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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hamalg Apr 22. 2019

45. 너무나 치명적인,

안정적인 고독과, 혼란한 관계맺음의 기로에서.

변화는 곧, 기분 좋은 두근거림과 설렘. 기대가 가득도 했다. 만인의 만류에도 눈물 콧물 흘리며 끝끝내 첫 직장을 관두고 이직했을 때. 오 그때의 결연함과 미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어쩌면 두 번 다시는 누리지 못할 단단한 마음이네. 꽤나 멋있는 이십대를 보냈다고 자부하는 이유다. 당시엔 다 컸다고 우쭐댔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실은 마음껏 이십대 다웠다. 크크. 하루하루 내 손으로 직접 선택하여 내린 변화들과 주변에 미쳤던 크고 작은 영향들 그리고 쉼 없던 이성교제까지. 그렇다고 그때를 돌아보는 지금에도 먹어버린 나이가 무색할 만큼 미성숙함을 크게 벗겨내진 못했다. 그저 겁이 많아졌고, 의심이 커졌고, 조심성이 생겼고, 또 한편 만사에 많이 무덤덤해지는 변화만이 생겼을 뿐.


이직 후, 꽤나 오랜 기간 매일의 출근길이 마치 초딩시절의 소풍날 같았다. 그날의 풍경과, 그 시절 즐겨 듣던 노래는 아직도 기쁨의 잔상으로 남아 남산타워가 시야에 들어오거나, CHEEZE의 Romance, 바닐라 어쿠스틱의 니가 궁금해가 들릴 때면 언제나 반가운 마음이 일렁일렁.


2019년, 하고픈 일을 더 잘 해내는데 도움이 될 것도 같아 대학원에 왔다. 합격의 기쁨은 딱 이틀, 아니 어쩌면 하루 반이었던가. 출근하던 바이오리듬을 떠올리며 새벽 여섯 시에 학교 열람실의 불을 켠다. 하루웬종일 두근거리긴 하는데, 입안으로 카페인을 퍼붓는 통에 심장이 불안한 리듬으로 팔딱팔딱.


여러 변화가 생겼는데, 별다른 감흥은 없고, 그 대신 큰 동요도 없다. 감정의 감각기관이 무뎌져 둔감해졌지 싶다. 갈수록 자신의 일에는 큰 폭의 감정이 차오르지 않는다. 타인의 일에도 마찬가지다. 공감능력은 꽤나 진실되게 비춰지는 사회성으로 대체된 지 오래. 자동반사적으로 모두에게 아무 의미 없이 포장된 친절을 베푸는 내 모습이 당연해졌는데, 도대체 언제부터 애쓰지 않아도 기계적으로 웃을 수 있게 된 건지 그 시작점을 짐작하기 쉽지 않다. 언제나 웃어야 함에 힘들 때가 분명 있었는데, 이젠 웃지 않는 일이 되려 어렵다.


다만 유독 가상의 인물이나 일에는 점점 더 깊고, 크게 북받쳐 오른다. 이젠 책뿐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에도 큰 애정을 품게 되었다.


입학 후, 혼자 다녔다. 새로운 인간관계가 무서웠다기 보단, 귀찮았다가 더 솔직한 표현이다. 새로운 이름을 기억하기도, 내 이름을 말하기도 입 아프고. 어차피 지금 내 옆의 사람들만으로도 평생 외로울 리 없으니까. 오늘 점심은 어떡하냐 물어봐주는 동기들의 선한 질문에 도시락을 싸왔다 대답하고 에어프라이어 30분으로 완벽하게 완성된 군고구마와 싱싱하고 탱탱한 방울토마토를 조용히 꼭꼭 씹어가며 느긋느긋, 맛있게도 먹었다. 그렇게 몇 주.


수업이 끝나 군고구마와 허쉬 초콜렛 우유를 먹으러 부리나케 강의실에서 빠져나가려는 나의 팔을 누군가 탁. 눈동자가 무척 검고 큰 동기가 내 나이를 묻더니 우리 기수 동갑들 점심을 먹자고 발랄하게 제안해서, 군고구마와 초코우유를 먹고 싶은 진심을 묻고, 기계적으로 세상 발랄한 미소를 지으며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꽤나 조잘조잘 잘도 떠들었다. 사회생활하듯 아무말을 나불대던 중, 수다쟁이의 본능이 고개를 든 건지 간만에 누군가와 나눈 오랜 대화가 내심 좋았는지, 혼자 매일 점심, 저녁을 먹으면 쓸쓸하다는 말을 뱉었다. 으아 이놈의 주둥아리 재난은 당최 경보도 없어. 입이 방정.


나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내 귀에 꽂힘과 동시에 후회가 막심했다. 앞으로는 함께 먹자는 너무나 따뜻한 제안에 당황해서 얼버무리는데, 눈동자가 무척 큰 그 동기가 대신 대답을 해준다. '우리랑 먹기 싫을 수도 있잖아.' 그리고 나는 부정하지 않은 채 가만히 눈만 꿈뻑. 겉바속촉 군고구마와 방울토마토를 꼭꼭 씹어먹는 유희를 포기할 순 없으니, 뱉은 말은 지키지 않는 게 힘든 나로서는 그 순간 부자연스럽게나마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어디서든 주목받고픈 욕심은 선천적인 걸까?

난 항상 튀고 싶었다. 훌륭한 어른이 되어 모두의 관심과, 선망의 눈빛을 만끽하겠다고. 설령 그들의 칭찬이 가식일지언정 그런 말을 거짓으로나마 뱉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사람이고 싶었지 아마. 이젠 아무도 내 존재를 알아채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내심들 나에게 반하길 바라는 마음이 힘껏 충돌한다. 전자는 이성적인 결단일 테고, 후자는 본능적인 욕구일 테고. 겨우겨우 진심을 누르고 조용히 다니며 평화를 누린다. 관계가 없다면, 평온함은 유지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나라는 사람의 존재를 알 자격도 없지 싶은 저급한 인격체의 관심이 지독히 싫다. 그런 이들은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 다들 (어쭙잖은) 완장 하나씩은 차고 있는데 별것도 아닌 위력을 휘두르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미친척하고 모든 전화를 개무시. 모든 문자를 냠냠냠냠냠~ (이진아의 냠냠냠 음정으로~) 그럼에도 포기란 없고, 계속해서 내 핸드폰 부재중 목록에 그 번호는 여지없이 붉은 흔적을 남기고, 매번 오며 가며 그 얼굴을 봐야만 하는 나는 괴롭다. 정말 윽이다. 마주칠 때마다 나의 뛰어난 사회성이 자동반사적으로 그 능력을 발휘하지 않도록 몇 번이고 자신에게 주의를 주고, 다짐을 한다. 웃지 말 것. 웃지 말 것. 절대 웃지 말 것. 그럼에도 다섯 번 중 한 번은 꼭 실패하고 만다.


누군가 나를 미워하기를 바랐던 적이 전에는 전혀 없었다는 게 참 신기하다.


곧바로 평온하던 하루하루는 금이 가기 시작했는데, 세상 무뚝뚝해 보인 그 친구의 뜻밖의 따뜻했던 제안을 그 점심에 거절한 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려서 불쑥불쑥 혼란했다. 물론 함께 식사를 하자는 그 제안을 곧장 수락했어도 분명 후회했을 테지만, 타인의 친절을 무시한 대가 역시 후회였다.


그리고 또 어느 날엔가 낑낑거리며 온갖 책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주차장으로 가는 내 짐을 그날 점심을 함께 먹은 그 동갑 친구들이 함께 날라주었다. 한사코 괜찮다는데도 끝끝내 친절을 베풀어주었다. 또 내가 힘들어 보였는지, 동기 중 한 명이 잘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겁 많고, 유치한 데다 못되기까지 한 자기만 아는 내가 부끄러워지고 만다. 나만이 인색하다. 쉬이 맘을 내어주는 일에도, 뿐만 아니라 쉬이 아름다운 친절을 받는 일에도.


믿거나 말거나 나는 정말이지 관심을 받을 바엔 차라리 미움을 받고 싶었는데, 자신이 부끄러워진 순간부터 내심 그들을 좋아해 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들도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을 도리가 없고, 평온은 순식간에 소멸한다.


관계란 참, 치명적이다. 타인이 끼는 순간, 계획은 무용해지고 내 인생인데, 절대 내 마음 내키는 대로만 흐르지 않는다. 아마 내가 관계에 유독 취약하기 때문일 테지만.


순식간에 수도 없는 잡생각이 마음과 머리를 잠식한다. 집중력이 전 같지 않게 흐트러지는 것을 느끼지만, 평화로울 때보다 훨씬 더 많이 웃는다. 깔깔. 한번 터지면 도통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나를 엄마는 실성했다고 표현한다. 훨씬 더 자주 행복해진다. 단순한 나는 모두 함께 길을 걸을 때 날이 이쁘다거나, 꽤나 독특한 취향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누군가 나와 비슷한 취향을 공유한다거나, 모두의 혈액형이 똑같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금세 행복하다.


감흥과 동요의 컴백을 두팔벌려 환영하는 건 아니지만, 불확실성이 커지는 일은 두려운 동시에 항상 일말의 기대를 품게한다. 감정의 감각기관이 조금은 제 기능을 되찾게 되려나, 약간 두근거린다.


나, 어쩌면 좋은 친구들을 사귄 것 같다.

(탈탈 털면 친구 수로 열손가락 정도는 채우게 될런지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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