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학교 밖을 나가면 절대 ‘선생님’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는다.
10년 전엔가 서점에서 우연히 한 할아버지께 ‘선생님’이라는 것을 들키고 엄청나게 ‘피곤한’ 일(선생님이라면 이 책은 읽어봤느냐, 이 사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냐 등등 거의 30분 넘게 설교를 들었다…)을 겪고 나선 더더욱. 절대. 오죽하면 가르치는 애들에게도 꼭 말하곤 한다.
“너네. 밖에 나가서 나한테 쌤의 ㅆ자도 꺼내지 마. 그냥 모르는 척 해. 인사도 하지 마. 제발.”
아이들은 대부분 웃지만 진심 200%다. 교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매해 달라지는데다 나는 학교 밖을 나가면 그냥 ‘자연인’이고 싶은데 ‘교사’라는 틀에 얽매이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학교 밖에서는 좀 더 편하게 말하고 행동하고, 먹고 마시고 놀고 싶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선생으로서의 나를 오픈한 곳이 있다.
바로, 학교 앞 CU다.
처음부터 나를 밝히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으레 그렇듯 나는 조용히 편의점에 들어가서 아이들 줄 간식을 사 가지고 오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컵라면을 먹던 고객님은 나의 제자들이었고, 인사성이 바른 녀석들은 내게 “쌤. 안녕하세요.” 라며 움직이던 젓가락을 멈추곤 인사를 했으며, 마침 내가 구입한 과자를 찍어주던 사장님이 “어머, 선생님이세요!”하고 알은체를 한 데다, 동방예의지국의 유교걸인 나는 “네. 요 앞 학교요.”라고 말을 내뱉어 버리고 만 것이었다.
오 마이갓. 학교 근방에서 나의 정체를 이렇게 쉽게 들키다니. 그토록 필사적으로 나를 꽁꽁 숨겨왔는데! 이럴 수가!
허무했다. 학교 밖에선 자연인으로 살겠다는 나의 다짐이 이토록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에. 속상했다. 적어도 3년 동안은 잘 숨겨온 나의 정체가 이렇게 금방 들통날 수 있다는 것에.
딸랑-
편의점을 나서며 속으로 수천번을 생각했다. 앞으로 이 편의점은 다신 오지 말아 야지, 여기는 절대 오지 말아야지, 아무리 물건이 없어도 후문 쪽의 세븐일레븐을 가야지, 하고.
플래그를 세운 것이었을까. 이상하게 올해 들어 CU를 가야 할 일이 많이 생겼다. 세븐일레븐의 물건이 너무 없는 것이 원인이었다. 매대는 텅텅 비어있고 셀프계산이라는 이유로 가게 주인이 없는 경우가 태반.
그러다 보니 수업 때 아이들에게 줄 간식, 동아리 활동에 필요한 과자, 그리고 학교 예산을 손쉽게 쓰기 위해서 자주 CU를 들르게 된 것이다. 나를 알아보면 어떡하나, 또 원하지 않는 질문 세례를 받아 곤란해지면 어떡하나, 하는 갖가지 잡스런 고민을 하고 문을 열면, 예상과 다른 일이 벌어지곤 했다.
분명 내가 요 앞 학교의 선생님인 걸 알고 있을 사장님은 한 번도 내게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보통 선생님이라고 하면 가장 많이 물어보는 게
“요새 애들 힘들죠? 에고. 요새 애들이 뭐 예전 같나?”
그런데 그 사장님은 그런 질문은커녕, 내가 물건을 고르는 동안 일절 내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카운터에 서서 다른 손님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뿐. 어떤 개입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가끔 내가 “사장님. 비쵸비 어딨어요?”하고 물으면 그제야 녹색 카운터 밖으로 나와 물건을 찾아 주기만 하는 것이었다.
편안하면서도 약간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그렇게 편의점 사장님은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갔다. 나 역시 일이 너무 바쁘고 힘들어 삶의 여유를 잊고 살던 어느 날의 일이다.
지난 6월, 논증 방식을 재밌게 가르치고자 빵을 잔뜩 사갈 일이 있었다. 이른바 ‘쌤을 설득하면 빵을 준다!’는 학습 주제로 1차시를 재밌게 보내는 수업 재료로 빵이 5개 정도는 필요했던 것이다. 오랜만에 찾아간 편의점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조용히 빵을 골라 담고 카운터로 갔다. 사장님은 매우 친절하게 웃으시며 딱, 한 마디 하 셨다.
“아휴, 선생님 돈으로 이렇게 많이 사서 어떡해요.”
‘선생님’이라는 단어에 한 번, ‘어떡해요.’에 한 번. 아! 이 분 나를 알고 있구나. 그런데 그동안….? 하는 생각이 닿자, 마음이 사르르, 풀어졌다. 당황하면 굳어버리는 나는,
엉겁결에 그만 어정쩡하게 웃으며
“괜찮아요. 애들 주는 거 좋아서 하는 거예요.” 하며 급히 편의점을 나왔다. (급하게 나와 카드 두고 갈 뻔. ㅎㅎ) 그날 대화의 끝은 묘한 편안함으로 가득 찼다. 봉투 가득 빵을 담아 나오면서 나는, 문득 사장님이 무척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상대방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음을 세 련된게 표현하면서도 부담되지 않게 질문을 건네는 마법 같은 화법을, 그녀가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한 경험이었다. 나이 든 분의, 무자비한 질문 폭격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기, 우리 3학년 애들 중에서 유머, 재치, 센스, 지적 호기 심, 글솜씨, 그리고 친화력까지 모두 갖추며 나와 같이 감성 충만한 INFJ 찾기 같이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그 자체로 너무 희귀해서 외계인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얼마만인가. 나이로 무언가를 억지로 말하게 하지 않고. 지나치게 묻지 않고. 그냥 가만히 기다려주는 만남. 대화.
그 후부터 편의점을 가게 되면 유심하게 관찰을 하기 시작했다. (나의 또 관찰과 기록병 ㅎㅎ) 일단 그곳은 무척이나 깨끗하다. 비가 오면 바로 상자를 꺼내어 빗물이 매장 바닥에 최대한 덜 닿도록 한다. 그리고 라면을 먹는 섭취 코너에는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가게 안은 항상 환하며 물건이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자상하 고 따뜻한 사장님은, 2+1 상품 중 하나만 계산하려는 내게 이 상품이 2개 사면 1개를 더 준다고 꼭 말을 해준다. (이건 어쩌면 상술일지도.)
게다가 사장님은 누가 오든지 가게 문이 ‘딸랑’하고 울리면 반갑게 인사를 해준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하고. 그러면 나는 그 인사를 받아 안녕하세요, 한다. 계산을 하고 나갈 때에도 마찬가지. 안녕히 가세요, 와 안녕히 계세요, 를 주고받으며 가게 문을, 딸랑, 하고 닫는다. 앱으로 주문하여 바로 픽업하는 요새는 느끼기 힘든, 아주 오래전 학교 앞 슈퍼에 가는 기분을 나는 그곳에서 종종 느낀다.
또, 가끔 우리 학교 애들이 그곳에서 라면이나 핫바 따위를 사 먹을 때, 학생들이라 소란스럽고 어수선해져도 크게 나무라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후문 쪽 세븐일레븐보다 정문 쪽 CU를 더 많이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솔직히 나는, 학교 근처에 거주하지도 않고 편의점을 그렇게 자주 가는 편도 아니 어서 CU사장님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나같이 결벽증적으로 자신을 숨기는 사람이, 어쩐지 그곳에서는 마음 편하게 나를 드러 놓게 된다는 점에서, 적당한 친절로 상대방을 무장해제 시킨다는 점에서, 깔끔하고 잘 정리된 편의점의 프로페셔널한 사장 님과 90년대 슈퍼마켓 아줌마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한 것 같다는 점에서,
그 편의점 사장님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앞으로 그곳을 갈 수 있는 시간이 딱, 1년 하고도 절반이 남았다. 이 학교를 떠나면 아마 올 확률은 0%. 그전까진 자주 그곳을 들러 보고 싶다. 내 성격에 사장님과 수다를 떨 것 같지는 않고, 탐구 정도는 할 수 있을 듯하다.
과연 내가 생각한 것이, 내가 느낀 것이 맞는지. 도대체 그 사장님에게 무슨 특별한 것이 있길래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는지. 아니면 사실 그분에게도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모습이 있는지. 알아갈 수 있도록.
수많은 사람이 일상 속에 내 곁을 스쳐 지나간다. 대다수는 얼굴도,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하나의 조각이 되어 사라진다. 수많은 사람 중 단 하나가 되어 마음에 남는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다. 그것도 자주 보지 않는 관계라면 더더욱.
편의점 사장님이 그토록 어려운 것을 해내었다.
나는, 여전히 그녀가 궁금하다.
추신: 원래 좋아하는 편의점을 꼽으라면 GS다. 그곳에서만 파는 오모가리 김치찌개 라면을 좋아한다. (최애라면 ㅋㅋ) 그런데 이러저러한 CU 편의점에 대한 나의 애정을 녀석은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해진다.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