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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민박집

제 10화.민박집 간판을 달았어요

by 성준

- 오빠 우리 산아래다 민박집 간판 하나 걸면 안돼?

- 간판? 그러게... 안그래도 사람들이 여기가 과수원인지 민박집인지, 고객들이 와도 못찾아오시긴 하더라.

보자...이번 달 매출을 보니.... 하... 우리가 만들어야겠다!

- 그치? 우리가 만들어야겠지? 그래도 밥은 안굶어 우린!


해진과 수인은 도로에서 과수원으로 오르는 길가에 작은 간판을 하나 만들기로 했다. 아무래도 자주 넣었다 뺐다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좀 단단하게 만들기로 했다. 나무 판자를 몇개 이어 큰 보드처럼 만들고는 밝은 컬러로 배경을 칠하고 큼지막하게 민.박.집 이라고 심플하게 그렸다. 과수원으로 오르는 길로 화살표도 넣어주어 그래도 여기가 민박을 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아보게 만들었다.


해진은 창고 구석에 남아있던 차임벨을 간판까지 연결해서 혹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누를 수 있도록 설치했다. 손님이 없는 날이면 해진과 수인은 민박집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손보고 고치고, 무언가 더 할 수 있는 것들이 없는지 둘러보곤 했다. 그 일만으로도 하루가 금방 지나갔고, 해질무렵 하루 일과를 마치면 한 발 더 나아갔다는 성취감에 뿌듯해 하곤 했다. 남들이 보기에 크지 않은 작업들도, 모두 서로 머리를 맞대어 기획하고, 실행하고 완성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해진도 수인도 그동안 조금씩 더 건강해 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매일 과수원을 오르내리면, 입맛이 좋아지고, 과수원의 좋은 공기는 조금 더 긍정적인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해가 뜨고 지는 일상 속에서 둘은 천천히 성장하고 있었다.


"찌르릉~~


- 오빠~ 이거 무슨 소리야? 어디서 이런 소리가 나?

- 글쎄다.. 이런 소리는 처음 듣는데? 이게 어디서 나는 거지? 앗.. 벨? 그래 우리 설치해 놓은 벨. 그건가보다.


해가 뉘엇뉘엇 기울어 거의 어둠이 언덕위의 민박집에 다다를 무렵 산 아래 벨이 울렸다. 해진과 수인이 설치해 놓고도 한동안 울리지 않아 잊고 있었던 소리다. 해진은 언덕 아래를 내려다 보니 간판 옆에 한 남성이 서 있었다. 거리가 좀 있어 소리쳐도 들리지 않을 것 같아 해진은 비상 후레쉬를 간판 쪽에 비췄다.


깜빡! 깜빡!


남자의 움직이을 보니 신호를 받은 것 같았다. 해진과 수인은 잔걸음으로 언덕 아래로 함께 내려갔다.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가 서있다. 시골길에서는 쉽게 만나지 못할 옷차림이라 조금 당황했다. 여행용 짐도 없고, 옷차림도 슈트차림이라 여행객이 아닐수도 있을 거 같았다.


- 네.. 어떻게 오셨나요?

- 여기...민박집이라고 되어 있는 간판을 봤는데. 혹시 오늘 빈방이 있을까요?

- 아.. 빈방이요? 네 방 있어요. 몇 분이서 주무실거에요?

- .. 저 혼자요.

- 네.. 가능해요. 올라오세요. 혹시 짐 같은 건 없으실까요?

- 아... 뭐 딱히 짐은 없어요.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데 오늘 밤 운전은 좀 피하고 싶어서. 그냥 오늘 밤만 보내고 가려구요.

- 네 괜찮아요. 혹시 아직 저녁 전이신가요? 식사 전이시면 같이 하세요 저희도 이제 준비하려던 참이라.

- ...아...괜찮아요.. 방만 준비해 주시면 주변에서 먹고 갈게요.

- 여기 초행이신가봐요.. 주변에 뭐가 없어서... 식사하시기가 마땅치가 않으실거에요 그냥 같이 드세요.

- 그러면 부탁드릴게요. 방 값에 포함시켜 주세요

- 일단 올라오세요


해진과 수인은 앞서 오르며 간판을 걸길 잘 했다며 수인의 아이디어를 칭찬했고, 수인은 복권에 당첨된 마냥 기뻐했다. 언덕위를 오르는 모양새가 꼭 산책나온 새끼 강아지 같았다. 이제는 평지처럼 장난치며 오른다.


- 이 근처는 어떻게 오시게 된거에요? 이 동네는 뭐 별게 없는 곳이라서요. 여기서 슈트 차림을 본게 처음인거 같아서요. 저희가 이곳에 온지 거의 7-8개월 정도 되었는데 처음 봤어요. 수트가 엄청 잘 어울리세요. 꼭 모델 같아요


수인은 예상치 못한 손님이 반가워 한층 높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묘하게 콧노래처럼 들렸다.


- 아..저기 위에 납골당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어머니를 모시고 왔거든요.


예상치 못한 남자의 대답에 수인은 당황했다. 아무생각도 없이 기쁜 마음에 입에서 나오는데로 말한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이런 곳에 슈트가 어울리지 않는건 당연한데.. 다 사정이 있을텐데.. 자신이 너무 주책맞아 보였다.


- 아..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주책맞게 떠들었어요.

-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신경쓰지 마세요. 저 잠시만 방에서 좀 쉴게요.


스탭룸에서 해진이 트레이닝 복 한 벌을 들고 오고 나왔다. 아무리봐도 갈아입을 옷 하나 없어 보였기에 해진은 자신의 편한 옷을 한 벌 찾아 왔다.


- 저.. 괜찮으시면, 이 옷으로 갈아입으세요. 갈아입을 옷도 못 챙기셨을 것 같아서요.

- ..감사합니다.


남자는 지친 표정으로 옷을 받아 방으로 들어갔다. 수인은 해진의 뒤에 숨어 있다 남자가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해진의 팔을 끌어 주방으로 향했다.


- 오빠 어떻해. 저 아저씨 오늘 어머니 납골당에 모시고 오는 길이래. 난 그것도 모르고 슈트가 잘 어울린다고, 멋져보인다고. 주책 바가지 바가지를 아주. 아. 챙피해. 오빠. 기분 나쁘셨겠지?

- 괜찮아. 수인이도 모르고 그런건데 뭐. 그리고 아까 사과하는 것 봤는데 그렇게 기분 나빠하신 것 처럼 보이지는 않았어. 우리는 그냥 편하게 쉬다 가실 수 있게, 그것만 신경쓰자. 너무 걱정하지 마 수인아


해진은 아까 하려던 저녁에 생선 한마리를 더 굽기로 했다. 찌개도 새로 덥히고, 또 무슨 밑반찬을 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수인은 남성이 들어간 방을 바라보며, 무언가 위로 될만한 것들이 없을까 생각했지만, 부모님을 잃은 사람에게 어떤 위로가 될지 몰랐다. 문득 해진을 보며, '아 오빠도 아버지를 잃었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떨까 상상해 보려 했지만, 부모님 중 누군가 돌아가실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무섭고, 겁이 났다.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수인은 해진에게 무슨 말을 할까 고민했지만, 아무말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요리를 하는 해진의 뒤에서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 수인아? 왜 갑자기...안하던...짓을?! 간지러...

- 뭐얏! 에잇


해진의 장난스런 반응에 픽 웃음이 터진 수인은 안마대신 등짝 스매싱을 날려주었다. 수인은 해진의 장난스런 반응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오늘 온 손님은 얼마나 고단할까 하며 걱정스런 눈길로 닫힌 방문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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