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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방학

여덟 살의 유니에게

by 안녕

안녕! 나의 사랑하는 유니.



밤은 깊어가고, 너도 깊이 잠에 빠져가는 지금은 7월 26일 토요일 자정을 넘어가고 있지.

엄마는 너와 함께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선 설거지를 마치고 노트북을 열었어. 오늘은, 꼭 너에게 편지를 써 주고 싶어서야.



그동안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과 감정은 넘쳐흘렀는데 막상 글로 옮기려니 역시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드문드문 또렷하게 기억나는 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엄마의 이른 방학으로 일주일 동안 너를 학교 앞으로 데려다주는 그 길이 어찌나 행복했는지 너는 알까. 이제는 많이 커버린 네 손을 잡고, 하나로 꽉 동여맨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친구들과 함께 뛰어가던 네 모습을 보며 느낀 흐뭇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건 아마 네가 엄마가 되어, 네 아이가 지금의 네 나이가 되면 느낄 수 있는 것일 거야. 그때서야 너는 네 뒷모습을 바라보며



"같이 가. 유니야!"하고 외치던 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겠지? 알아챌 수 있겠지.



"엄마. 8시 25분에 나가자."



갑자기 등교 시간을 5분이나 앞당긴 이유를 처음에는 알지 못했어. 횡단보도를 지나 아파트 담장 사이로 들려오는



"유니야!"



하는 어린 남자아이들의 목소리에 방긋 웃으며 달려가는 널 보면서 그제야 깨달았지. 아, 우리 유니가 저 친구들을 좋아하는구나. 저 아이들과 함께 등교하고 싶어서 그렇게 부지런을 떨었구나. 하고 말이야. 그런 부지런함이라면 언제든 기꺼이 도와줄 수 있었어. 여덟 살의 삶에서 친구란 너무나도 소중하고 반짝, 빛나는 것이어서 그 빛남을 위해서라면 엄마는, 언제든, 기꺼이, 무엇이든.



그렇게 일주일 동안 친구들과 함께 등교하는 길에 너는 언제나 함박웃음을 지었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너 그러다 지각해, 아니야 괜찮아, 유니야! 준영아! 하며 외치는 목소리른 맑고 깨끗했어. 이른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학교 가기 싫다고, 엄마는 방학을 일찍 해서 부럽다고 말하는 네 모습은 사라지고 초롱초롱 빛나는 네 모습만 가득했지. 어쩐지 엄마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게 좋아서, 8시부터 설레기 시작했어. 오늘도, 오늘은, 그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 만나서 반짝이는 네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하고.



교문을 통과하면 꼭 맞춰 울리는 알람을 무시하고 네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어. 엄마 제자가 그러더라고.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그러니까 그 순간을 잘 기록해야 한다고 말이야. 스탠드 위를 부러 걷는 네 모습, 중앙 현관을 지났을 네 모습, 그리고 계단을 올라 3층 1학년 1반 교실로 들어가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할 네 목소리를 상상하며 엄마는 연신 셔터를 눌러댔지. 속으로 수천번 되뇐 사랑 해, 와 함께.



그렇게 오늘은 금요일이야. 넌, 두 밤만 자면 월요일에 방학을 하지. 엄마와 함께 어떤 놀이를 할지 미리 준비하는 네 마음은 얼마나 설렐까. 더 이상 돌봄 교실이 아니라, 초롱반이 아니라, 집에서 엄마와 함께, 편하게 마음껏 늘어질 수 있는 시간은 네게 얼마나 크게 와닿을까, 생각하니 새삼 여름 방학이라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져.



일하는 엄마로서 늘 마음 한편 지니는 무거운 돌멩이가 하나 있어. 엄마랑 학교를 가는 게 제일 좋다, 고 말하는 너에게 엄마 직장도 학교라서, 엄마가 빠질 수가 없어서, 당장 휴직을 할 수 없어서, 너를 돌봄 교실에 보내고, 태권도장에 보내고 피아노 학원에 보냈지. 너무 많은 스케줄을 감당하지 못할까 봐 염려했고, 걱정했어. 학교에서 정신없이 일을 하다 세 시가 훌쩍 넘어있는데 네게로부터 와야 할 알람이 도착하지 않았을 때의 불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어. 불안의 가지는 무한히 확장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심정을, 너는 몰랐으면 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무척이나 잘 해내 주었어. 낯선 친구들 사이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될 때, 유치원 때 친했던 친구가 거친 말을 이유 없이 쏟아 내거나, "너, 쟤랑 놀지 마." 하며 두 명의 친구가 이유 없이 널 배제했을 때에도, 너는 아주 조금 힘들어하다가 이내 툴툴 털어내곤 했어.



"속상하긴 해. 그런데 괜찮아. 무시하면 돼."



하는 말이 고작 여덟 살인 네 입에서 나올 때면, 엄마는 속상하면서도 어느새 이렇게 커버린 네가 대견하면서도 안타깝고, 그런 마음이 들었어.



"엄마는, 학교 가야 하니까. 그래서 나는 돌봄 교실에 가야 하고 피아노, 태권도를 가야 해."



하며 똑 부러지게 말하는 너를 보면, 나는 또 한 없이 미안해지곤 했어. 보통 1학년 때 휴직을 하는데 엄마는 일하느라 돈 버느라 그러지 못했잖아. 일하느라 놓쳤을 수 있는 너의 봄과 여름이 보이지 않게 네 마음에 생채기를 냈을까, 항상 두려웠지. 그런데 넌 적어도 엄마의 여덟 살 보다 단단했고 씩씩했어. 눈물은 흘렸지만 스스로 그칠 줄 알았고, 자주 짜증을 부렸지만 마음을 정리할 줄 알았어. 너는, 그렇게 혼자서 조금씩, 천천히 성장하고 있었어.




유니야.

사랑하는 나의 유니야.

낯설고 힘에 부쳤던 봄이 지나 뜨겁고 찬란히 빛나는 여름이 왔어. 그 여름엔 너를 가장 사랑하는 엄마도, 함께 있을 거야.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도 함께 피하고 무섭게 쏟아지는 비도 같이 맞아줄 수 있는, 그런 엄마 말이야.




그러니 이번 여름 방학 때는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 엄마를 쏙 빼닮은 너는 나가는 것보다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것을 좋아하니, 그렇게 한 달을 보내자. 그래서 사랑으로 믿음으로 행복으로 가득 충전한 푸르른 여름을 우리 서로 채워 보자.



무르익은 여름의 끝에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지금 이 순간을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게.




한 학기 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너는, 누구보다 멋지게 성장한, 그래서 영원히 기억될 여덟 살이었어.




사랑해. 유니.




2025년 7월 26일 (토)

사랑을 담아, 엄마가.




사진 출처: chat GPT (여름 아침, 등굣길,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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