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7시 55분만 되면 동네의 종합 버스 정류장엔 출근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쏟아져 내린다. 용산 급행을 타기 위해 뛰는 사람, 아침을 먹지 못해 편의점에서 간단한 무언가를 사는 사람, 커피 한 잔 사가기 위해 커피숍에 들르는 사람, 그리고 나처럼 오래간만에 일찍 나와 천천히 걷는 사람들까지.
대부분 뛰는 편이지만 가끔 일찍 나올 때면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게 된다. 저분은 임산부 배지를 달았구나, 힘들겠다, 저 사람은 왜 뛰어가는 것일까 하며 생각하는 버릇은 스무 살 때부터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하고 있다.
가만히 보면 아침 출근길 풍경 속 사람들의 모습은 대부분 가라앉아있다. 해맑게 웃거나 마음의 여유가 있어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잠시만요.”, “지나갈게요.”하며 1분 1초도 아까운 사람들의 얼굴은 마치 천둥과 번개를 가득 품고 있는 먹구름 같다. 안타까운 것은 내가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
그런 사람들 무리에 자연스럽게 들어가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산 지 벌써 20년이 넘는다.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진학 후엔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휴학을 했고, 임용고시 합격 후 1년 동안 발령을 기다렸다. 꼬박 2년씩 남들보다 뒤처졌다. 조바심은 불안함을 불러왔고, 그 끝에 매일을 무언가 해야만 마음이 편한 상태까지 이르렀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밤 12시까지 일로 가득 찬 삶을 살아야만 산 것 같았다. 남들이 쉬라고 시간을 주어도 쉬는 방법을 몰랐다. 선생이 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천만의 말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싫어 체크리스트는 늘 120%까지 꽉꽉 채워 두었다. 일이 빨리 끝나면 더 많은 일을 했다. 방학이 되어 쉼표의 시간이 찾아오면 더 많은 일을 벌였다. 글쓰기, 연수, 특강. 그곳에 ‘쉼표’는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워라밸의 대표인 교사가 뭐 그렇게 맨날 야근을 하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네 월급만큼만 일하라는 말도, 그렇게 해서 너 골로 간다는 이야기도, 늘 족쇄처럼 따라왔다. 대부분 한 귀로 듣고 흘린 편이다. 무엇보다 성격 영향이 큰 탓이다. 그러니까 소위 말해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기도 하므로, 고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자리는 늘 포스트잇과 처리 못한 공문과 인쇄하다 만 수업 자료로 가득하다. 어느 하나 버릴 수 없고, 어느 하나 허투루 할 수 없는 나의 비뚤어진 완벽주의는 나를, 강박의 세계로 이끌었고, 그 강박이 켜켜이 쌓인 14년 간의 시간은 나를 워커홀릭으로 만들어 주었다.
하루에 4시간씩 자면서, 육아와 일을 병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꼭 한 번은 크게 아프다. 올해는 7월이 그랬다. 으레 한 달에 한두 번 오는 두통이 그때는 심하게 왔고 급기야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고 오기까지 했다. 수액 맞을 시간도 30분 밖에 없어 급히 맞고 나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왜, 이러고 살지? 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당장 다음 주에 대토론회가 있고, 그다음 주에는 교육실습 보고서 제출이 있었다. 뭐 하나 마무리되지가 않았는데 진심으로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퇴근하고 밥 먹고 나면 쓰러져 자버렸고, 학교에 가서도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번 아웃- 무언가에 너무 많이 쏟아내어 버린 사람이 어느 순간 느끼는 공허함. 그런 것들이 올해 자주 찾아왔다.
공문 처리하는 기계가 아닐까.
수업은 대충 해도 그냥저냥 살아지지 않을까.
글쓰기 한다고 작가 되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난 뭘 바라고 이러고 있나.
다른 사람들은 편하게 지낼 텐데, 주말에도 일 생각 안 할 텐데. 뭐 한다고. 그러니까 진짜 만다꼬???
마음속 질문은 해결되지 않았는데 삶은 살아야 했다. 출근을 하고 나선 억지로 일을 했다. 수업을 했고 공문을 처리했고 글을 썼다. (물론 글쓰기는 나에게 힐링을 주었지만 그 지분이 너무 적었다.) 나는 숨 쉬듯 우울했고 불안했고, 꾸준히 가라앉고 있었다. 가끔 학교에서 일을 할 때면 컴퓨터 꺼버리고 지하철역으로 달려간 뒤에 이름 모를 역까지 하염없이 떠나고 싶기도 했다. 그만큼, 심하게 번아웃이 왔던 것 같다.
소설 속 주인공은 이쯤 되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고 번 아웃을 극복하여 워라밸을 지키는 멋진 삶을 살게 되었어요.”
라는 대사를 했겠지만 애석하게도 나의 삶은 주인공의 그것과 거리가 멀었다. 난 7월과 달라진 게 거의 없다. 여전히 7시 55분에 지하철을 타러 가는 수많은 먹구름의 한 조각이고 내 타임 테이블은 오늘 해야 할 일들로 가득하며, 수업 준비를 위해 새벽 2시에 자는 날도 많다. (오늘도 화요일 첫 수업을 위해 대충 아이디어는 잡아 놓고 자야 한다. 그럼 2시 되겠지?)
해결되지 못한 감정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순간들이 요새는 자주 찾아온다. 감정에 휩싸여 모든 것을 멈추기엔 지금 내가 쥐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놓아버리는 순간 피해는 개인적 차원에서 사회, 학교 차원까지 흘러가버린다. 그런 것을 원하지는 않으므로 나는 사실, 지금 감정을 ‘덮어두고’, 진짜 얼굴을 ‘숨겨두고’ 살고 있다.
아이들 앞에서나, 동료들 앞에서는 그렇지 않은 척 웃고 있지만 사실 난 매일 조금 답답하고, 가끔 울적해지며, 자주 도망가고 싶다. 그럼에도 그럴 수 없으니, 그게 참 힘들다. 그러던 중 지난 금요일에 J와 이야기를 하는데 순간 너무 놀랐다. 누구에게도 일을 맡기지 못하고, 어느 순간 일을 벌이고 있는, 완벽주의적인 J의 모습은 나의 그것과 무척 닮아있었던 것이다.
“너 그러다가 몸 상해.”
“그래도 다른 친구들도 맡아서 해 봐야지.”
“아프지 마라.”
하며 J에게 건넨 말은 사실 내게 건네고 싶은 말이었다. 아니, 내가 듣고 싶은 말이었다.
“쌤. 너무 일처리를 잘하시네요.” 말고
“쌤. 쉬세요. 그냥 좀 내려놓으셔도 돼요.”라는.
“쌤. 마감 기한이 내일인데 다 처리하셨어요?” 말고
“조금 늦어지면 어때요? 사람 하는 일인데.”라는.
그런 여유로운 말을 사실은 내가 듣고 싶었던 것 같다. 하. 그런데 그게 잘 안된다. 나에게 좀 쉬라고 조언을 해줘도,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고 말해주어도 그게 실천이 잘 안된다. 그러니까 J에게 내려놓으라면서 정작 나는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하고 밤 11시부터 글쓰기를 시작하는 이, 아이러니.
나는 안다.
나의 문제점도.
나의 원인도.
그리고 나의 미래도.
나는, 번-아웃을 느끼면 쉬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절대 실행하지 않을 사람.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맡겨도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내가 해야 마음이 편한 사람. 나는, 수업 시간에 만나는 애들에게는 어쨌든 최선을 다해 수업 준비를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 그래서 나는, 사실 아무리 번-아웃이 세게 와도 절대로 일을 놓치는 못할, 그런 사람.
그러니 나를 다그치기보다는 달래주기로 한다.
어쨌거나 몸 갈아 넣어서 고생하는 건 나 자신이니, 적어도 나만큼은 나를 아껴주기로. 응원도 해주고. 좋아하는 것도 좀 선물로 주고.
요새, 나를 유일하게 위로해 주는 게 두 개 있다. 바로 책과 글. 그 두 개가 지금은 내게 후시딘이고 밴드다. 근원적인 치료는 못해주지만 당장의 아픔은 달래주기 족하다. 어쩌겠나. 생겨먹은 게 이런데. 욕심 많은 완벽주의자가 세상에 태어났으면 이렇게 사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힘들 때는 적당히 흘려보내고, 눈도 감고, 주변을 살짝 보는 시늉도 하면서 그렇게 보내다 보면 다시 또 동력을 얻고 돌아가는 삶이었지 않은가.
상처 위에 또 상처가 생기면 어느새 굳은살이 배기는 것처럼 내 마음의 근육도 언젠간 이 정도 힘듦에는 무뎌지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어떤 일은 맞서는 것보다
적당히 빗겨 서는 게 더 도움 되기도 하니까.
고치지 못할 완벽주의라면
없애지 못할 강박이라면
차라리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고 다듬는 게, 낫기도 하니까.
나는 지금 약간은 빗겨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