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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연휴의 끝에서 만난 여섯 권의 책들

by 안녕



오늘, 유니에게


느지막이 찾아간 동네 서점에는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책을

고르고 있어.



그리고 그 속에

누구보다 진심으로 동화를 고르는

엄마와 네가 있지.



연휴라는 핑계로 용돈을 잔뜩 받은

네가, ‘책을 사고 싶다’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었어.

그리고 그 시작은 또래 아이들이

각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는 내용을 담은

<영재발굴단>을 보고 나서부터였고.



너와 나는 아침을 먹으며

그 방송을 열심히 시청했고

한창 집중해서 보던 너는,

“엄마. 나 오늘 서점 가서 책을 사고 싶어.”라고

말을 했어.



서점, 서점이라니.

연휴의 끝. 쌓여있는 감정을 해소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잖아.

흔쾌히 그러마, 하며 우리는 서점으로 향했어.



단, 규칙이 있었지.

흔한 남매와 같은 만화책은 이번에 빼자,

글밥이 있는 동화책을 사자,

너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는 책을 사자.



꽤 까다로운 조건이었지만

너는 생각보다 잘 지켜냈어.

동네 서점에 들어간 후 잠시 문제집 코너를 뒤적이다

이내 글밥책 코너로 달려가

한참을 고르고 또 골랐지.



서점보다 도서관에 자주 데려가는 편인 엄마는

오늘만큼은 지갑을 열기로 했어.

어른들께 받은 용돈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니까.



동화는 워낙 얇아서

그 자리에 읽고 가는 사람들이 많은가 봐.

투명한 포장지로 꽁꽁 묶여 있더라고.

그저 책 제목, 표지, 그리고 인터넷 서점의 후기로만

짐작한 채 우리는, 4권을 골랐지.

유명한 깜냥과 내 맘대로 시리즌 뺐어.

전작이 재미가 없었다지?



무엇보다 네가 관심을 보인건 ‘설전도 수련관’ 시리즈.

어떤 상황이든 적절하게 말하고 싶은 네 욕망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어서 나는

알게 모르게 너를 응원하게 되더라.



나머지 두 권은 ‘수학’과 관련된 책.

엄마가 고1부터 수학을 포기했는데

돌이켜 보니 수학은 논리학이라

공부하면서 논리력을 탄탄히 키울 수 있더라.

포기가 빨라, 나를 깊이 할 기회를 잃었어.



나를 너무 닮은 너는

여덟 살임에도 수학을 싫어하고 있어.

적어도 너는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욕심을 부려 수학책을 더했어.

하나는 엄마가 읽을 것. 하나는 네가 풀어볼 것.



부린 욕심과 반대로

천천히 수학이란 거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자.



아주 오래전

나의 엄마는 책을 좋아하지 않았어.

내가 책을 사 오면 그저

“그게 재밌니?”하며

배고픈 나를 위해 음식을 차려주곤 했지.



따뜻한 흰쌀밥을 앞에 둔 나는

엄마의 사랑을 확실히 느끼면서도

나중에 나의 아이에겐

책 읽는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엄마가 되기를 막연히 상상했어.



동화를 좋아하고

찾아 읽는 이유도

그중 하나야.



<절교의 여왕>은 아마도

내가 너보다도 먼저 읽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해주게 되지 않을까?



너와 함께 잠들기 전에 나눌

수많은 이야기가 벌써 기대돼.

그 이야기들은 반짝이는 별이 되어

우리의 우주 속에서 빛날 거야.



그러니 유니야.

네가 수학 공부를 하고 있는 지금

나는 오늘의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

훗날 추억할 테니

너는 그저 오늘처럼

많이 웃고

많이 놀고

행복하렴.



2025년 10월 8일 (수)

연휴의 끝자락에서

너와의 이야기를 고대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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