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네 곁엔 현주가 있었다.

나의 이야기

by 안녕

깜빡, 깜빡이는 커서의 재촉이 버겁다. 벌써 밤 11시 20분. 제출은 분명 자정까지다. 자정을 넘기면 분당 1점씩 감점이 된다고, 교수는 말했다. 강의실에서 그 이야기를 들으며 너는 문득 고등학교 같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 교수가 고작 1분 늦는다고 1점씩 감점한다는 말에, 그 말끝에 흔들리며 자세를 고쳐 앉는 주위를 느끼며 너는, 이상하게 화가 났다. 1분에 1점이 감점되는 수업이라면 그냥 드롭해 버릴까, 까짓 거.



딱, 3학점이 필요했다. 4학년 마지막 학기. 전공 필수 학점 중 딱, 3학점이 부족했다. 1학년 때 선배들 따라 술 마시며 놀지 말 걸, 2학년 때 세상 경험한다고 아르바이트하지 말 걸, 3학년 때 괜히 언론고시 준비한다며 까불지나 말걸. 4학년이 되어서야 남들 다 들은 수업을 듣는 너는, 무척이나 괴롭다. 동기 한 명 없는 곳에서 매일 있는 듯 없는 듯 있다 사라지는 일은, 너를 움츠러들게 만든다.



실은 피하고 싶은 수업이었다. 미루고 미루었다. 안 들어도 졸업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나, 4학년 마지막 학기까지 미루자,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 김지윤 학생이죠? 그 <인간의 이해> 수업 들어야 졸업 자격이 되는데, 알고 있어요? 동기 중에 지윤 학생만 안 들었어요. 참, 희한하게.



알죠, 알죠, 이번 학기에 들으려고요, 하며 성급히 전화를 끊고 결국 너는 네가 직접 그 수업을 신청했다. 마침 옆에 있던 현주는 그 모습을 보곤 한참을 웃어댔다.



- 어이구, 김지윤, 드디어 듣네? 야, 축하한다! 너도 드디어 그 과제하는 거구나? 완성하면 이 언니한테 보여줘야 해~ 알았지?



이죽거리는 친구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카페를 나왔다. 그 과제. 알지, 모를 리가 없지, 그 과제 때문에 듣지 않았는데 왜 모르겠니. 너는 입안에 얼음 한가득 털어 넣고 와그작와그작 씹는다. 묘한 패배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20분이 지났다. 이미 마감 시간에 제출하는 것은 글렀다. 더 이상 피할 수 없다. 냉정해져야 한다. 벌써 1시간째 띄워져 있던 문서창엔 유난히 큰 제목이 눈에 띈다.



- 나에게 있어 ‘사람’의 정의...



단 세 개의 마침표가 너의 마음을 보여준다. 무언가 잡히지 않는 것에 관한 두려움이 늘,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에만 편안함을 느꼈다. 야, 그런 식으로 따지면 사람은 늘 네 옆에 있잖아? 니 앞에 나 안 보이냐? 안 보여? 현주는 늘 그런 식으로 말했다. 말끝엔 난 그 과제할 때 너 생각 엄청 많이 했는데, 진짜 서운해, 하며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너는 말없이 커피 잔을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현주는 틀렸다, 고 생각했다. 분명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 있었다. 듣고 있지만 들리지 않는 말들이 있듯이. 너는, 꽤나 논리적으로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 말을 듣고 눈물이 글썽거리다 못해 주르륵 흐를 것 같은 현주를 위해 참았다. 아마 현주는 끝까지 모르겠지만.



- 띠링



[10년 전 오늘 사진입니다.]



부지런한 맥북은 과거의 너를 모아 보여주는 일을 꽤 성실히 수행했다. 매일 밤 자정이면 띠링, 띠링, 하며 10년 전, 20년 전 네 모습을 꾸준히 재생했다. 알람을 안 꺼뒀나? 하며 창을 닫으려는데 문득 클릭해 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 너는 딸깍, 하고 10년 전으로 들어갔다.



10년 전, 무심히 넘기는 사진들 속 유난히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똑 단발, 동그란 안경, 아직은 큰 교복을 입은 너의 표정은 굳어 있다. 그 옆엔 너보다도 더 앳된 여자 아이가 생글거리며 웃고 있다. 현주다. 둘리, 아기공룡 둘리처럼 생긴 현주는 중학교 1학년때 만나 지금까지 이어진 유일한 사람이었다.



내성적인 너는 입학하고 한참을 적응하지 못했다. 쉬는 시간엔 혼자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점심시간엔 엄마가 새벽부터 정성스레 싸 준 도시락을 우물우물 씹어 먹기만 했다. 가끔 몇몇이 다가와 말을 붙이곤 했지만 너는 그저 응, 아니 정도로만 가볍게 말할 뿐이었다. 대개는 떨어져 나가며 이상한 말 한마디를 덧붙이곤 했다.



- 지윤이 쟤, 너무 이상하지 않아?

- 그러니까, 집에 돈 많으면 다 저래도 되냐? 재수 없어.



일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하면 네가 들을 걸 알면서도 아이들은 무심하게 쓰디쓴 말들을 뱉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말을 걸어온 사람이 현주였다. 네가 어둠이었다면 현주는 스스로 빛을 내는 빛과 같은 아이였다. 밝게 빛나 곁에 있는 사람까지도 비추는. 우리 언니 이름도 지윤인데, 하며 다가온 현주를 너는 밀어내지 못했다. 이쯤 하면 사라져 버리겠지, 지저분한 소문 하나가 더 생기겠지, 하며 무시하려고 했지만 무시하지 못했다. 네가 그럴수록 현주는 더 집요하게 너를 챙겼다.



- 야. 과학실 같이 가자. 너 과학부장이라며?

- 지윤아. 미술 준비물 같이 사러 가자. 요 앞 문방구에서 판대.

- 너 혹시 크레이지 아케이드 알아?



너는 게임 따위는 하지 않았고, 과학부장은 억지로 시켜서 과학실 출입문만 관리하는 정도였으며 미술 준비물은 진작에 사서 사물함에 넣어두었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그래, 좋아, 하며 말없이 현주를 따랐다. 현주는 네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지윤아, 나는 네 그 과묵함이 좋아. 네가 쓰는 글은 더 좋아.



단짝. 중학교 3년 동안 너와 현주는 단짝이 되었다. 누군가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비밀을 지켜주고, 추억을 쌓아간다는 것은 꽤나 행복한 일이었다. 빛을 받은 싹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처럼 너는 현주와 지내며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너는 크레이지 아케이드를 마스터했으며 도서관에 가서 함께 공부를 하고, 가끔은 PC방에 따라가기도 했다. 오락실에 가 펌프를 하며 배꼽 잡을 정도로 웃어보기도 했다. 네가 생전 하지 않던 일을 한 그 3년이 네 인생에 가장 빛난 순간이었다.



- 띵동



이 시간에 누구지?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 네 원룸에 찾아올 사람은 아무도 없다. 너는 소리를 죽이며 가만히 있는다.



- 지이이잉



그때 갑자기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현주다.



- 야, 나 집 앞이야. 문 열어!



말도 안 하고 찾아오는 건 변하지 않는 현주만의 버릇이었다.



- 아! 깜짝 놀랐잖아.

- 놀라긴 뭘 놀라. 그러니까 내가 도어록 비번 알려달라 했어? 안 했어?

-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 너 과제 안 하고 또 허튼짓 하고 있을 것 같아서 왔지.



하며 현주는 네 노트북을 뒤적인다. 여전히 제목만 떠 있는 문서 한 번, 어지러이 모여있는 사진첩 한 번 보더니 현주는 너를 한심한 듯 쳐다본다.



- 내가 내가 너 그럴 줄 알았어. 그까짓 과제 빨리 해버리지. 뭘 그렇게 뜸을 들여. 그거 대충 써도 그냥 A는 받는다니까? 어떻게, 내가 좀 써줘?

- 됐거든?

- 너 그 중2병 걸린 것 같은 문체부터 다듬어야 해. 너는. 그 교수는 그런 거 싫어한다고. 딱, 전략적으로 쓰란 말이야. 전략적으로!

- 아. 내가 알아서 해.

- 알아서 하는 애가 새벽 1시까지 이러고 있냐? 엉?



너는 갑자기 말을 멈춘다. 문득 아주 오래전 비슷한 일을 겪었던 적이 있다. 늦은 밤, 혼자 있던 집, 갑자기 울린 벨소리. 그리고 열여덟을 살아가고 있던 현주와 너.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갑자기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 IMF의 여파는 지긋지긋하게 너의 가족을 괴롭혔다. 아버지는 지방으로 일을 하러 떠났고 전업 주부였던 어머니는 공장을 다니기 시작했으며 대학을 다니던 오빠는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아직 미성년이었던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매일 같이 우울해져 가고 있었다.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휘청이던 것은 IMF 때문만은 아니었다. 결정적인 한 방은 친구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노리고 다가온 사람이었다. 순진하고 사람 좋은 아버지의 허점을 공략했다. 김사장, 이거 쉽게 해주는 거 아니여, 내가 김사장이니까 특별히 알려주는 거라고. 이제 지윤이 곧 고3이지? 이거 한 방이면 대학 학비 4년 치는 끝나는 거라니까?



사람을 잘 믿던 아버지였다. 지나가던 아이에게도 용돈 5만 원씩 주는 사람. 좌판에서 콩나물 팔던 할머니를 보면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난다며 남은 콩나물 전부를 사 오는 사람. 당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남에게는 피해를 안 주는 사람.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



사람을 믿어서 무너진 아버지를 보며 너는 다짐했다. 사람은 믿어서는 안 되고, 사람은 삶에 필요 없는 존재이며, 사람은 너를 언제고 돌아설 수 있는 존재라고. 아버지를 닮은 순해빠진 마음이 흔들릴 때면 너는 너를 다그쳤다. 사고 싶은 문제집을 살 돈이 없어 친구들이 버린 문제집을 몰래 주워 풀 때마다, 오랜만에 시내에 나가도 버스비 남기고 나면 밥 먹을 돈이 없어 나는 배 안 고파, 너희들 먹어, 할 때마다. 너는 마음을 다잡고 다 잡았다.



삶은 더욱 궁핍해졌다. 오랜만에 집에 올라온 아버지는 예전처럼 대우받고 싶어 했고, 매일 12시간씩 서서 부품을 조립하는 어머니는 예전처럼 살림하길 거부했으며, 차비가 없어 매일 아르바이트하던 커피숍 쪽방에서 잠을 자는 오빠는 예전의 기억을 잊은 지 오래였다. 날 선 대화가 이어지면 싸움으로, 싸움의 끝엔 눈물과 회한으로, 술 한 잔 마신 날엔 무언가를 꼭 던져야만 멈춰지는 일상이 반복되자 너는, 모든 것을 멈추고 싶어졌다. 아니, 이 불안의 끝에서 우울을 파고드는 나를 멈추고 싶었다.



마침 아무도 없는 날이 생겼다. 며칠 전 너는 독서실에서 미리 가족들에게 편지를 썼다. 특별히 원망했던 아버지에게도, 유난히 안쓰러웠던 어머니에게도, 그저 미안했던 오빠에게도 짧게 한 줄씩 마음을 담았다.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미안해. 그런데 나 너무 힘들어. 정말 미안해.



창문을 열었다. 11월. 가을과 겨울의 언저리에서 부는 바람은 스산했다. 초겨울의 하늘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했다. 밤 10시. 거리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을 멈출 준비가 끝났다. 그런데 그때,



띵동-



벨이 울렸다.



너는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때,



지이이잉-



진동음이 들렸다.



- 야, 나 지금 집 앞이야. 빨리 문 열어. 떡볶이 식는다고!



현주였다.



- 으으으으 추워, 뭔 놈의 초겨울이 이렇게 춥냐? 넌 또 왜 이렇게 문을 늦게 열어. 뭐 하고 있었어? 아니 보일러 좀 켜라. 지지리 궁상이냐? 어머님은?



다다다다, 따발총을 쏘듯 이야기를 쏟아내는 너는 현주의 손을 바라본다. 검은 비닐봉지가 묵직하다. 아마 너를 찾아오기 전에 들를 수밖에 없는 시장 끝에 있는 떡볶이 집에서 샀을 것이다. 마감 직전에 달려가서, 이모, 저 떡볶이 2,000원 치만 주시면 안 돼요? 서비스로 김말이? 하며 갖은 애교를 부렸겠지. 그러면 현주를 특히 예뻐하는 이모는 모르는 척 계란까지 덤으로 주었을 테고.



너는 갑자기 웃음이 나온다.



- 하, 하, 하.. 하하하하하.



현주는 너를 보며 어안이 벙벙하다.



- 드디어 뭐, 맛이 간 거야? 왜 저래? 뭔 소리야?



너는 자꾸만 흘러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다. 네가 미친 듯이 웃자, 현주는 기분 나쁘다며 그만 웃으라고 화를 내다가, 왜 그러냐고 진짜 미친 거냐고 걱정하다가 포기한다. 그래, 모르겠다, 우는 것보다야 웃는 게 낫지, 하며 같이 웃는다. 네가 웃으면 현주도 웃는다. 네가 멈추면 현주는 슬쩍 늦은 타이밍에 멈춘다. 다시 네가 웃으면, 현주도 따라 웃는다. 미치고 팔짝 뛰는데 웃음은 멈추지 않는다.



너는 밤새도록 떡볶이를 먹고 운다. 울다가 다시 떡볶이를 먹는다.



열여덟의 밤이었다.






챙-


캔맥주를 부딪히는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벌써 몇 캔 째인지. 현주는 도통 집에 갈 생각이 없다. 마치 그날처럼.



마지막이 될 줄만 알았던 그날은 너의 새로운 시작이 되었다. 너는 그날 이후로 조금씩 변해갔다. 스무 살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너는 스무 살이 되었고 대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살아있다. 깊은 우물 속에 갇혀있다고 생각했던 너를 가둔 것은 사실, 스스로였다. 고개를 돌리니 곁에는 사람이 있었다. 아니, 현주가 있었다.



- 야. 너 언제 가냐?

- 나? 안 갈 건데? 내가 왜 가냐? 나 차 가지고 왔는데 말이야. 일부러 술 먹었거든~?

- 대리 불러. 내가 대리비 줄게.

- 싫거든? 내가 왜 가냐. 여기 이 집 보증금 1%는 내가 낸 거 알지?



1,000만 원에 1%면 10만 원이다. 이 집에 이사 왔을 때 앞으로 잘 살라며 무리해서 사준 선물 값을 말하는 것이리라. 너는 논리적으로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지만 멈추기로 한다. 1%가 아니라 100% 이상의 지분이 현주에게 있음을, 너는 안다. 알기 때문에 너는 말을 할 수 없다.



- 나 과제해야 한다니까? 와. 미친, 벌써 새벽 3시? 아. 진짜 노현주! 너 나가라고요. 나 진짜 이 수업 학점 따야 한다니까?

- 그러니까 미리미리 하라고 언니가 그랬어, 안 그랬어? 너 진짜 ‘사람’ 이 뭔지 몰라? 모르겠냐? 그렇게 주변에 사람이 없어? 좀 생각을 해 보라고. 그러고도 네가 국문학과라고 할 수가 있어? 어? 문학을 노온 할 수가아 있느냐고.



취하면 말이 많아지고 느려지고 울먹이는 현주를 보며 너는 한숨을 쉰다. 모를 리가. 다만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것일 뿐인데. 없을 리가. 내 앞에 있는 너인데.



- 아 됐고. 너 그냥 조용히 가만히 떡볶이나 먹고 있어. 엉?

- 네~ 과제 열심히 하시고요. 저는 조용히 가만히 술 마시고 있을게요.



구시렁거리는 소리를 뒤로하고 넌 책상 앞에 앉는다. 마우스를 움직여 잠금을 해제한다. 키보드에 손을 올리기 전, 너는 열 손가락을 피아노 치듯 움직인다. 네 손은 마치 연주를 시작하기 전 피아니스트의 그것 같다. 흠, 하고 가벼운 숨을 토한다.



깜빡, 깜빡 -



멈춰있던 커서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에게 있어 사람이란……]




수년 동안 막힌 마음이 뚫린다. 글에도 길이 있어 한 번 뚫리기 시작하니 막힘이 없다. 너는 쓰고 또 쓴다. 흘러나오는 대로. 멈추지 않고. 키보드 위의 네 손은 춤을 춘다. 화면 속엔 너의 사람이, 담긴다.



밤이 깊어간다. 창밖은 조용하다. 초겨울의 바람은 어쩐지 서늘하다. 너는 창문을 반쯤 열어 밖을 본다.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러나, 네 곁엔 현주가 있다.






[에필로그]


열여덟의 너는 독서실에 말없이 앉아 울고 있다. 이따금씩 떨어지는 눈물이 새하얀 종이에 빼곡히 적힌 검은 글씨를 번지게 하고 있다.



- 거 참, 울 거면 나가서 울든지. 뭐 하는 거야? 짜증 나게.



너는 옆 자리 사람의 날 선 말에 그만 화장실로 달려간다. 책상 위에 놓인 종이를 뒤집어 놓는 것을 깜빡하고선.



마침 너를 찾아온 현주는 네가 자리에 없는 것을 확인하곤 돌아 나가려다, 이상하리만치 글씨가 번져있는 종이를 들춰 본다.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기는 현주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네 자리에 놓인 달력을 바라본다.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는 날짜가 종이에도 적혀있다. 현주는 중얼거리듯 무언가를 외우는 듯하더니, 가만히 자리로 돌아간다.



한참 후에 돌아온 너는 다시 자리에 앉는다. 퉁퉁 부은 눈을 지그시 누르며 마저 글을 쓴다.



[내 소중한 첫 친구, 내 삶의 마지막까지 기억할 나의 친구. 현주에게.]







열여덟의 너는 아직 모른다. 네 삶을 잡아줄 사람이 현주라는 것을.

지금의 너는 안다. 네게 있어 사람이란, 너를 이끌어 주고 잡아주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7화미완성 작품(진행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