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깍지

by 안녕

입에 달고 사는 말이

다시 태어나면 선생님 안 한다는 말이다.


힘들고 지칠 때는

무슨 부귀영화 누릴라고 이 고생을 하며 사나 싶어서

다시 태어나서 선택할 수 있다면 학교는 영원히 떠나겠다고 정말 숨 쉬듯 말했다.

작년엔 거의 매일 매일 글쓰며 도피했던 것 같다.


그런데 뭔 놈의 콩깍지가 씌었는지

토론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니 예쁘다.


토론 수업도 처음이고 평가도 처음인 나와,

초등학교 이후로 제대로 된 토론 한 번 안 해본 녀석들이

2주 넘게 준비해 지난주 내내 (2반을 제외하고) 한 모둠씩 토론을 하는데


평가를 위해 찍어둔 영상을 백업하면서

녀석들의 안간힘 쓴 모습을 보니 괜스레 뿌듯하고, 기특하고 그렇다.


1학년 때는 그렇게 힘들었는데 (브런치 곳곳을 뒤져보면 알 수 있는 ㅎㅎ)

지금은 그렇게 예쁘다.


점수 1점이 뭐라고 그 점수 더 받으려고 애쓰고,

그래도 평가라고 열심히 준비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대견하다.

이래서 토론 수행평가 해봤던 선생님이, 토론하고 나면

애들하고 정이 담뿍 쌓인다는 말이, 그 말인가 보다.

나도 힘들고 애들도 힘든데 그래도 뿌듯해.

그 마음이 뭔지 알겠다!


(얘들과 중1 막바지에 영상 찍고 얼마나 좋았던지! 올해도 찍을 예정이다.)


이거 이거 분명 나는 다시는 선생님 안 할 건데

몇 년 후에 성공(?) 하면 멋있게 사표를 내며 떠날 건데


이래서야 나의 플랜 A가 이뤄질 수 없잖아!


안 되겠다.


이제 콩깍지 좀 벗고

필터를 좀 빼고

객관적으로 봐야지.





큼큼.



그래도 지금 3학년 예쁜 걸 어떡해 :-)



하지만! 수행평가는 냉정히.

오늘은 밤새도록 애들 토론 녹화한 영상 보면서 점수를 매겨보자.

후훗. 너희들의 토론 영상은 선생님의 맥북에 영원히 박제되었다....


유명해지기만 하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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