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의 이야기 : J가 바라보는 나의 이야기
1학년, 두꺼운 마이 속을 헤치고 들어오는 겨울바람이 날카롭기도 하고 마냥 즐겁기도 한 그런 때, 문을 열고 들어온 국어 선생님의 첫인상은 좋았다. 그냥 국어 시간에는 선생님 때문에 할 걱정은 없겠구나 싶었다. 교실 이곳저곳을 누리며 코난 더빙을 하는 그녀를 보자니 그렇게 열정일 수 없었다.
그녀의 모습은 도로변의 참새 같았다. 누군가 선생님을 보고 병아리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지어줬다는 것을 알았는데 나는 그것을 듣고는 병아리보다는 참새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총총걸음으로 검은 아스팔트 위를 거닐며 ’짹짹‘ 우는 것이 딱 그녀의 모습이었다. 또 이야깃거리가 나오면 참지 못하는 것이 마치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참새 같았던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떠들기만 했다고 하면 그것은 아니다. 그것은 ’ 떠든다.’라는 표현보다는 ‘열정’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그녀는 매 수업, 매 활동, 매 학기가 끝날 때면 여지없이 설문 조사를 하기도 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 모두가 만족하는 수업을 꿈꾸는 듯했다. 그리고 그녀는 수업 하나를 허투루 나가는 법이 없었다. 솔직히 교과서 보고 학습지 나눠주고 빈칸 채우는 따분한 수업을 할 수도 있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교과서 한 장을 넘겨도, 학습지 한 장을 풀어도 항상 최선을 다하고 아이들이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녀는 한 눈으로 봐도 교사의 이상향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우리 학교는 공부하지 않는 학교라고 많이 들어왔고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도 있었다. 내 생각은 언제나 똑같았다. ‘공부하려면 학생들이 참여해야 하고 학생들이 참여하려면 수업이 재미있어야 한다.’ 앞선 물음에 대한 내 확고한 대답이다. 그리고 이 대답에 가장 부합하는 선생님은 국어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항상 ‘학생들이 어떻게 해야 재미있어할까?’ 하며 고민하신다. 그 결과 매일 새로운 수업 방식을 들고 오신다. 옆 반 아이들의 소식을 들으며 어떤 수업을 하실지 기대하는 날들도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여러 방면에서 배우신다. 예를 들자면, 1학년 국어 시간에 나는 당시 한창 급부상하던 ’Chat GPT’를 사용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다가와 AI를 사용한다며 핀잔 아닌 핀잔을 주었다. 그런데 3학년이 되자 선생님은 Chat GPT와 영혼의 단짝이 되어있었다. 이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다시 한번 선생님에 대해 깊게 생각했다. 솔직히 나는 학교생활 중에 자신의 방법만을 고수하시는 선생님들도 봐왔다. 그들의 신념을 욕보이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교사는 배움의 최전선에서 근무하는 직업이다. 시대에 뒤처지다 보면, 배우지 않다 보면 결국에는 가르칠 수도 없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교사가 배우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렇다.
3학년 수업 중에 그녀가 갑자기 질문했다.
“AI가 교사를 대체하는 건 아닐까?”
나는 속으로 단연코 아니라고 말했다. 적어도 그녀는 대체되지 않을 거라고도 말했다. AI가 수업 자체로만 따지만 우세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이 아닌가. 사람은 사람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사람인 한 인간 선생님은 필요하다. 또, 사람에게는 열정이 필요하다. 난 지금까지의 AI에게서 열정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면 ‘과연 그럴까’라는 생각도 든다. 불과 재작년에만 해도 Chat GPT는 질문 10개도 버거워 1시간 있다가 대답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음성 AI도 개발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새로 출시된 Deep Seek도 그렇다. 현재는 질문 10개도 버거워한다. 하지만 대답 퀄리티가 Chat GPT와는 다르다. 이렇게 AI가 매섭게 발전하고 있는데 과연 교사가 그들보다 뛰어날까?라는 질문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라고 답하겠다. 그렇게 믿겠다.
저 멀리서 또는 근처에서 선생님을 보다 보면 가끔 즐거워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으려 하다가 손에 종이가 있으면 종이로 얼굴을 가리고 없으면 손으로 입을 가린다.) 보통 내 친구와 얘기를 하는 때나 친한 선생님들과 있을 때, 그리고 내가 필름 카메라를 들고 왔을 때가 내가 발견할 수 있는 그녀의 즐거워하는 때이다.
내 친구가 ‘모아나는 지금 모아나’, ‘지금 친구가 함박 웃는데 저는 함박스테이크 좋아해요’ 같은 아재 개그를 하면 어이없어 새어 나오는 웃음인지 재미있는 웃음인지는 모르겠지만, 웃으신다. 그리고 그 친구는 맞춤법에 약하다. ‘어떻게'를 '어떡게'라고 쓰기도 하고 '끓는점'을 '끊는 점'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것을 그녀에게 보여줄 때마다 그녀는 반은 웃고 반은 탄식한다.
또 친한 선생님을 만나면(서로) 양 손바닥을 상대에게로 향한 채 빙글빙글 돌리며 손을 마주 잡는다. 그러면서(서로)
“OO선생님~~”
하며 서로 안부를 묻고는 한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처음에는 별생각 없었지만, 나중에는 나도 선생님들을 보면 가만히 있기에는 멋쩍어 손을 흔들어보고는 한다.
어느 날 필름 카메라에 꽂혀서 동묘 시장에 가 카메라를 한 대 장만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체육대회 날에 학교에 들고 가서 그녀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누구 것이냐’, ‘어디서 샀냐 ‘ 하며 질문을 했다. 카메라를 어루만지는 그녀의 눈빛에는 추억이 서려 있었다. 연신 ’어머, 어머‘ 하며 감탄하던 그녀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찰칵, 지익’ 한 컷, 한 컷 사진들을 찍을 때마다 소리는 정말이지 느낌 있었다. 그녀의 감정도 비슷했던 것 같다. 나중에는 새로운 카메라 한 대를 더 장만해서 더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사진 모델에는 선생님도 계셨다. 매일 퇴근 시간에 와서 사진을 찍는다고 구박하셨지만, 그렇다고 거절하지는 않으셨다. 최근 국어 선생님과 친한 선생님들에게도 사진을 찍어 드렸다. 비록 그녀들의 나이는 모르지만, 학교를 배경으로 찍으니 사진에는 풋풋한 청춘이 담겼다. 점점 쌓여가는 사진들과 추억들을 보니 뿌듯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더 열심히 찍어볼 예정이다.
그리고 선생님은 글을 엄청나게 좋아하신다. 사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그녀가 글쓰기를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선생님은 글쓰기 블로그를 하나 운영하시는데 나는 그 블로그의 독자이다. 그 블로그는 선생님 스스로도 극비라고 말하시기에 내가 그 블로그를 발견했다는 것을 언제 말할까 고뇌했다. 그 블로그를 찾게 된 계기는 이러했다. 그저 평범했던 어느 날 선생님께서 책을 출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책을 장만하기 위해 구글 검색창에 책 제목을 검색하였다. 그러자 한 블로그가 등장하였다. 처음에는 그냥 의심만 했지만, 그녀의 책 막바지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있다는 문구를 보고 확신하였다. 그렇게 블로그에 들어가서 좀 뒤져보다 보니 확실했다. 그녀의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구경하다 보니 역시 그녀의 글은 술술 읽히는 맛이 있었다. 방학 때부터 시작한 독자 생활은 현재 진행 중이다.
최근에 올라온 그녀의 글 중에 국제 도서전을 방문했다는 글이 있었다. 그곳에서 무제 출판사 대표 배우 박정민을 만났다는 글이 있었는데, 아.. 정말 부러웠다. 침착맨 방송 애청자로서 무제 굿즈까지 구매한 나는 정말 반가웠다. 그래서 내심 동질감이 들어 한 번 써본다.
올해 들어서 선생님과의 교점이 많았고 또한 많은 추억도 생겼다. 글로 다 적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많은 추억이 있는 것 같다. 선생님은 이 글쓰기에 대해서 그냥 묻혀가는 기억일 것이라고 분명히 그럴 것이라고 그저 희미하게나마 있으면 다행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솔직히 나는 현재를 사는 사람이라 과거의 기억을 잘 떠올리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번 경험은 다를 것 같다. 누군가와 긴밀하게 글로 마음을 나눈다는 것. 이 자체가 나에게는 그리 많은 경험이 아니다. 그마저도 대부분은 선생님이시다. 그래서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싶다. 전우끼리 이 글들을 잘 기억해 보자고, 추억으로 남겨보자고, 틈틈이 들여다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