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소통한다는 것

by 안녕

지난주부터 한 아이와 글로 소통하고 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나서 글감을 정하고 글을 쓰고 있다. 둘 다 성실한 탓에 아직 마감 기한 한 번 놓친 적 없고(지금까지 세 번 글쓰기 함) 서로의 글을 허투루 읽고 만난 적도 없다. 나름 신선한 글감을 찾아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짧은 경력이지만 이렇게 열심히 글 써서 나눈 적은 많지 않다. 대부분 기한을 밀리거나, 글을 못 써 오거나, 안 읽어오는데 이번엔 다르다. 녀석이 워낙 성실하고, (매번 선생님 저는 괜찮습니다, 언제든 가능해요라고 말해서 진짜인 줄 알았는데 제 할 일도 엄청 많은 녀석이다. 매일 새벽에 글을 쓰는.... ㅠ.ㅠ) 꼼꼼하고, 이왕 시작하면 뭐라도 결과물을 내어 놓는 아이라 좀 더 진행이 잘 되는 것 같다.


게다가 녀석도 성실하고 나도 성실하고

녀석도 꼼꼼하고 나도 꼼꼼한 편이라서

서로 약속을 어기는 일이 거의 없다.

둘 다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것이 무척 닮았다.


나는 몇 번의 충동을 느꼈으나 (진짜 새벽 세 시에 잔 날은... 정말.... 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켰다. 한 번 흐트러지면 안 된다 믿으니까.


독립출판물을 출판하고, 판매하고, 글쓰기도 가르치는 지역 서점(?)을 알려주었는데 메모도 해놓고 인스타 팔로우도 해두었는데 아직도 제대로 못 보고 있는 건 순전히 나의 게으름(이라고 하기엔 나도 일이 많...) 때문이다. 방학이 찾아오면 꼭, 꼼꼼히 알아보고 도전하리. 녀석과 나의 글을 엮어서 세상에 내어 놓을 작정이니.


무튼, 이 글은 아마 지금 이 글을 보고 있을 녀석에 대한 칭찬이자 고마움인 건데,

덕분에 나는 회색빛의 일상에서 꽤나 괜찮은 순간들을 마련하고 맞이하고 있는 듯하다. 학교는 온통 네모난 것들 뿐인데 가끔은 마음이 둥그렇게 변하는 그런 시간들을 덕분에 갖게 되는 것 같아서 고맙다.


아쉽게도 녀석은 지금 중3이라서 몇 개월 후면 학교를 떠날 것이고

아마 나도 내가 올해에 준비하고 있는 도전이 성공한다면 내년에는 학교에 없을 확률이 높다. 아마 내년에 학교에 없게 된다면, 내년만 없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지금 근무하는 학교는 떠나게 될 것이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것은 없지만, 혹시 그렇게 된다면. 만약에 그게 현실이 된다면. 그렇다. (물론 그 반대라면 남겠지만.) 어쩌면 학교에서 만날 수 있는 마지막 해인 올해에 이렇게 글로 소통할 수 있어 행복하다.


값지다.


말을 하면 사라지는 것들이

글로 하면 남아서 좋고


말로 하면 거칠어지는 것들이

글로 하면 다듬어져서 좋다.


그래서 나는 글을 사랑하는데 그 사랑하는 글을 매일매일 쓸 수 있어 좋고

함께 나누고 생각하고 의미를 확장할 수 있어서 좋다.


다만, 조금만 덜 바쁜 시기부터 시작했다면 더욱 좋았을 것 같은 아쉬움이..


어제는 딸아이 책 읽는 동안 옆에서 내가 작년에 쓴 책을 읽어 보았다. 무슨 힘이 있어서 두 권이나 만들었다. 한 명씩, 한 명씩. 내가 만난 아이들 이야기를 읽어 나가는데 마음이 뭉클하다.


힘이 들어도 해볼 만한 일이다. 할 가치가 있다.

흩어진 기억을 모아, 잊힌 사람을 추억한다는 것,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훗날 지금 나와 글을 쓰고 있는 녀석과의 기억도 잊히고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 교단을 떠나는 순간이 와도

우리가 쓴 글을 보면,


2023년을 2025년을 추억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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