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준 Sep 27. 2023

이런 이유의 이혼이 정당할까?

어떤 알고리즘일까? 브런치에서 내가 추천해 주는 글들 중의 상당수가 헤어짐에 관한 이야기이다. 새로운 만남의 이야기보다 헤어짐의 과정과 상처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 이야기들이 노출된다. 사랑에 관한 글들은 재밌다. 게다가 상처와 극복의 과정은 (이런 표현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으나...) 더 재밌다. 특히나 유책 배우자에 대한 통쾌한 사이다 처단법이나, 상처 극복 후에 더 멋지게 삶을 즐기는 내용의 글들을 읽으면 묘한 카타르 시스마저 느낄 정도다. 아마도 이것이 알고리즘의 이유가 되겠다. 


다른 세계에서 30여 년 가까이를 살던 성별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한 가정을 꾸린다는 건 굉장히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10여 년 이상을 경험 중인 내 기준에는 그 만남보다 유지가 더 어려운 일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른 별에서 온 두 남녀의 만남은 낯섬으로 인해 끌리고 새로웠는지도 모른다. 평소에 내가 접하지 못한 새로움의 호기심과 설렘으로 둘을 끌어안은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이것과는 조금 결이 다른 면이 있다. 우수갯소리로 결혼을 하면 여자 친구와 매일 볼 수 있어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런데 그 여자 친구가 집에 가질 않는단다. 아.. 이건 남자의 입장에서의 유머일까? 분명한 것은 결혼과 연애는 그 결이 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열열하고 뜨거운 연애를 하던 커플도 결혼 후에는 미적지근해지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항상 높은 집중력을 유지한 채 살아갈 수 없다. 집중 그 자체만으로 상당수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며, 항상 그 텐션을 유지하는 건은 신체적으로도 무리가 갈 수 있는 일이다. 그것 때문인 건가? 결혼 후에 미적지근해지는 이유가? 살아남기 위해? 좀 더 예쁜 말로 말하면 "연애보다 오래 함께하기 위함"이라고 해야겠다. 그 순간순간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자 노력하는 연애처럼 할 수 없는 이유라고 해야겠다. 


좀... 민망하다. 그럴듯한 변명을 찾는 노력처럼 보인다. 


이혼의 글들을 읽으며, 내가 와이프와 이혼을 하게 된다면 어떤 이유 때문일까 상상해 보았다. 어느 배우자의 외도 때문일까? 아니면 맞고 사는 남편이나 아내의 이유가 더 어울릴까? 이도 아니면 도박이나 마약등 반사회적 행동을 해서 가족을 지키기 위한 이혼일까. 이런 사유는 잘 상상이 되질 않는다. 아직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있어 신의와 도리를 지키고 살아간다 생각된다. 물론 대다수의 이혼 부부들이 이런 상태에서 뒤통수를 맞는다고 하니 앞날은 장담할 수 없겠다만 일단 이건 잘 상상이 되질 않는다. 폭력은 내가 때리는 것보다 맞는 장면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 도박과 마약도 우리 부부는 간이 작은 편이라 일단 패스. 


아마도 이런 장면이 더 어울리겠다. 


어느 날부터 대화가 줄어드는 거야. 처음에는 서로 화도 많이 내고 싸우기도 하고, 화해도 했다가 했는데.. 아이들도 커가면서 점점 대화가 줄어드는 거지. 물론 아이들이 있고 하니 말을 안 하는 건 아니지. 아이들은 잘 크는지, 학교에서 문제는 없는지 학원은 빠지지 않는지, 다음 주의 준비물이나 시험은 없는지 말이야. 다음 달의 장모님 생신은 어떻게 보낼 건지 추석에는 언제 형님 댁을 방문드릴건지 등등 항상 많은 말들을 하긴 하는데... 어느 순간 와이프와 나와의 이야기가 없는 거지. 오늘 아침에 마신 커피는 어떤지. 좋아하는 영화가 나왔는데 보러 가는 건 어떨지. 요즘 흰머리가 늘었는데 새치일까 흰머리일까 어떻게 염색을 하는 게 나을까? 같은 거 딱히 불편한 건 없는데.... 너무 익숙해...


이제는 아이들의 보호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에. 뜨거웠기도 애처롭고 애달프던 그 감정들은 가끔 술이나 마셔야 소환할 수 있는 추억이 되어버린 건지. 이제는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해서 그런 이야기들이 필요 없는 건지. 그래 "가족끼리는 이러면 안 되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난 가끔 와이프를 보면 안쓰러워. 아이들을 너무 좋아하는 건 아는데 본인이 좋아하는 걸 챙기지 않거든... 나중에 아이들이 크면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낼 거라는데.. 그때 나와 무얼 함께 하려 하는지 모르겠단말야.. 우리가 함께 할 일들이 있을까? 지금 이렇게 함께 보내는 시간이 없는데. 그때는 그게 가능할까?  우리는 부부가 맞는 걸까? 


아마도 이런 이유로 이혼을 결심하게 될 것이다. 

중차대한 유책 사유를 만든 배우자 없이도, 우리는 서서히 식고, 굳어 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시간이 지나며 그것이 편해지고 익숙해지고, 그렇게도 살아가니까.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닫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부부의 삶일까? 과연 나의 삶은 어떤 건지... 나란 존재는 어디서 행복을 찾아야 할지 고민하게도 될 것이다. 이런 이유의 이혼은 이해가 되면서도, 안타깝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지 더 어렵게도 느껴진다. 어느 한쪽의 분명한 잘못은 개선점이 명백하지만, 이런 문제는 상호 간의 케미가 달라져야 한다. 시간도 노력도 과정도 쉽지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더 되돌리기 어려운 문제일 수 있다. 이미 식어서 굳어졌다면..



아직 나는 굳지는 않은 것 같다. 

연애 때보다, 신혼초기보다 물론 많이 식어가고 미적지근 해졌지만 

아직은 말랑함이 조금은 남아 있다. 

아이를 위함이 아닌 가족을 위함이 아닌 남녀로서의 우리 두 사람을 위해 

나는 조금 더 따뜻해져 봐야겠다. 

적어도 지금의 말랑함은 유지해야겠다. 


서로에 대해 고민하고, 앞날을 걱정하는 지금의 상태라면 그래도 우리는 아직 부부라고 확신할 수 있을 테니까.



작가의 이전글 험담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