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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야 말을 하지 (1)

#. 모둠 수업을 망치는 방법

by 안녕

“선생님! ‘디디다’가 무슨 뜻이에요?”


순간, 멈칫했다. 설마 ‘디디다’를 모를 수 있을까 싶어 따로 설명 안 했는데

정말 모르는 아이가 나타난 것이다. 뿐 아니었다.

‘움트다’가 뭐냐부터 심지어 ‘북녘’이 뭐냐고까지 물어보는 아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교실을 한 바퀴 휘, 둘러보았다.

아이들은 연필을 쥐고 머리를 싸매며 끙끙대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봄은>이라는 시를 해석하기 위한

여섯 가지 질문이 놓여있었다.

시대배경까지 알아야만

의미 있게 해석할 수 있는 시여서

나름 야심 차게 준비했던 수업이었다.


필사도 하고,

시 해석도 하고,

모둠별로 토의도 하며

나름 살아있는 모둠 수업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 이 정도면 할 만 한데?

- 역시, 모둠 수업을 해야 아이들이 배우고 성장하는 군.


하며 자신감을 얻었다.


헌데, 자세히 둘러보니 아니었다.

반마다 차이가 분명했다.

어떤 반은 정말 나름대로 시어의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며 토의했다.

하지만 어떤 반은 서로 제 학습지를 풀기만 급급하고

대화를 하지 않았다. 몇 번이고 대화를 독려했지만

대화라기보단 잘 한 아이의 답을 베끼는 수준이었다.

그나마 이것은 나은 편. 수업하기 가장 어려운 반은

그 어떤 것도 할 의지가 없는 경우였다.


처음엔 화가 났다.

내가 새벽 2시까지 준비한 수업인데

어떻게 이런 식으로 참여할 수 있지?

하며 섭섭함까지 밀려왔다.

그러다 그만, 7시간을 연속으로 수업하는 날

평소 장난꾸러기들이 넘실대는 반에서

일갈하고야 말았다.


- 너희는 그냥 모둠 하지 마. 어차피 안 하는데

준비해서 뭘 하냐. 그냥 강의할게. 대신에 내 수업 듣는 애들

방해하지 마.


교무실에 앉아 밀린 일을 하면서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침에 사다 놓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이미 얼음까지 다 녹아 마치 한약처럼 고여있었다.

수업을 마친 내 마음에도

풀지 못한 앙금이 굳게 자리 잡고 있었다.


나름 수업에 자신 있다고 자부하고

공개도 여러 번 하고 아이들에게

“국어선생님 수업 재밌다. “고 들어왔던 터에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어떻게 중3이 그 정도 어휘도 모를 수 있지? 하는 마음은

자꾸만 칼이 되어 무딘 생각을 날카롭게 베어냈다.

학력이 낮아서 그래,

기본이 안 돼서 그래,

공부에 대한 의지가 없어서 그래.


원인을 아이들에게 돌렸다.

나는 열심히 했고

너희들이 따라와 주지 않은 거야.

그러니까 나는 잘못이 없어.

난 정말, 잘못이 없다고!


난, 정말 최선을 다 했단 말이야!


누구에게 말하는지도 모를 감정을

속으로 되뇌자, 아주 얄팍한 위안이

나를 찾아왔다.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급히 몸을 밀어 넣으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급히 닫힌 지하철 문 안으로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따라온 줄도 모르고.


그렇게 끝이 나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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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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