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빈칸 채우고, 밑줄 긋고, 시험에 나온다고 강조하는 수업이 지겨워진 참이었다. 마침 중3을 가르쳤고, 여태껏 내가 만난 아이들 중에 가장 잘 따라와 주는 편이었으니 욕심을 좀 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폭염 속 개학 끝에 처음 배우는 작품이 <허생전>.
조선 후기의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만 이해가 되는, 박지원이라는 실학자의 사상과, 더 나아가 약간의 어휘력이 받쳐줘야 이해가 되는 소설이, 하필이면 제일 처음.
평소라면 그냥 읽히고, 빈칸 채우고 학습활동 정리해 줄 부분을 길게 기이 이 이 이일 게 늘였다.
1차시: 노트북을 활용하여 조선 후기의 시대상을 찾고
2차시: 실제 작품을 1시간 가까이 읽고
3차시: 작품의 내용을 빈칸 채우기를 통해 확인한 후
4차시: 수행평가와 연계되는 핵심 질문을 스스로 채우고, 간단한 에세이 쓰기를 연습한 후
5차시: 작품 속 인물의 대화에서 알 수 있는 시대상을 탐구 (그전에 4차시 에세이 쓰기 피드백!)
6차시: 허생과 이완대장의 독대에서 나온 대화의 의미, 속마음, 역사 등을 분석하고
7차시: 박지원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바, 즉- 주제를 탐구한 후에, 2025년 현대와 비교하여 배울 점을 찾은 후.
8차시: 에세이 쓰기 최종 연습
9차시: 모둠별 미니 토론!
10차시: 수행평가
이렇게 계획을 한 것이다.
지금 현재 대부분의 반이 5,6차시를 향해 가고 있는데 문제는 6차시.
좀 더 깊이 알려주겠다고 해서
역사적 배경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 시대)을 야매로 풀어주니
아이들이 다 졸아버린다. ㅠ.ㅠ
내 수업 때 자거나 조는 꼴을 못 보는 나인데
어쩐지 나도 이 수업 *6차시*를 할 때에는 자신이 없어져 그냥 둬 버리고 말았다.
어제는 5반 수업을 들어갔다가 역시나 애들이 다 꾸벅꾸벅하고 답이 없길래
꾸역꾸역 6차시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평소 수업에 대해 조언을 자주 구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는 한 녀석에게 물어보니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부분이 너무 길고,
뒷부분의 이완과 허생의 대화에서 오해가 될 만한 표현이 있는 것 같다고.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감정에 휩싸여
그렇게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4교시에 학습지를 바꾸어 만들어 3반을 수업했다.
깔끔하게 똑, 떨어지는 게 나쁘지 않았다.
수업을 준비하다 보면
자꾸 욕심이 난다.
이 아이들이라면 고등학교 수업처럼 할 수 있지 않을까?
질문 하나 툭, 던지면 저들끼리 이야기하고 생각 나누면서
뭔가를 만들어 내지 않을까?
그런 욕심에 있는 체력 없는 체력 다 끌어다 수업 자료를 준비하는데
아무래도 이번 수업은 망한 것 같다.
<허생전>이 애초에 어려운 데다
아이들의 배경지식도 거의 없으니
더더욱.
그래도 끝까지 가보기는 해야지.
그래야 망하든 성공하든 뭔가 배움이 있겠지.
아휴.
미니토론까지, 갈 수 있을까?
애타게 노력하고 고민하는 내 마음을 알긴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