
"제때 멈추기만 해도 성공한 삶이겠네요"
아슬하게 사고를 면하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다독이며 머리보다 입에서 먼저 나온 말이었다.
순간 이어진 정적
그 당시 회사는 어려웠다. 스타트 업이라는 말도 나오기 전 시절, 의욕만으로 뭉쳤다가 현실의 높이를 실감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때였다.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지만 조만간 사업을 축소 내지는 정리한다는 이야기가 암암리에 돌고 있을 때였다.
멈추기만 해도 성공이라는 말. 어쩌면 평소 생각을 대표에게 전달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회사 대표는 사업을 강행했고, 나는 결국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후에 거래처에서 연락이 왔고, 거래처는 회사 대표와 법적인 문제에 다다르게 되었다며 나에게 관련 내용을 확인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대표는 제때 멈추지 못한 셈이다.
제때 멈춘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지표가 곤두박질치고, 경기가 침체되고, 거래처가 픽픽 쓰러져 나가는데 무슨 배짱으로 사업을 계속하려 했을까? 대표의 판단을 아니 고집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내가 사업을 시작하고 내가 멈춤의 시기에 다다라서야 그 망설임을 알 수 있었다.
처음 자전거나 자동차 운전을 배울 때는 출발하는 법과 동시에 멈추는 법을 함께 배운다. 출발하는 법만큼 중요한 것이 멈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 자전거를 배우면서 넘어지는 이유는 제대로 멈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멈추는 법만 알아도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는 횟수를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다. 멈추는 법을 알아야 달리는 법을 더 잘 배울 수 있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멈추는 시기와 방법은 더 중요해진다. 제대로 속도를 줄이지 못하거나 멈추지 못할 때는 큰 사고로 이어진다. 속도가 빠를수록 더 큰 피해를 받는다. 이를 가속도의 법칙이라 부른다.
인생이나 사업의 결정에서도 이 가속도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노력으로 마찰계수를 넘어 사업이 굴러가기 시작할 때 가장 큰 힘이 들기 마련이다. 이후 조금씩 더 빠르게 성장하는 시점이 사업에서 있어 가속도가 붙는 지점일 것이다. 매출이 늘어나고, 직원이 모자라며, 사무실에 책상이 모자라게 된다. 거래액은 매월 경신되며, 이제껏의 고생에 대한 보상이 시작되는 것 같으며, 곧 이어질 흑자와 장밋빛 미래를 기다린다.
한번 붙은 가속도는 쉽게 제어되지 않는다. 멈추는 데는 달리는데 만큼 더 큰 힘이 들어간다. 출발을 위해서는 마찰 계수를 넘길만한 힘만이 필요했다면, 멈추기 위해서는 그간 더해진 관성과 가속도 등 외부요인까지도 통제해야 속도를 줄이는 것이 가능해진다. 사업이나, 인생의 결정에 제동을 걸고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가 이런 이유일 것이다. 구르기 시작한 사업에 대한 미련과, 수습에 있어 더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점, 미래에 대한 희망 이런 것들을 모두 감수하는 노력이 있어야 비로소 멈출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멈추는 일이 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