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악화의
비밀은 바로 숫자에 있었다.
3주.
무려 3주에 걸친 수업이었다.
하필이면 수행평가와 연결 지어 깊이 있게 가르치고자 한 욕심이 화근.
나의 아이들은 조선 후기를 일절 알지 못했고
어휘력은 미약했다.
고전 소설과 현대 소설을 구분하지 못하며
'허생전'을 읽는 시간을 주어도
끝내 읽지 못한 아이들이 꽤 있었다.
심지어 8월 중순부터 9월 초까지
지구는 쉴 틈 없이 뜨거웠고
교실의 에어컨 온도는 26도에 맞춰져 있었다.
수업을 할 때마다 갸웃거리는 아이,
학습지에 낙서를 하는 아이,
대놓고 자는 아이,
억지로 듣고는 있는데 영혼은 딴 곳에 가 있는 아이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할 때마다
가장 열과 성을 다해 말하는 것은
오로지 나뿐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상황을 외면한 채
6차시 정도의 수업을 10차시 가까이 늘리니
여론이 안 좋아질 수밖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아이들이 묻던 질문.
"오늘도 허생 전해요?"
그 말은 즉
"허생전 지겨워요. 그만해요." 였던 것.
내가 세운 목표에 빠져 반응을 놓쳤다.
고등학교 수준의 수행평가를 하고 싶은 욕심에
정작 앞에 있는 아이들을 잊었다.
여론이 좋을 수 없다.
좋다면 그것은 팬심이고
나쁜 게 어찌 보면 정상이라 할 정도.
아주 어릴 적 아버지가 술 한 잔 걸치고 들어오시면
나는 그게 솔직히 힘들 때가 많았다.
평소 싫은 소리 못하는 아버지였다. 술김에 하는 이야기들은
멈출 줄을 몰랐다. 새벽 2시가 다 되어서야,
이제 자야겠다, 하며 들어가신 후에야 끝나고야 마는
시간들을 이해하기에 나는 어렸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을 땐
그 말을 줄여야 한다.
안 하고 기다려 주면 더 좋지만
굳이 해야 한다면
다듬고 다듬어서 짧게, 그리고 굵게 하면 된다.
<허생전>을 10차시로 늘여 가르치는 것만이
제대로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짧고 굵게 핵심만! 가르치는 게
아이들에겐 훨씬 효과적으로 기억될 수 있는 것이다.
다행히 모든 반의 10차시 수업이 마무리되고
내일 4반의 10번째 수업이 남았다.
여론을 다시 되살리기 위해선
덜어내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인생도 수업과 같아서
덜어내야 좋은 것들이 많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