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의 이야기
오후 5시 40분경 문을 열고 집을 나선다. 학원으로 향하는 길은 매일 똑같은 풍경이다. 흑색 아스팔트 위를 걷다가 바로 앞 두 갈래 길에서 오른쪽 내리막길로 향하면 적색 벽돌 빌라들과 주택들이 나란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길 끝에 다다라서 왼쪽으로 오르다 보면 오른쪽에 초등학교를 둘러싼 담장이 펼쳐져 있고 앞에는 대로와 그 옆 자전거 도로 딸린 인도가 나란히 있다. 오른쪽으로 틀어 왼쪽에는 자전거 도로, 오른쪽에는 담장을 끼고 걷다 보면 초등학교에 있는 키 큰 나무들이 담장을 넘어 마주해주고는 한다.
그렇게 꽤 긴 거리를 걷다 보면 여기서부터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양산을 쓰고 나무 밑을 걷는 노부부, 역전에서 파는 빵을 먹으며 올라오는 아저씨 같은 사람들 말이다. 나는 때때로 이런 사람들을 보며 부러움을 느끼고는 한다.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부럽고, 기차역에서 내려 빵 하나 사 걸어올 수 있는 여유가 부럽다.
좀 더 걸어 내려가다 보면 바로 나오는 골목길로 들어간다. 그러면 미궁같이 펼쳐진 높은 아파트들이 있다. 그 골목에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가끔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골목에서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돌고 한 번 더 오른쪽으로 돌면 드디어 학원이 나온다.
학원까지 오는 길에 혼자 생각을 많이 한다. 오늘 시험 보는 영어 단어 따위를 외우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뭐 사람이라는 게 본인 생각을 하지 남 생각은 안 하는 게 맞긴 하지만 말이다. 그냥 억만장자가 되는 상상, 로또 1등 되는 상상, 온종일 빈둥댄 자기반성 등등을 한다. 이런 생각들의 공통점은 바로 부러움이다.
부러움은 자신에게 없는 걸 바라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넘어 빼앗고 싶은 마음마저 말이다. 부러움이라는 감정을 느낄 때면 항상 나의 결점만을 보게 됐다. 남을 볼 때 내 부족한 점을 덧대어 보니 괜한 자격지심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리고 남의 시선도 의식하게 됐다. 그리고 나는 그런 부분을 좀 더 많이 느끼는 것 같다. 부모님과 떨어져 할머니 손에 자랐고 우리 집안 사정이 그렇게 막 넉넉하지도 않기 때문에 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런 콤플렉스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부러움이 만든 내 꿈은 변호사였다. 그냥 돈 많이 버는 직업을 말해보라고 하면 바로 떠올리는 직업이다. 굳이 따지자면 나쁜 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직업 자체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자신의 결점을 보고 생기는 꿈이라는 점에서 나쁘다는 것이다. 색안경은 쉽게 벗어지지 않으니까 말이다. 결점을 생각하다 보면 결점만 보일 뿐이다.
부러움과 꿈에 관한 생각은 처음엔 독립적인 것들이었다. 부러운 건 부러운 거고 꿈은 꿈이었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정한 변호사라는 꿈을 깊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 둘은 이어졌다. 그저 경제적인 압박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그 감정을 배제하고 보니 내가 정말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변호사에 대해 아는 것은 하나 없었다. 그냥 로스쿨이네 뭐네 하는 진부한 것들뿐이었다. 심지어 더 알아볼수록 나와는 결이 다른 것 같았다. 나는 토론의 관점에서 다가갔다면 실제 변호사는 법에 관해서 공방을 펼친다는 점이 내 생각과는 약간 달랐다. 그렇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내가 내 꿈이라고 정하고 말하고 다닌 것을 부정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당장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도 몰랐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떠올리다 보니 컴퓨터 데스크톱 배경에 흘러나오고 있는 유튜브 영상이 보였다. 역사였다. 그때 문득 나는 역사에 관해서 참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뭔가를 좋아하는데 이유를 찾아야 할까 싶다.
역사는 중2 때 본격적으로 접했는데 사실 초등학교 때 학원에서 많이 접했었다. 뭔가 한 편의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었다. 중국 당대에 개발된 종이가 당과 이슬람의 전쟁을 통해 서방 세계로 넘어갔고 이것이 인쇄 기술에 큰 영향을 주어서 종교 혁명에 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온몸에 전율이 돋았다. 비로소 나는 역사를 하고 싶은 것이라는 걸 확신했다. 좋은 꿈을 찾았다. 결점을 메꾸는 꿈이 아니라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꿈을 꾸게 되었다.
원래는 내 내면의 아픔을 찌르는 부러움이라는 감정을 느낄 때면 애써 외면했다.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부러움 따위는 느낄 필요가 없다며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 부러움이 어디서부터 나왔는지 안다. 적어도 근원은 알았다. 그렇다고 부러움이라는 감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냥 나의 길을 걸어가면 될 뿐이다. 학원으로 향하는 길처럼 그저 매일 묵묵하게 나아가다 보면 언젠간 도착할 거다. 그리고 그곳에서 꿈을 찾아 헤매고 있는 히치 하이커가 나타난다면 말해줄 것이다.
'부러움도 꽤 나쁘지 않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