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의 이야기
최근, 어쩌면 오래전부터 '인간의 의미 또는 정의'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인간은 '미완성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언할 수 없기도 하다. 이렇게 모호한 결론에 다다르게 된 것은 오래전 일이 아니다.
나는 본래 인간으로서 인간관계에 그리 열중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동네가 시외여서 그런지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6년까지 거의 다 아는 사이였다. 그나마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덜했지만, 점점 학년이 올라가다 보니 같은 학년이면 모르는 사이가 거의 없었다. 그저 맨날 만나던 친구랑 놀고 반 바뀔 때만 노는 애들이 달라지던 평탄한 인간관계였다. 중학교를 올라와서도 비슷했다. 1학년, 1학년에서도 1학기, 1학기에서도 3~4월만 어색하지 그냥 시간이 지나면 남자애들은 다 부대끼며 놀았다. 그런데 어느샌가 친구들과 깔깔 웃으면서도 왠지 모를 공허함이 스멀스멀 느껴졌다. 친구가 없는 건 확실히 아니다. 심심하면 연락할 친구도 있었고 같이 얘기할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뭔가 공허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 스스로 그러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본다. 그냥 떠나가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는다는 그런 마음가짐이었다.
그러나 중학교 2학년 들어와서 상황이 점차 바뀌었다. 친한, 그리고 좋은 친구들과 만났고 정말 좋은 담임 선생님, 선생님들도 만났다. 심심하면 연락할 친구가 있었고 같이 얘기할 친구도 있었다. 전과 그렇게 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내 마음속은 점점, 아주 조금씩 바뀌었다. 마치 흰색 캔버스에 흰색 유채 물감을 켜켜이 쌓듯이 아무도 모르게 쌓여 갔다. 친구들과 웃음에 한 겹, 선생님과 대화의 한 겹, 하루하루 지날수록 캔버스에는 눈이 내렸다. 아주 흰 눈. 따뜻하게 안아주는 눈. 유독 그날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렸음은 이 탓일까?
이제는 사람이 조금 소중해졌다. 전에는 기계적으로 살며 하루하루를 보냈고 망각했다. 매일 똑같은 일상에 매주 똑같은 일정,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하지만 나름대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기니 아까웠다. 그냥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전과 똑같이 기억의 저편으로 흘러가는 게 싫었다. 매일 흘러가는 구름, 매일지는 석양, 매일 지나는 길, 매일 서 있는 나무. 이게 싫었다. 그래서 사진을 찍었다. 구름 사진을 찍으니 어제의 구름과 다른 구름이 보였고 나무 사진을 찍으니 가지치기한 나무가 보였다. 사진첩을 넘기며 그때의 하늘을 추억한다는 것은 꽤 낭만적이었고 꽤 의미 있었다.
3학년으로 올라왔다. 솔직히 친한 친구들과 붙지 못해 약간의 걱정이 있었다. 뭐, 새로운 학년은 누구나 그러기 마련이다. 하지만 새로운 변화는 있었다. 바로 해외로 가는 과학 캠프였다. 오래 준비했고 오래 힘들었다. 하지만 출국만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힘듦은 가시고 설렘만이 남아있던 그런 때였다. 그리고 해외로 떠났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60명 정도였다. 그중에서 나, 우리 팀원, 지도 선생님까지 포함해 4명을 제외하고는 다 생판 남이었다. 생판 남과 해외를 간다는 것은 나에게는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데 더 이상하게도 나는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정말 새로운 즐거움을 느꼈다. 오래전에 느꼈던, 새로운 사람을 사귄다는 것의 즐거움이었다. 친구가 된 것을 넘어서 다 같이 웃통을 까고 수영을 하기도 했다. 이것은 내 캔버스에 유색 물감을 뿌린 정도가 아니었다. 그냥 캔버스에 검은색 페인트를 부어버렸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캔버스를 다시 보았다. 갑자기 바뀌어버린 바탕에 대한 감상을 마치고 깊게 들여다보았다. 그제야 진정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었던 그녀에게 ’ 영어 선생님’하고 말을 꺼내자 딱딱하게 그게 뭐냐고 말한 그녀의 서운함과 질문을 잘못 듣고 엉뚱한 대답을 하자 벌써 귀가 안 좋냐며 호통을 치던 그의 친절을. 그 무더위 속의 잠깐의 만남과 그 잠깐의 이별 속에서 내 주변 한 명 한 명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어차피 내일 만날 사람인데 뭐, 그리고 솔직히 안 만나도 상관없어.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면 돼.’
떠나가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이라며 그저 자신을 합리화했었다. 내 주변 사람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내가 그들을 그렇게만 대해온 것에 대해서 미안해졌다. 옆을 보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되돌아보면 학교에서 다 같이 단합 대회를 했을 때 우리 반에 없는 떡볶이를 옆 반에서 담아와 하나씩 먹으라고 하던 그녀에게 돈이 아깝다며 친절 한 번 베풀지 않는 나의 인색한 모습은 별로였다. 이것을 알게 된 나는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나는 그저 장난이라고 얼버무렸었지만, 그녀의 속상한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녀의 얼굴을 보고 나서부터 주변인들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해봤다. 하지만 1학년 때의 일은 희미했고 2학년 때의 일은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슬펐다. 그, 그녀와 웃으며 보냈던 순간들은 이제 웃음의 이유조차 모른다. 나는 이것들을 ‘현재를 사는 사람’이라며 합리화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모르는 자기만 아는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사실 내가 뭔가를 할 때면 항상 누군가가 곁에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이런 모든 반성은 결국 "미완성인 사람들이 모여 미완성이 된다."라는 것이라고 귀결되었다. 나는 나를 적어도 평범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미완성 인간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사고방식이 달라졌다.
"내가 불안해서 너한테 어떻게 하라고 하냐?"
라고 항상 말하던 친구에게
"야. 이 부분은 네가 해봐."
라고 말하게 되었다. 함께 해결하려고 했다. 결과는 몰라도 과정은 좋아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우리의 삶’을 살아야 하는구나. 우리의 삶을 살면 비로소 과정이 아름다워지는구나. 완성된 결과의 아름다움 말고 미완성된 과정의 아름다움이 있구나. 미완성 인간이었던 나도 함께하면 미완성의 아름다움이 생기는구나.
그래서 나는 사람을 정의한다면 이렇게 말하겠다.
‘미완성 작품(진행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