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하늘이 갑자기 흐려지다 비가 오는 날이야.
오늘의 엄마는 중요한 일을 마치고
우산을 든 채 너를 만나러 갔단다.
땀이 흠뻑 젖은 네 얼굴은
멀리서도 엄마를 찾았고,
나는 10미터도 떨어진 거리에서
너를 알아보곤 반갑게 손을 흔들었어.
집에 가는 길에
손을 맞잡은 우리는
평소처럼 두런두런 오늘 하루를 나누었지.
엄마는 커피를 두 잔이나 마셨어,
아까 전화 왔는데 못 받아서 미안했어, 하며.
가만히 듣던 너는 갑자기
엄마, 있잖아,
하며 네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내기 시작했어.
엉킨 실타래를 풀듯이.
쉬는 시간에 선생님이 안 계신 사이에
친구와 갈등이 생겨버렸고
전혀 관련 없는 친구가 개입하는 바람에
엉망이 되어버렸지.
심지어 억울하기까지 했어.
평소라면 꾹 참았을 너지만
어느새 훌쩍 성장해 버린 너는
다시 돌아오신 선생님께 상황을 말씀드리곤
관계를 정리했더라.
그 자리에서 의젓하게 해결하곤
넘쳐 나오는 눈물을 꾹꾹 참아선
집에 오자마자 터뜨리고 말았지.
오래오래 눌러 말라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사실은 나올 때만
기다리고 있었나 봐.
한참을 울게 두었어.
엄마는 어릴 때
"울지 마. 그게 울 일이야?"
라는 말이 그렇게 섭섭하더라고.
나는 울고 싶은데 뚝, 그치라는 것도 미웠어.
적어도 너는, 그저 울면서
다 쏟아버리길 바랐거든.
그런데 유니야 아니.
너 많이 성장한 거.
여섯 살 때는 하지 못한 걸
여덟 살이 된 지금은
너끈히 해 내고 있단 걸.
"난 엄마처럼 말할 용기가 없단 말이야!"
라고 뾰로통해 있지만 사실 오늘 교실에서
있던 일을 해결한 사람은 바로 너란 걸.
네 작은 마음 안에
용기의 씨앗이 싹트고 있었다는 걸.
그 마음을 너무나 칭찬해주고 싶었어.
격려해주고 싶었고.
지금 이대로도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어.
그래서 눈물이 그친 네 눈을 바라보고
널 꼭 안아 주며 말했어.
"유니야. 오늘 하루 너를 지킨 건, 바로 너야."하고.
"오늘처럼 넌, 언제고 잘 해낼 수 있을 거야."하고.
그러니 어느새 평온해진 너는
내 품을 벗어나
거실에서 자유롭게 흘러가듯
놀이를 시작하더라고.
다시 찾은 평화에 엄마도 한시름 덜었지.
엄마가 된다는 건
어린 나를 자주 마주하는 일 같아.
아주 어릴 적 엄마는,
친구에게 상처 주기 싫어서
내 마음을 꽁꽁 숨기고
마냥 웃는 아이였어.
그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
네가 원하는 걸로 해.
라는 말은 우정을 지키는 듯 보였지만
결국 그렇게 세워진 우정은
오래가지 않아 깨지고 말았지.
네 모습을 보면 그 시절의 나를 자꾸만 마주해.
누구에게도 상의하지 못했던,
그래서 속앓이 하며 끙끙 앓았던 나를.
너를 키우면서
엄마는 내 안에 아직 자라지 못한
나도 함께 키우는 기분이야.
너에게 사랑을 주면서
내 안의 어린 엄마에게도
사랑을 주는 꼴이지.
그렇게 엄마도 어른이 되어가나 봐.
네가 성장하듯이.
엄마도 진짜 성장하는.
그러니
엄마도 언제나처럼
네 마음을 읽어가며
다정하게 살펴줄게.
너를 보는 일은
나를 보는 일이기도 하니까.
밤이 깊어간다.
꿈속 세상에선
편하게 마음껏 뛰어놀고 있어.
엄마도 금방 그곳으로 갈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