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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May 22. 2019

11시의 포장마차

그곳엔 우리가 있었다.

금요일 11시 언저리가 되면 어린 왕자의 여우가 되었다. 

먼저 취직을 한 동기는 꼭 이맘때 전화를 하곤 했다. 


한껏 지친 목소리면서 동시에 어딘가 들뜬 듯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거기로 나와! 나 이제 출발할 거야"


동기는  신입사원이었고, 난 아직 취준생이었다. 

남들에게야 불타는 금요일이겠지만, 동기에게는 밀린 업무를 끝내고, 젊음의 혈기를 

주체할 수 없지만 쉽게 누구를 부르기도 애매한 시간일 뿐이고, 

꿈을 좇는다는 명분으로 부모님 어깨에 올라타 있는 나에겐 금요일은 오히려 우울한 시간일 뿐이었다.


그런 일상 속에서

한 주, 두 주 규칙적으로 전화가 오는 바람에 

으레 금요일 밤은 극장 앞 골목 포장마차의 회동 있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신촌 오거리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골목 맞은편에는 포장마차가 하나 있었다. 

4-5평 정도 되어 보이는 포장마차는 테이블이 3개 정도에 조리대 앞에 앉을 수 있는 바 형태의 자리

포장마차 협회에서 지정한 컬러 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같은 컬러의 천으로 되어있었다. 


백열등으로 밝혀진 빛이 오렌지 컬러의 천을 뚫고 나오는 그림은 꽤나 운치가 있었다.

멀리서 보아도 포차임이 분명하고, 누가 기다리고 있을지 뻔히 알면서도 이유도 모른 체 

설렘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자취, 하숙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에 있는 포장마차는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았다. 우리가 방문할 시간엔 

한 테이블, 많아도 두 테이블을 넘기는 날이 거의 없었다. 


조악하게 만든 기다란 나무 의자에 나란히 앉아 유리 덮개 안의 안주감을 고르는 동기의 눈빛은 생기가 돌았다.

전라도가 고향인 동기는 꼬막 안주를 좋아했다. 뻔히 보아도 그리 신선해 보이지 않은 상태지만 

동기는 주인아저씨와 오늘 신선한 안주가 뭐냐며, 수산시장처럼 흥정을 하곤 당연한 듯 꼬막 안주를 시켰다. 


그 시절 대화라 봐야, 지난 대학 시절의 무용담과 신입사원의 꿈과 고충들이 대부분 

동기는 떠들고, 나는 조용히 들으며 술잔을 함께 비워갔다. 


11시의 포장마차 회동은 두 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그사이 소주병은 3-4가 비워진다. 오늘만을 기다렸다는 듯 동기의 술잔은 빠르고 말은 높아진다. 


"이 시간에 어디 전화를 할 곳이 없어, 학회 애들도 그 때나 즐거웠지 지금은 전화하기가 쉽지도 않고."


동기는 지금 말로 인싸였다. 항상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고, 술자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런 동기와 내가 단둘이 술을 마시는 것도,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졸업반이 가까워서야 함께 수업을 듣고

공강 시간을 보내며 술자리를 함께 하기 시작했는데, 묘하게 죽이 맞았다. 


"이 시간에 여기서 술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이 너 밖에 없다니까? 미안하지만 난 니가 나와 이렇게 오래 술을 마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이 무슨 망언인가 싶겠지만, 외로움의 표현이었고, 친근함의 표시였다. 


때로는 비가 오는 주말이었고, 때로는 더 늦어져 12시를 넘어 시작하기도 했으며, 

어느 날은 평일이 되던 날도 더러 있었다. 


회동은 그렇게 한동안 이어졌다. 



포장마차의 회동이 내가 취업을 하고 나서 끝이 났다. 방송국 피디가 된 나에게 주말은 없었다. 방송국은 남들이 일할 때도 일을 했고, 남들이 쉴 때에도 방송을 했다. 

골프 중계 피디가 된 나는 남들과 다른 일상을 보내야 했다. 주말이면, 새벽 해외 중계가 계속되고 

새벽 3-4시 넘긴 시간이 되어서야 퇴근을 할 수 있었다. 늦은 밤 끝나는 스케줄은 사람을 외롭게 만들었다. 


어느 새벽 불이 꺼진 강변대로를 달리다 문득 포장마차가 가고 싶었다. 

시간은 새벽 3시 

어느 곳도 전화를 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 시절 동기에게 조차 전화하기 미안한 시간이었다. 40여분을 달려도 떠오르는 이름은 없었다. 


4시가 되어서야 도착한 포장마차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장사를 마치고 퇴근을 한 것인지

그동안 포장마차가 없어진 건지 알 수 없었다. 


거리마저 적막했고, 누구라도 붙잡고 여기 있는 포장마차가 어떻게 된 것인지 묻고 싶었다. 

포장마차가 없을 거라는 걸 한 번도 생각지 못했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젊은 날의 추억이고, 휴식처였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칠 수 있는 대나무 숲이었다. 


그런 포장마차가 사라졌다. 

그렇게 따스해 보이던 포장마차를 내리비추던 가로등도 오늘은 외롭고 적막하고 차가웠다. 

그날 나는 내 추억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한 체 그곳을 떠났고, 지금도 그 포장마차가 그 자리에 있는지 

영원히 사라진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래도 그곳엔 우리가 있었고, 내 젊은 날의 추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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