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고개를 들지 않았다. 저러다가는 목이 꺾여서 디스크가 올지도 몰라, 아니 거북목. 거북목이 될지도 몰라, 하는 마음이 어느덧 분노로 바뀌어 가고 있던 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벌써 1시간이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말이 되는 거야? 하며 혼쭐을 내주어야겠다, 고 다짐하던 참이기도 했다.
“쌤."
한 시간 만에 들려온 목소리는 너무도 맑고 깨끗했다. 으레 오랫동안 다물어진 입안에서 고여있던 공기가 긁히며 나는 쇳소리, 콜록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는, 그래서 쳐다보지 않을 수 없는 목소리로 현수는 말했다.
“저는요.”
“…”
“진짜로요.”
“…?”
“진짜로.”
말할 듯 말 듯. 적절한 긴장감을 섞어 말할 줄 아는 녀석이었다. 이따금씩 아이들 앞에서 놀리듯 장난친 적이 있었다. 사실은 말이야, 아, 아니다. 하며 말을 끊고는 아이들의 야유가 들리면 그제야 선심 쓰듯 공개하던, 그런 말장난. 아이들이 가끔은 치를 떨며 싫다고 했는데 이제야 이유를 알 것 같다. 저 녀석에 무언가 맛있는 것을 쥐어 주고서라도 다음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러니까, 진짜로, 진짜로 뭐?
“고민이 없어요. 진. 짜.로.”
진. 짜.로.
그제야 제 얼굴, 제 눈빛을 보여준다. 운동을 좋아해 까맣게 그을린 얼굴. 대충 다듬었지만 어쩐지 세련되어 보이는 머리스타일. 그리고 도수가 높아 눈이 작아 보이는 두꺼운 안경 너머의 눈빛은 꽤나 서늘했다.
굳게 다물렸던 입술에선 똑똑히 세 음절이 들려왔다. 한 글자, 한 글자 어찌나 힘을 주어 말하던지, 듣는 내가 기에 눌릴 정도였다. 세 음절에 잔뜩 힘을 주어 말하는 데 어찌나 힘을 주었던지 같이 있는 안뜰의 공기마저 순간, 서늘해지는 것 같았다.
거짓말.
가르친 시간만 2년이다. 담임으로 1년, 교과로 1년. 도합 2년의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졸 지언정 자지는 않았고, 잡담을 하다 걸리면 죄송하다고 말할지언정, 쟤가 먼저 말 시켰어요, 라든가 쟤는 왜 안 혼내요? 따위의 변명을 늘어놓는 아이는 아니었다. 토마토 같이 겉과 속이 같은. 요새 보기 힘든, 그런 녀석이었으니까.
허나, 자그마치 한 시간이다. 나는 금요일 오후 약속을 모두 취소하고, 5시 30분까지 녀석을 앉혀 놓곤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한참을 고르고 골라 생각한 말이 고작 ‘고민이 없다’니. 믿을 수 없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분명, 오늘 수업 시간만 해도 그렇다.
그런 날이 있다. 수업을 5분 남겨 놓고 급한 공문이 내려와 처리하느라 늦게 들어갔는데 아이들은 마침 교과서를 삼분의 일 이상이 가져오지 않아 수업 자체가 안 되는, 분필을 쥐고 쓰는 족족 부러져 예쁘게 판서가 안 되는 데다가, 평소 입지 않은 치마를 입어 교실을 돌아다니는 것이 어쩐지 어색하고 불편한 날. 그러니까 총체적 난국인데 수업도 최악인 그런 날.
그런 날에 현수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교과서가 없고, 그 흔한 지우개 달린 연필도 없었다. 자는 아이가 아닌데 엎어져 있었으며, 귀에는 평소 절대 (수업 시간만큼은 끼지 않는) 에어팟이 꽂혀 있었다. 몇 번을 불러 깨워도 일어나지 못하고, 자신을 깨우는 짝꿍의 팔을 뿌리치다 그만 분위기까지 싸하게 만드는, 그런 현수가 유난히 눈에 띄었던 것이다.
그날의 모든 것들이 내게 ‘선생님. 죄송하지만 오늘 수업은 망했는데요.’라고 말한 것처럼 그날의 모든 상황은 내게 ‘선생님. 오늘 현수가 이상하네요. 분명 고민이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촉. 식스센스. 영감.
따위가 뛰어났다. 다른 동료들은 찾지 못하는, 아니 느끼지 못하는 무언가를 느껴왔다. 꼭 세 명씩 다니다가 한 명은 울면서 끝나는 여자 아이들의 관계. 수업 중 발표를 할 때, 누군가가 앞에 나오면 보이지 않게 시선을 교류하며 비아냥 거리던 가시 같은 마음들. 말 못 할 우울감에 삶을 멈추고 싶은 녀석들에게서 보이는 어떤 슬픈 표정들.
다가가면 열에 아홉은 내 앞에서 울었다.
이렇게 제 마음을 알아준 건 쌤이 처음이에요.
…. 우리 반에서 저 은따예요.
쌤… 저 계속 살아도 돼요? 그래도 될까요?
나는 가만히 손을 잡아주거나, 눈물을 닦을 휴지를 건네주었다. 그러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다려주었다.
아이들은 날, ‘국어쌤’이 아닌 ‘야매상담쌤’으로 불렀다. 상담실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한 아이들이 꼭, 나를 찾았다. 교무실 앞 안뜰은 은밀한 아지트. 저녁 시간까지 상담을 할 때면 학교 근처 떡볶이집, 중국집에서 그날의 메뉴를 골라 포장해 오곤 했다. 보낸 시간만큼 켜켜이 쌓인 나름의 노하우는, 나를 특별한 사람처럼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러니 오늘 현수는,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것이 틀림이 없다.
오랜 촉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머릿속에 AI가 있었다면, 그래서 현수의 상황을 프롬프트에 입력해 주었다면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 분명했다.
[네. 지금 현수 학생은 고민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수업 시간에 집중을 잘하지 못하고 귀에는 에어팟이 꽂혀 있다는 것은 지금 고민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친구에게 짜증을 냈다는 건 지금 감정 조절이 어렵다고 보여요.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겪는 문제로는 크게 성적, 친구, 그리고 삶에 대한 불안 등이 있는데요. 현수 학생의 경우는…]
AI는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나는 있을 수 없었다. 자그마치 15년 동안 쌓인 내공. 보이지 않는 눈, 그 감각. 오늘 나는 기필코 현수의 고민을 듣고, 상담을 해주고야 말 것이다. 그것이 오늘 나의 미션.
“거짓말하지 마. 너 집에 빨리 가고 싶어서 그러지?”
“….”
“너 오늘 되게 이상해. 평소 같지가 않다고.”
잠시 흔들리는 눈빛을 보내는 현수다. 이때를 놓칠 수 없지.
“현수야. 힘들지? 고등학교 준비하는 것도 친구들하고 지내는 것도. 원래 너처럼 밝고 잘 웃는 애들도 가끔은 마음속에 그늘이….”
“없어요. 그런 거.”
“?”
“없다고요. 그런 거.”
“아니. 있다니까? 원래 밝은 애들이 사실은 마음속이 힘들어서 그거 숨기려고 그러는 경우가 있어. 너 평소에 애들하고 사이좋은 것도 사실은 너 힘든 거 들킬까 봐 그런 거 아냐?”
“…. 하….”
깊은 한숨이 이어져 나온다. 순간, 안뜰의 공기가 한 차례 더 바뀐다. 차갑고 뜨겁고 깊고 어둡다. 하나, 멈출 수는 없다.
“평소랑 달라. 내가 하는 한현수, 현수는 그런 애 아니거든? 그러니까 말해봐. 너 요새 고민 있지?”
그때, 그 순간. 나는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적어도 길고 긴 한숨이 안뜰의 공기를 바꾸었던 순간, 아니 흔들리는 눈빛을 보냈던 순간, 아니 그냥 수업 시간에 잠들었던 순간까지 돌아가서, 나 역시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보냈어야 했다.
고민 있느냐, 는 말의 끝에 현수는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눈빛을 내게 쏘아댔다. 강한 그 눈빛이 너무 따가워 나는 잠시 시선을 돌려 창가의 화분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쌤은 제가, 무슨 일이 있기를 바라세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창밖엔 어둠이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온종이 뜨겁게 세상을 달구던 태양은 밀려오는 어둠과 조우하며 은은한 보랏빛을 퍼뜨리고 있었다. 시계가 묵묵히 제 일을 하며 째깍거릴 때, 나는 세상이 멈춘 것처럼 그대로 굳어버렸다. 현수의 눈은 흔들림 없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또박또박.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한 마디를 내뱉고야 말았다.
“제가, 무슨, 일이, 있기를, 바, 라, 시, 냐, 고, 요.”
어느덧, 저녁 여섯 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