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준 Sep 20. 2023

데프콘에게 바치는 글

데프콘님께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전하며...



형돈이와 대준이. 혹은 무한 도전 혹은 1박 2일의 멤버 지금은 나는 솔로의 MC까지. 최근의 데프콘의 이미지는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나 역시 이런 모습이 더 친근하다. 덩치에 맞지 않게 귀여운 표정이나, 허술하고 엉뚱한 이미지의 모습이 천하장사 강호동이 아닌 MC 강호동을 연상케 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데프콘은 힙합계의 강호동과도 같은 인물이다. 그도 힙합계 좀 더 디테일하게 말하면 우리나라 갱스터 랩에 1세대 래퍼다. 그의 음악을 들어보았다면 - 특히나 19금 딱지가 붙은 - 얼마나 거친 욕설과 거침없는 가사로 노래를 하는지 깜짝 놀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같은 사람 맞아? 싶은. 


나는 음악을 잘 듣지 않는다. 가수와 노래 제목을 기억하지 못해 한참을 찾아 떠올려야 하고, 가사를 외우기는 더 잼뱅이다. 특정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음악은 아무것도 없는 적막을 지워줄 배경 음악과 비슷한 정도라 생각했다. 지금도 그리 다르지 않다. 10대와 20대 때에도 그랬고, 40대가 된 지금도 음악은 일을 하거나 청소를 할 때 틀어놓는 노동요 정도로 즐긴다. 그러다 보니 솔직히 음악에 대해서 잘 모른다. 특히나 힙합계는 더 문외한에 가깝다. 그런 내가 1년에 두세 번 정도 데프콘의 음악만을 집중적으로 들으며 따라 부르는 때가 있다. 이때만은 잘 부르지도 못하는 욕설이 섞인 랩을 목청껏 부른다. 한 껏 부르고 나면 목이 벌게지고, 콧잔등에 땀이 맺을 때도 있다. 비트와 데트콘의 강렬한 랩에 심장 박동은 아침 조깅 때만큼이나 쿵쾅 거릴 정도다. 그렇게 한두 시간을 노래와 랩을 따라 하면 비로소 진정이 되고 위안이 된다. 이상하게 그때만큼은 데프콘의 갱스터 랩으로 위로를 받는다. 이게 내가 데프콘에게 감사하는 이유다. 


애도에는 몇 가지 단계가 있다. [the six stage of grief] 애도의 6단계이다. 

부정 -> 분노 -> 협상 -> 우울증 -> 수용 -> 의미 찾기 

일어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원인을 타인 혹은 자신에게 찾으며 분노를 느끼다가 '만약에'라는 시나리오를 상상하며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을 것을 후회하는 협상 이어 이 슬픔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우울증이 그리고 상실로 인해 변화된 삶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나름의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며 현재의 삶을 변화시키려 하는 과정까지가 그 6단계다. 


내가 데프콘의 음악을 접한 때는 아마도 [분노와 협상의 중간쯤]의 시기였을 것이다. 나는 세월호가 가라앉던 해(세월호 사건으로 동생을 잃은 것은 아닙니다.) 동생을 잃었다. 동생은 세상을 등졌고, 나는 미처 그 신호를 읽지 못했었다. 그리고 너무도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분노의 시기였을 거라 추측하는 이유는 나의 모든 행동이 화가 났고, 지난날의 모든 행동이 후회스러운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 차고 넘칠 시기였다. 매사에 부정적이며, 소극적이고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다. 그중에서 가장 힘든 날은 납골당에 있는 동생을 만나러 가는 때다. 아이들도 데리고 갈 수 없었고, 와이프와도 함께 가지 못했다. 아니 심지어 부모님과도 함께 납골당에 가는 일이 싫었다. 그 슬픔을 받아줄 수도, 표현할 수도 없기에 기일이거나 생일 전에 미리 혼자서 다녀오곤 했다. 그 길이 너무도 멀었고, 싫었다. 


그때 그 노래가 흘렀다. 어떤 이유로 흘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데프콘에 [독고다이]란 거친 욕설과 비속어가 섞인 노래가 들렸고, 나는 홀린 듯 데프콘의 모든 노래를 모아 들었다. 데프콘의 노래는 거칠다. 직설적이고 욕설도 간간이 섞여 있기에 아이들에게 들려줄 수도 지인에게 추천하기도 좀 그렇다. 그래서 평소에는 잘 못 듣는다. 그런데 동생을 만나러 가는 그 두 시간 동안은 데프콘의 거칠고 험한 노래를 주야장천 틀어 놓는다. 욕도 따라 한다. 그럼 이상하게 마음이 좀 풀린다. 동생을 잃은 슬픔에 따라오는 허무함과, 우울함이 거친 음악에 조금 말랑해지는 것 같다. 동생의 상실감이 옅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뒤에 따라오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약간 씻겨 내려가는 것 같다. 


이런 게 카타르시스인지 모른다. 

거친 랩과 욕설과 가사가 내 가슴 깊이 자리한 우울과 불안 분노와 긴장감을 해소시켰는지 모른다. 

내게 데프콘은 예능인으로서 보다 래퍼로서 가수로서 더 큰 존재로 다가온다. 만약에 그를 만날 수 있다면 내가 얼마나 위로받았는지, 나에게 버틸 힘을 주었는지 이야기해 주고 싶다. 그 자리에 소주도 한 두어 병 있다면 완벽한 그림일 텐데 



나는 아직도 당신의 음악을 따라 부를 수 없습니다. 

가사를 보고도 겨우 떠듬떠듬 읽어 나가다 놓치기 태반이구요 

가사가 너무 직설적이어서 다른 사람과 듣기에도 좀 그래요 아이들에게 추천하기는 더 힘들구요 

지금도 당신의 노래 제목을 몇 개 알지 못합니다. 멜론에서 당신의 이름을 검색해 나오는 모든 노래를 이어 듣거든요. 그런데요 


이상하게 당신의 거친 음악을 들으면, 내 안에 상실감이 조금 가벼워집니다. 마냥 늪속으로 가라앉던 내 몸을 더 이상 빠지지 않게 해 줘요. 일 년에 두세 번 밖에 듣지 않는 당신의 음악인데도 그 나머지 시간을 그래도 살아갈 수 있게 해 줍니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 보다 훨씬 더 당신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노래 가사처럼이라면 

정말 존 X 감사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혹여나 당신이 이 글을 읽는다면, 당신의 음악으로 이렇게 위안을 받는 사람이 있다는 걸. 당신의 음악에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멋진 앞날을 항상 응원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100세 인생. 어디에 방점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