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일과는 끝이 났다. 오랜만에 넷플릭스로 '코리안 데몬 헌터스'를 봤으며 밀린 설거지와 빨래도 마무리했다. 그동안 마음을 많이 쏟았던 일들도 얼추 마무리되고 있고, 오늘은 학교에서 많은 일을 해 놓고 왔기에 이 시간(밤 11시 36분)에 윈도 노트북을 켜서 일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실로 오랜만에 맥북을 켰다. 한창 바쁠 때에는 곁에 있는 것조차 거추장스러워서(맥북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ㅠ.ㅠ) 따로 치워뒀던 것이었다. 갖가지 일을 하느라 정신없어 어디에 두었는지조차 잊고 있다가 오늘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맞네, 맥북...
타닥 거리는 키감이 좋아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으면서 딱, 30분만 나를 위해 보내기로 해본다. 30분 동안엔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으로, 결정!
학기말이 되면서 한 학기를 자꾸만 돌아보게 된다. 앞으로 나아가면 좋으련만 나란 사람은 항상 뒤를 돌아보는 게 습관이다. 그동안의 삶, 말, 행동 등을 반추하며 곱씹는 일은 어쩌면 버릇이고 습관이지만 그 덕에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2025년은, 잊을 수 없는 일이 많았다. 겨우 1학기를 보내놓고 이런 말을 하는 게 우습기도 하다만 실제로 그러니 번복할 생각은 없다. 지극히 개인적인 괴로움부터 어쩌면 삶의 전환점이 되는 일까지도 다채롭게 겪으며 나의 하루에 색을 입혀갔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며 반짝이던 하루가 회색빛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한 건 과중한 업무가 몰릴 때부터였다. 다른 곳이라면 2~3명이 나눠할 일을 나 혼자 도맡아 하게 되니 몸이 망가졌다. 끝없는 완벽주의, 나를 향한 날 서고 모진 말들은 마음을 상처 나게 했다. 도와주는 분들이 많았다. 처음이라 부족한 나를 챙겨주던 A, B, C, D 덕에 한 학기를 보냈다.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과 여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이들 덕분이다. 3학년 때 다시 만난 아이들은 한층 성숙해져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어색하면서도 대견하고 웃기기도 하면서 기특해서 많이 예뻐했다. (물론 그 마음은 지금도 여전하다.) 보통 일을 그 정도로 맡아서 하면 수업은 살짝 내려놓기 마련인데 그렇게 하기엔 내 성에 차지 않아 애써서 수업을 준비했다. 나를 뛰어넘을 정도의 수업은 아니었지만 내 딴엔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아이들에게 얼마나 와닿았을지 모르겠으나, 내겐 진심이었다.
복도를 지나치면 여기저기서 들리는 다양한 말들이 나를 달래주었다. 상처에 후시딘 발라주고 밴드 붙여준 것은 100% 아이들이었다. 단연코 받은 상처보다는 얻은 치유가 많다. 교실에 들어가기 전부터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은, 거짓이 아니다. 그네들을 만나는 매주 20시간은 큰 즐거움이었다. 그 마음이 차고 넘쳐흐르면 가끔씩 표현하곤 했다. 오글거림이 싫은 아이들은 외면하기도 하고, 우웩, 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을 만나면 이상하게 힘이 났다. 회색이었던 삶에 조금씩 색이 번지고 물들어갔다. 별 것 아닌 일이 웃었고 별 것 같은 일엔 같이 공감했다. 난 학년부장도 아니고, 학급담임도 아닌데 아이들이 참, 좋았다. 농담처럼 말했다. 너희들 졸업하는 날엔 난 졸업식장 안 들어간다고. 울 것 같아서. 반은 진심이고 반은 농담이었는데 지금은, 진짜 울 것 같아서 들어가면 안 될 것 같다. 이건 뭐, 짝사랑이다. 누구도 모르는 짝사랑.
벌써 2학기에 3학년 마지막 시험을 마치면 아이들과 함께 영상을 찍기로 약속해 두었다. 우리 영상 촬영을 하자. 1학년 때처럼 우리끼리 낄낄거리는 재밌는 영상을 만들고 영상제를 하자. 그래서 그때처럼 주연상, 조연상을 뽑자. 몇몇은 벌써 눈독 들이고 있다. 나는 다가올 2학기가 좋으면서도 벌써 아쉽다. 시간은 흐르고 나는 11월을 맞이할 것이다. 영상을 찍고 상영을 하면, 분명 금세 26년 1월이 오겠지. 그전에 많은 추억을, 쌓아야지. 언제고 어디서고 꺼내볼 수 있게.
개인적인 삶은 미안함의 연속이었다. 바쁜 엄마는 다정할 겨를이 없었다. 하루를 쪼개고 쪼개 살다가 집에 가면 늘어지고만 싶었다.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씻기고. 기본적인 것만 해주면 된다고 믿었던 내게 아이는 차곡차곡 불만을 쌓아간 것 같다. 이제야 보인다. 여유를 되찾은 지금부터 방학 내내, 내가 해야 할 것은 내 일 하느라 돌보지 못한 가족을 바라보는 것이다. 글 쓰고, 쉬고, 돌아보고, 나아가는 일. 그 안에 나와 가족을 두는 일이다.
누가 뭐래도 열심히 살았다.
한 순간도 허비하고 싶지 않아 무리해서 마지막에 꽤 오래 아팠지만 후회는 없다. 다만, 지금 내가 나아가려고 하는 방향이 어디인지는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성을 느낀다. 이렇게 살다가는, 겨울엔 더 아파질 것 같아서다.
18일에 방학을 한다.
그전에 굵직한 행사 하나만 끝내면 나는 진정한 자유가 된다. 그때부터 슬슬 글감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2025년에 만난 아이들 이야기. 그리고 그 안에서 조금씩 사람으로서 성장한 나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할 때가 되었다.
여름이 무르익어 가는, 7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