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8년 전 2월, 새롭게 발령받은 학교 앞에서 나는, 한껏 날카로워져 있었다.
마침 가장 친하다고 믿었던 동료에게 받은 상처가 아물지도 않은 채 학교를 옮겨야 했던 상황이었다. 마음속 깊이 맺힌 응어리를 풀지도 못하고, 상대에게 제대로 말 한 번 하지 못하고, 아니 솔직히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만 잔뜩 하고 떠나와야만 했다.
한 번 관계를 맺으면 마음속 깊은 곳까지 보이는 편이었던 나는, 5년 동안 누구보다도 친하게 지냈던 동료와 한 순간에 어긋났다. 이유를 모두 말할 수야 없지만 내 딴에는 사소한 것이 그 사람에게는 큰 것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친한 동료의 날카로운 눈빛, 말 한마디에 크게 동요했다. 나이는 허투루 먹은 것이었다. 아이들 앞에서는 어른스럽게 조언했지만 사실 중이 제 머리를 깎지는 못하는 실정이었다.
- 인간관계란 게 원래 덧없지.
- 직장 생활에서 뭘 바라나.
- 그래, 원래 다 그렇게 배신하고 상처받고 사는 거지.
- 말 한마디도 못하고 나오고 후회하는 건 또 뭐냐.
잔뜩 움츠러든 마음은 새 학교에서 풀릴 줄을 몰랐다. 원체 먼저 다가가는 편이 아닌데 늘 어두운 얼굴을 하고선 누군가 말을 걸면 “네.”, “아니오.”라고만 대답하는데 친해질 기회조차 없었다.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면 자꾸 옛 동료가 생각이 났다. 처음에는 살갑게 다가오더라도 제 이익이 걸리면 분명 나를 떠날 거야, 나를 흉볼 거고, 나를 무시할 거야, 하는 두려움이 자꾸만 망설이게 했다. 엉뚱한 곳에 계속 화풀이를 하며 무려 6개월 넘게 누구와도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은 채 살았다. 속으로 외로움이 차곡차곡 쌓이는 줄도 모르고.
그즈음에 유난히 눈에 들어온 선생님이 있었다. 같은 학년을 담당했던 옆반 선생님이었는데 밝고 유쾌한 모습에 눈이 갔다. 나는 잔뜩 위축되어 있는데 그는 언제나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나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만 가득인데 그는 항상 한 번 도전해 보려고요, 하며 동료들 앞에서 당당히 제 의견을 이야기했다. 평생을 눈치만 보며 살던 내게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왠지 모르게 끌렸다.
먼저 다가가고 싶어도 자꾸만 겁이 났다. 이 사람도 혹시 그 사람처럼 그러면 어떻게 하나, 이곳에서도 또 그런 관계가 생겨버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말 한마디를 제대로 걸지도 못했다. 심지어 나이도 나보다 꽤 어렸다. 나이 많은 사람이 괜히 아는 체를 하는 게 거북할까 싶어 오만가지 핑계를 대며 친해질 기회를 마련하지 않았다.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 맞다. (이 글을 보면 그 선생님은 분명 오 마이갓! 주여! 를 외칠 것이다!)
인생의 전환점은 꽤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다. 나같이 내향적인 인간에게는 외향적인 누군가가 화아악- 이끌어주는 것이 큰 계기가 되어 엄청난 인연을 맞이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2017년 2학기의 일이다. 당시 2학년 2회 고사가 끝나갈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환기에 아이들이 주로 영화를 보거나 보드게임을 하며 시간을 죽이는 것이 관례가 되는 그 시기에, 새로운 것을 해보자며 제안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국어, 그 선생님은 역사. 영화 <아이캔스피크>를 국어와 역사 시간에 보여주면 어떻겠냐고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영화를 본 후에 ‘나눔의 집’ 할머님들께 편지를 보내는 활동을 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의미도 있었을뿐더러 친해지고 싶던 선생님 아니던가! 당연히 마땅히 해야 하는 것!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가까워졌다.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수업에 진심이었고 나는 그와 이야기를 할 때마다 늘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에 근무하며 수업 이야기를 나눈 적은 거의 없었다. 교무실에 앉아 늘 아이들 이야기를 하다가 한숨을 쉬며 끝나곤 했다. 교직은 답이 없어,라는 부정적인 이야기에 공감하면서도 어딘가 기운 빠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와의 대화는 달랐다. 항상 아이디어가 넘쳤고 에너지가 느껴졌다. 나도 한 열정 하는 사람인데 나와는 또 다른 열정이 마구마구 느껴졌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긍정적인 힘이었다. 이런 생각도 하는구나, 저런 방법도 있구나, 하며 깨달은 순간이 많았다. 당장에라도 친해지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그러면 난 또 브레이크 없이 들이대는 편이라서) 이성의 힘으로 누르곤 했다.
한 번은 그의 학급 뒷문에 걸려있던 ‘학급 실록’을 본 적이 있다. 역사 선생님의 학급다운 아이디어였다. 학급 아이들의 1년 살이를 기록하여 액자로 남겼던 것 같은데 무척이나 부러웠지만 나 같은 사람은 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어서 속으로 박수와 응원을 힘껏 보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또 한 번은 그의 수행평가 채점을 본 적이 있다.(왜 봤는지는 도저히 기억이..?) 꼼꼼하게 세운 평가 기준 아래 아이들의 답안을 수차례 검토하며 채점한 흔적이 보였다. 진심을 다하는 모습에 감동을 많이 받았다. 역사를 좋아하는 나로서, 만약 중학교 때 이 선생님이 나의 역사 선생님이셨다면 나는 진즉에 역사 선생님이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
복직 후에 돌아와서도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은 그였다. 그때보다도 더 성장한 모습의 그를 보며 부럽기도 하고 자극도 많이 받았다. 하필이면 복직과 동시에 팬데믹. 그냥 수업도 1년 만인데 온라인 수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불뚝 카톡으로 연락해서 구글 클래스룸 사용법을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면 그때마다 그는 언제나 친절하게 알려주면서 갖가지 링크를 보내주었다.
아이가 어렸고, 온라인 수업의 ‘온’도 모르던 나는 그이가 보내준 자료를 다 보지도 못하고 바로 구글 클래스룸을 개설하여 온라인 수업을 실시간으로 하지는 않았다. 하나 2020년 2학기에 온라인 수업을 할 때, 그이에게 물어봤던 것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모두가 그걸 귀찮게(?) 왜 하냐고 했을 때 누구보다도 먼저 찾아 공부하고 연구하던 사람이 그였다. 그러니 내가 반하지 않을 수 있나.
운 좋게 같은 학년을 가르친 우리는 2020학년도 3학년 아이들의 전환기에 또 한 번 프로젝트 수업을 하기도 했다. 소설 <꺼삐딴리>를 읽고 나서 토론을 하는 수업이었는데 2019년 악화된 한일관계에 관한 토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역시 나는 소설만 읽혔고 실제 토론은 그이가 담당했는데 토론 수업 참관을 갔다가 홀딱 반해버렸다. 아이들 앞에서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치며 이야기를 나누는, 그러면서도 수업의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을 보며 내 수업이 한없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그이는, 수업할 때 가장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었다.
동아리 활동을 재밌게 구성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이 덕분이다. 내가 방탈출 카페를 좋아하여 추리 동아리를 운영한다는 것을 안 그이는 은혜로운 어플 하나를 알려주었더랬다. ‘리얼월드’라는 앱인데 실제 오프라인 기반 방탈출 미션 앱이라며 아이들과 꼭 한 번 해보라며 링크도 보내주었다. 역시, 팬데믹 상황에선 제대로 쓰지 못하다가 2023, 2024년에 지금 이 학교에 와서 아이들과 체험해 본 바 있다. 흥미로운 동아리를 운영할 수 있는 아이디어는, 팔 할인 그이에게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을 차치하고서 그이가 나의 마음을 울린 결정적인 사건은 바로, 전체 선생님들에게 날린 한 통의 메시지로부터 시작했다.
-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00이라는 소설을 읽고 아이들과 00에 대한 토론을 해보려고 합니다. (중략) 관심 있으신 분들은 링크를 타고 들어오세요.
충격이었다. 모든 선생님에게 줌 링크를 보내주며 참관하라며 메시지를 보내다니! 지금이야 그런 선생님들이 왕왕 있다고 하지만 그 당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수업을 공개한다는 것은 굉장히 심리적으로 부담이 가는 일이어서 누군가 나서서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일이다. 그 일을! 온라인에서! 자발적으로! 공개를 한다니! 충격이지 않을 수 없었다.
- 아,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
- 저러면,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겠구나.
- 나도 나중에 아이가 크고, 내 수업이 조금 더 탄탄해지면, 나도 공개해보고 싶다.
하는 생각까지 가게 한 것은 순전히 그이 덕분이다. 그래서 지금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나는 3년째 선생님들에게 수업을 공개하고 있다. 나 같은 사람이 수업을 열고 모두에게 내 것을 보이고 어떤 반응에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내게 바로 그이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근무하며 더 많은 아이디어를 나누고 싶었지만 안타깝게 내가 학교를 옮기게 되었다. 2021년을 끝으로 우리는 더 이상 같은 공간에 있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틈틈이 연락을 주고받으며, 가끔은 2~3년에 한 번씩 만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위안을 나누고 있다.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어디엔가 풀고 싶은데 말할 사람이 없을 때 나는 조용히 그에게 카톡을 보낸다.
- 쌤. 자여?
그러면 한참 후에
- 말씀하소서.
하며 답이 온다. 그러면 나는 봇물 터진 사람처럼 줄줄줄줄 이야기를 풀어낸다.
- 아니 있잖아요. 쌤. 도대체 그게 이해가 가요?
- 오! 주여! (이 표현은 그의 시그니처 리액션이다.)
어떤 평가도 하지 않고 그저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그가, 언니임에도 불구하고 철없는 투덜거림을 여과 없이 보이는 나를 다독이는 그가 나는 참 고맙다.
며칠 전에도 내게 연락해 그 시절 우리 반 반장이었던 녀석이 지금 근처 고등학교에서 교생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는 그가, 지금은 떠나온 그 지역에서 여전히 아이들과 소통하며 일을 벌이면서도 행복해하는 그가, 나는 참 좋다.
2017년, 그이가 내민 손을 잡지 않았다면 어쩌면 얻지 못했을 나의 소중한 인연. 알고 지낸 기간이 길진 않지만 누구보다도 깊이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며 수업에 관해, 때로는 학교의 어두운 이야기에 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이가 내 곁에 있어서 난, 참으로 고맙다.
지금 내 수업이 있을 수 있는 것의 팔 할은 그이 덕분이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샘솟는 아이디어 덕분에 나도 조금씩 변화를 꾀했고, 지금이 되었다.
닫혀 있던 마음을 열고
갇혀 있던 생각을 깨우치고
고여 있던 응어리를 풀어준
그이는, 내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자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사람이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이토록 평온하고 행복한 것처럼 그이도 엄청나게 행복했으면 좋겠다. 예쁜 아이의 엄마로서도, 현명한 아내로서도, 아이들과 소통하는 선생님으로서도.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내 행복의 절반 아니라 그 이상도 기꺼이 나눌 수 있다.
분명, 그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