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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일기

by 안녕

유니가 잠든 밤, 나는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일을 하고 있다.


어지러이 놓인 책상 위에서 문득, 작은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지하철을 오가며 해야 할 일을 적어둔 수첩이었다. 스르륵, 하고 넘기는데 언젠가 유니와 함께 장난치듯 그린 그림이 눈에 띈다. 아마도 어디엔갈 가서 무언갈 기다리다 지친 녀석이 못생긴 엄마를 그리며 깔깔 거리며 웃었을 테다.


연필로 꾹 꾹 눌러 그린 그림에서 유니의 넘어갈 듯 웃어젖히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림 속 나는 어딘가 일그러져 있지만 즐거워 보인다. 가만히 그림을 쓸어 넘겨 본다. 우리는 그날, 충분히 재밌고 분명히 행복했구나.


잊히지 않을 것 같은 하루도 시간의 흐름에 무뎌져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만다.

순간을 잡아서 행복을 누려야 하는 이유다.

아이가 잠든 밤. 나는 한 장, 한 장 종이를 넘기며 그날을 그린다.


종이 속에서 배어 나온 웃음이 내게 번진다.

손끝에 가만히 고인 그날을 느껴 본다.



고요한 웃음이 사위를 채우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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