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작의 습관
나는 행복한 글을 쓰고 싶다. 읽고 나면 가슴이 몽글해지는 여운이 남는 글을 쓰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글도 그런 글들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상처받고, 치유받고, 힐링하며 성장하는 글과 이야기들이 좋다. 서투른 주인공이 여러 사건과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면적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들. 큰 반전은 없지만 가끔은 쫄깃한 긴장감이 도는 장면들. 해피앤딩을 예상하면서도 서로 상처를 주는 장면에는 바보처럼 아파하며, 되새기는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사춘기 감성이 아직도 살아 있는 것 같다.
그런 글은 잘 써지지가 않는다. 글쓰기의 시작이 개인적인 어려움의 시기였기 때문일까? 글을 써야겠다는 욕구도 어딘가 마음이 불편해 오거나,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될 거다라는 자각이 있을 때,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큰일 나겠구나 라는 감정이 밀려올 때 글을 쓰고, 펜을 찾게 된다. 다행이랄까 재미나달까 그런 감정에 글을 쓰고 나면 조금은 살아난다는 것이다. 내 안의 어둡고, 불편한 감정들이 채워가는 빈 여백의 잉크로 사용되는 것처럼 나의 감정의 잉크병은 조금 가벼워진다. 그래서 또 살아갈 힘을 얻곤 한다. 그런 감정에 쓰는 글이어서일까? 나의 글을 밝은 봄날의 곰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몽글몽글하고, 아기자기하고 읽고 있으면 살며시 미소가 드는 그런 글이라기보다는, 음.. 뭐랄까? [뭐.. 이 정도도 좋아. 아무렴 어때? 이 정도 거리가 딱 좋아] 같은 느낌이다. 뭐... 그 정도 글이라도 쓸고 있는 게 어디냐... 이런 느낌?
글쓰기를 업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면서 미리 걱정해 본 바로는 사람들이 읽고 싶은 글과 내가 쓰고 싶은 글. 어디에 집중을 해야 할까라는 고민이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미리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다. 나도 그랬고, 많은 사람들이 그럴 테지만 글쓰기라는 걸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글은 모국어고 문맹률은 제로에 가까우니, 한국 사람이 한국어로 글을 쓰는 것에 대해 별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그랬다. 그럴 때는 근사한 글감만 찾는다면, 나도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하는지 중요하고, 글을 쓰는 과정과 능력은 그다음이라 믿었다. 물론 반은 맞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웹툰을 보자, 아무리 재미난 이야기라도, 그림체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전달되지 않는다. 이야기의 흐름도, 그 순간의 감정과 긴장도 그림체가 토대가 되어야 이야기가 살아난다. 쉽게 말하면 글쓰기 능력은 웹툰의 그림체다. 그리고 그 그림체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차곡히 쌓여가야만 작가들만의 그림체가 생기고 문장이 생긴다. 같은 소재를 다르게 표현하고 쓰는 것 만으로 내용이 스릴러가 되기도 로맨틱 코미디가 되기도 한다. 아무것도 아닌 흔한 소재마저도 그럴듯하게 보이고 읽히게 만드는 것이 작가의 문장력이다. 그리고 이는 그림체처럼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자주 그리고 많이 그리면, 본인이 그리기 편한 얼굴, 구도, 표정이 생기듯 자주 쓰고 많이 쓰면 작가가 쓰기 편한 문장과 이야기 흐름과 묘사와 디테일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작이 제일 중요할 것이다.
나는 글을 쓸 데마다 행복하다기보다, 관조적이고 자조적인 감정아래 글을 쓴다. 내가 자주 쓰는 글들은 대부분 그런 글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행복해 보이는 글을 쓰고 싶다. 그런데 나의 글을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또 그런데 글을 쓰다 보면 나는 아주 조금 행복해진다. 내가 쓰는 글은 덜 행복해 보일지 몰라도 글을 쓰는 나는 조금 나은 사람이 된 것 같고, 약간은 행복감을 느낀다. 이렇게라도 다작을 하다 보면 나는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갈 테고, 나의 글도 조금씩은 더 행복해 보이는 글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