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언제고 언제든 언제나.

by 안녕

유니! 안녕. 엄마야.


오랜만에 편지를 쓰는 것 같네. 잔뜩 흐려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저녁이 지나 벌써 깊은 밤이 되었어. 엄마는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 놓고 노트북을 켜고, 마음을 정돈한 후에 책상에 앉았어.


평소 같았으면 잠들었을 시간에 엄마는 일어나서 편지를 쓴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은 참 행복해지는 일인 것 같아.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평소 하고 싶었던 말을 고르고 골라 글로 담아낼 수 있잖아. 너는, 아마 이 편지를 다섯 달 후에 보겠지만 엄마는 이 글을 쓰면서 매일이 행복할 테니까. 그래서, 네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생각하고 쓰는 이 시간이 엄마는 참, 행복하단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너를 보면 엄마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대견함과 뿌듯함을 느껴. 처음에 낯선 환경, 낯선 친구들 사이에서 어떻게 지내야 할지 두려워하며 눈물짓던 너는 어느새 엄마의 도움 없이도 학교 생활을 잘 꾸려나갈 수 있을 만큼 성장했더라고. 문득문득 네가 툭툭 건네는 이야기에서 엄마는, 네가 부쩍 자랐음을 느껴.


"엄마. 나 오늘 위클래스 다녀왔어."


라고 이야기했었지. 위클래스, 왜 모르겠어. 학교에 있는 상담실이잖아. 작년 겨울, 엄마 학교에 왔을 때 2시간 정도 있었던 곳이기도 했고. 누구랑 같이 갔어?라는 질문에 너는, "아니, 혼자 갔어."라고 말했잖아. 그때 엄마가 얼마나 감동을 했는지 너는 모를 거야. 엄마 눈엔 아직 너무 어린 네가, 스스로 찾아서 위클래스를 가다니. 그 자체가 엄마로선 너무 놀라웠던 거지. 가서 너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상담 선생님께 공손히 인사를 드리며 슬면서 웃고 나왔을까? 아니면 엄마에게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내었을까? 궁금한 것이 너무나 많았지만, 어쩐지 질문을 하면 자꾸만 취조하는 것 같아서, 네가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기로 마음먹었어. 대신 많이 칭찬하기로 마음먹기도 했고.


아주 오래전, 엄마가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던 때, 아이가 생기면 꼭 하고 싶은 게 있었어. 그건 말이야. 바로 아이의 말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 주기, 들어주기였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거든. 오해하기도 하고 왜곡하기도 하고, 혹은 아예 흘려보내기도 해. 친한 친구 사이여도 내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주는 경우는 많지 않더라고. 엄마가 가르치는 중학생들은 그런 사소한 부분에 상처를 받고 관계 맺기를 힘들어하기도 해. 그런 걸 보다 보니, 엄마는 꼭 그런 엄마가 되고 싶더라고. 잘 들어주고, 이해해 주고, 받아주는. 그래서 언제고 힘들 때면 돌아와 안길 수 있는, 기댈 수 있는 그런 엄마 말이야.


물론 엄마는 직업이 선생님이기도 하고, 도덕적으로 판단하여 잘잘못을 가리는 게 익숙해서 때로는 엄청나게 냉정하게 말을 할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너의 이야기는 언제고 끝까지 들어주려고 한단다. 그게 쓸모없어 보이는 이야기일지라도, 혹은 엄마 생각에는 너무나 하찮고 작은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그런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일까?


요새 너는 엄마에게 미주알고주알 학교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해주곤 하잖아.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이 무척 행복해. 우리 딸이, 학교에서는 이런 일을 겪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구나. 학급 친구들은 이런 아이들이 있구나, 그 아이들 중 누구랑은 잘 맞지만 누구랑은 조금 불편하구나 하고.


그럴 때면 7년 동안 열심히 들어준 게 효과가 있는가 싶어 뿌듯하기도 해. 자기 전에 꼭 하루 이야기를 해주는 네가 잠든 후, 가만히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을 너는 모르겠지. 하루 종일 씩씩하게 학교 생활 하느라 고생한 너를 토닥이며 가만히 안아주는 것을, 너는 아마 모르겠지?


유니야.

엄마가 엄마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고마워.

네가 내 딸이라서, 네가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편한 친구 같은 딸이어서, 그렇게 될 것 같아서 미리 고마워. 우리 앞으로 살아갈 수많은 날들 속에 힘든 일도, 어려운 일도 많겠지만 그때마다 엄마는 지금 이 자리에 가만히 서서 너를 기다릴게. 네가 많은 이야기를 마음속에 담아 오면 말없이 그 이야기를 들어줄게. 네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 언제고 토닥이며 가만히 들어줄게. 지금처럼, 우리가 지금 이렇게 하루하루를 평온하게 마무리하는 것처럼.


그래서 언젠간 이 세상에 엄마가 사라져 네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았을 때,

그때 언제고 엄마를 떠올리면 편안해질 수 있도록. 그렇게 할게.


그러니 유니야.

언제든 엄마에게 말해줘. 이야기해 줘. 너의 하루를. 너의 마음을.


오늘 편지가 이토록 감성적인 것은 드라마 때문이야. ㅜ.ㅜ

<폭싹 속았수다>때문이라고! ㅎㅎ


사랑하는 유니.

좋은 꿈 꾸고 있기를 바라고,

엄마는 일 조금만 하다가 네 곁으로 갈게.


항상 사랑한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너를,

내 주변의 그 모든 것보다도 너를,

어쩌면 나 자신보다도 너를,

아낌없이,


사랑한다.


2025년 5월 19일 (월)

유니를 너무나 사랑하는 엄마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말상처 처방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