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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Dec 04. 2023

허..허히하 하하효..

26살에 크게 허리를 다쳤다. 이후로 환절기가 오거나 잘못 재채기를 하면 허리가 삐끗한다. 엑스레이도 찍어보고 병원도 다녀봤다. 디스크가 안 좋긴 하지만 그보다 소위 근육이 놀랐다고 한다. 문제는 한 번 놀란 근육은 더 작은 일에도 경직되거나 할 수 있다고 한다. 자주 재발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30대 중반 이후로 일 년에 한두 번씩 허리를 잡고 드러눕는다. 이유는 대부분 하찮다. 


"재채기를 하다가 허리를 삐끗했어요." 

"아이를 안다가 허리가 나갔어요."

"그냥 앉아있다 일어섰는데 허리가 아파요."


 창피해 어디에 말도 잘 못한다. 허리가 아파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허리가 정말 아프면 꼼짝도 못 한다는 것을. 심했던 적엔 2박 3일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화장실도 누워 기어 다녔다. 난 허리 아플 때가 제일 싫다. 제대로 누워있기도 힘들다. 몸을 좌우로 조금만 움직여도 끔찍한 통증이 따른다. 하루아침에 말 그대로 거동이 힘들어진다. 


맨 처음 허리가 아파 움직이지 못했을 땐, 인생에 한창 바쁠 때였다. 취업준비. 성과는 없지만 항상 바빠야 했던 시기. 무언가를 쫓고 쫓기는 시기에 허리가 아파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누워 벽과 천장만 보았다. 바쁘게 살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니 그렇게 편했다. 누워 온갖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온갖 종류의 망상들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었고, 그때 누군가 펜을 쥐어 주었으면 브런치 북이 두세 권은 나왔을 텐데.. 


그다음의 허리 통증은 취업 이후였다. 이때부터는 

"아파도 아픈 줄 모르고~" 일해야 했다. 대신 목을 넘어가는 약의 종류와 개수가 늘었다. 허리는 움직일 만했지만 속이 아파왔다. 그래도 움직일 수 있어 일도 할 수 있었다. 가정이 생기고 가족이 생기고 움직이지 못하는 불편함은 시기에 따라 다른 의미로 나를 압박했다. 긴병에 효자 없다. 맞는 말이다. 결혼 후 첫 번째 허리가 아팠을 때 와이프는 옆에서 간호해 주고, 마사지해주고, 약도 준비해 주고 나보다 더 놀라 하고 안쓰러워했다. 지금은 '그럴 때가 되었나' 싶은 반응이다. 때로는 야속하다. 속상하다. 답답하다. 누가 나를 돌봐 주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가 아니다. 아이들을 양육하고부터 약간의 자격지심을 품고 살았다. 허리가 아파 움직이지 못하면, 집안일도, 아이들도 제대로 돌봐주지 못하는 내가 너무 하찮게 생각되는 것이다. 그게 너무 속상했다. 

나란 존재의 가치가 사라지는 느낌. 


요즘도 꾸준히 허리는 아프다. 한 가지 나아진 점은 허리가 아파올 거라는 걸 미리 예지 한달까? 마치 비가 오려면 무릎이 아파오는 것처럼 허리가 아플 거 같으면 예전에 감지 못했던 주변 근육의 미세한 다름을 알아간다는 것. 그 증거로 조심조심 허리를 쓴다는 것이 다르다. 허리가 아파 드러누워도 예전처럼 자책하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허리 아파 아무것도 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이제는 날아가는 화살을 내게 꽂지 않는다. 아픈 건 어쩔 수 없고, 그게 내 존재를 어찌할 수도 없다. 내가 드러누워 있어도, 어느 곳에 옷이 있는지, 아이가 찾고 있는 바지는 어디에 있는지, 막내의 준비물은 무엇인지 대답해줘야 할 일은 여전히 많다. 나는 여전히 쓸모가 있다. 특별한 계기가 있던 것도 아니고, 큰 마음을 먹은 것도 아니다. 


나는 건강한 신체가 아니어서 건강하지 못한 정신이 깃든 게 아니었다. 

그냥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것이었다. 외팔의 보디빌더, 하반신 마비의 미술가, 페럴림픽 선수등 예전의 내 생각대로라면 그분들은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없는 존재다. 내가 틀린 것이다. 그분들이 지닌 강한 정신력과 긍정적인 마인드는 신체의 제약에 개의치 않았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해 버린 것일 뿐. 정신은 신체에 귀속되지 않는다. 사지가 멀쩡해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도 많다. 사지가 불편해도 세상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도 많다. 생각보다 신체의 건강은 건강한 정신의 전제조건이 되지는 않는다. 


정신만 건강하면 된다. 신체가 편하든 불편하든 정신만 건강하면 제약쯤은 웃어넘기는데 별 이유가 되지 못한다. 아직까지 정신을 단련하는 법을 통달하지는 못했다. 내 경우는 글쓰기의 도움도 좀 받았다. 나를 돌아보는 일이 멘탈을 잡는데 도움이 되었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입맛이 다른 것처럼 정신 단련법도 다르지 않을까? 요즘 날씨가 추워진다. 추워지면 근육이 쉬이 놀란다. 이미 경직되어 있기에 무리하게 움직이면 안 된다. 요즘은 조심조심 움직인다. 

그래도 어쩌면 찾아오시겠지. 그럼 난 또 허리를 붙잡고 아내를 찾겠지. 


"허...허히하 하하효..."(허... 허리가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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