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의 글쓰기

나의 이야기 : 내가 상상한 J의 이야기

by 안녕

낯선 동네의 커피숍은 익숙한 향이 났다. 산미 가득한 원두를 그라인딩 하는 소리가 새삼 귓가에 울렸다. 에티오피아? 케냐? 아니면 콜롬비아? 이제는 다 무뎌진 감각은 자꾸만 향으로, 소리로 커피의 고향을 맞히게끔 했다. 벌써 20년도 더 되었다. 커피를 좋아했던 젊은 날, 힘든 줄도 모르게 마셔대던 커피 한 잔, 두 잔이 쌓여 만들어낸 행복한 기억들. 잊힌, 아니 어쩌면 묻혀버린 기억들이 커피 향을 타고 자꾸만 말을 걸어왔다.




“기억하세요?”




삶의 전환점을 맞아 찾아온 일본. 도쿄의 어느 작은 커피숍에서 수많은 메일을 기계적으로 정리하던 중이었다. 흔히 오는 광고 메일, 섭외 메일은 적당히 읽고 넘기면 그만이었다. 으레 오는 흔하디 흔한 것들 중 하나일 뿐. 하나, 그중 단 한 통의 메일을 읽는 순간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페이지는 훌쩍 넘는 메시지 속 잊히지 않을 이름 세 글자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발신인은 기자. 그는 자신을 한 잡지사의 기자라고 소개했다. 자신이 인물에 관한 특집 기사를 준비하고 있던 중 그의 최근 저서에 중학교 때 선생님을 언급한 대목이 인상 깊었다고, 도대체 영감을 주었다던 그 선생님은 누굴까? 하는 궁금증에 묻고 물어, 찾고 찾아 이렇게 메일을 보낸 것이라고. 구구절절한 내용의 요지는 딱 하나였다.



- 기억하세요? 만나고 싶습니다, 만나서 그분의 ‘중학교 시절’을 듣고 싶어요.



은퇴를 하고 한국을 떠났다. 작가가 되겠다 결심하고 차근히 준비해 온 덕에 교단을 벗어나도 먹고살만한 여유를 얻었다. 한국의 집은 딸에게, 나와 남편은 시간을 남긴 여행자가 되어 세상을 돌아보기로 했다. 더 늙기 전에. 더 아파지기 전에.



뉴욕은 감각적이었지만 시끄러워 힘들었고 호주는 묘한 인종차별이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중국은 음식이 의외로 어려웠으며 태국과 인도는 더운 날씨를 견딜 수 없었다. 여행의 끝은 일본이었다. 도쿄. 20년 전 어린 딸과 함께 했던 여행이 고단했지만 행복했다. 대도시의 화려함과 골목골목 숨어있는 아기자기함이 좋았다. 매일 맛있는 빵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한몫했다. 커피와 빵이라면. 그렇다면.



학교의 흔적을 지우고 싶어 연락처를 바꾸었다. 업무용 이메일도 작가가 되고서는 아예 유추 불가능한 것으로 새로 만들었다. 필명은 여전히 과거의 그것이었지만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 교사로서의 정체성은 쉬이 잊혔다. 20년 동안 교사가 아닌 작가로 살다 보니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과의 기억도 서서히 빛바래갔다. 아주 오래된 앨범 속, 조금씩 희미해진 필름처럼.



그럼에도 잊히지 않은 것이 있었다. 메일 속 주인공인 J에 관한 이야기라면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제대로 된 인사 나누지 못하고 떠나보낸 아이였다.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말 한마디가 도움이 될까 고민하면서도 벌써 답신을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저는 지금 일본에 있습니다, 한국을 갈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는데, 어떤 방식으로 인터뷰를 하실 생각인가요?




- 딸랑



풍경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여름날 도쿄의 풍경 소리는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이 있었다. 묵직하면서도 단단한 발걸음 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또각, 또각, 하는 소리의 끝은 내 앞이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K매거진의 이윤성기자입니다.”



선생님, 선. 생. 님. 오랜만에 들어보는 낯익은 단어에 고개를 들었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어떤 큰 실패 없이 인생의 고통 없이 기자가 된 자의 맑음이 눈부셨다. 선생님이란 말을 얼마 만에 들어보는 것인지. 밝은 톤의 블라우스와 곧게 다려진 슬랙스가 단박에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하기야, 특집 기사를 위해, 일본까지 건너온 그 마음이라면.




“네. 반가워요. 저는 조금 일찍 와서 먼저 마시고 있었네요. 뭐 드실래요?”



제가 사드렸어야 하는데, 사드리려고 제가 편집장님께도 법인카드를 받아왔는데, 하며 멋쩍게 웃는 모습이 싱그러웠다. 20대의 젊음이란, 아직 때 묻지 않은 마음이란 이런 것일까.



“도쿄까지 오셨는데 제가 사드리고 싶어요. 여기는 말차라테가 맛이 좋아요.”



녹차를 덖는 소리. 진하고 알싸한 차향이 번지는 시간 동안 우리는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20년 전의 이야기.



“그래, J에 관해 궁금한 게 있으시다고요?”

“그럼요. 아시다시피 J작가님이 한국에서 엄청 유명하세요. 베스트셀러도 이미 다섯 권이나 있으시고 전공 분야에서 알아주는 전문가시거든요. 그런데 그분이 최근에 낸 에세이집에서 ‘중학교 때 선생님’에 대해 언급을 하셨더라고요. 그 때문에 인터넷엔 벌써 ‘J작가의 중학교 시절’에 관한 내용들이 퍼지고 있고요. 그런데 그런 거 말고 정말 그때 그 시절을 잘 알고 있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더라고요. 이거 완전 특종이잖아요?” 하여 웃던 그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런데 선생님. 다른 기자랑 먼저 인터뷰하신 건 아니죠?”



그의 걱정이 무색하게 나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열넷에 만나 열여섯에 헤어진 J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는 것도, 그 녀석이 전공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는 것도, 녀석의 책에 내가 언급되었다는 것도. 물론, 내가 아직 선생님으로 불릴 수 있다는 것도. - 물론, 기자 양반에게는 가장 적절하고 무난한 호칭이었겠지만 -



커피잔을 가만히 만지작거렸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물꼬를 터 주었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기자는 노트와 펜,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어 테이블에 놓고 말을 건넸다.



“혹시 녹음 불편하세요? 제가 속기가 안 돼서... 불편하시면 끌게요.”

“괜찮아요. 편하게 하세요.”

“아! 감사해요. 어떤 분들은 녹음하면 아예 인터뷰를 안 하시기도 하거든요. 역시 선생님은 책 속에 묘사된 것과 되게 비슷하시네요.”



도대체 녀석이 나를 어떻게 묘사했을까, 생각이 잠시 뻗어나가려고 하는 찰나, 기자는 운을 떼기 시작했다.



“아주 유명한 분인데 중학교 시절은 도통 기록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선생님께서 기억하시는 J작가님의 생생한 중학교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그냥 편하게 아무거나 이야기해 주시면 돼요.”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은 나를 응시하고 하얗고 보드라워 보이는 손에는 이미 펜이 쥐어져 있었다. 준비됐습니다, 선생님. 말씀하시죠.



“아무거나. (웃음) 아무거나,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아이였어요. J는.”


“정말요? 자세히 좀 이야기해 주세요!”


“그러니까. 2025년도였나? 벌써 20년도 더 지난 그 시절의 이야기예요. J는 제가 가르치던 제자였고 저는 녀석의 국어 선생님이었죠.”


“그때,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하시던데. 맞나요?”



아- 녀석이 책에 그 내용을 썼구나. 그 여름의 글쓰기를. 거기까지 열어 보였다면 나 역시 꺼내어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한 번 풀어진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두서없이 아무거나,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글쓰기. 맞아요. 글쓰기를 했죠. 어느 날 갑자기 교무실 책상 위에 편지가 놓여있더라고요. 시를 쓰고 싶다, 고 적혀있었어요. 저는 당시에도 아이들 몇몇을 모아서 같이 글도 쓰고 책도 만들었거든요. 보통 그런 작업은 여자애들이 훨씬 좋아해요. 섬세하고 뭐랄까 감성적이고. 그래서 제 글쓰기 프로젝트의 대상은 늘 여학생들이었어요. 깔깔깔, 웃으면서 선생님~~~ 하며 다가오는. 그런 저에게 시를 쓰고 싶다고 먼저 말한 남학생은 J가 처음이었어요. 친구와 같이 쓰는 것보다 일대 일로 글을 쓰는 게 더 좋다고 하던 아이였고요.”



받아 적는 기자의 손놀림이 잠시 멈추더니 고개를 들어 웃어 보였다.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들은 사람의 눈빛은 상대의 닫힌 마음을 무장해제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J작가님이 직접이요? 상상이 안 되는데요? 게다가 중3 남학생이. 글을 쓰고 싶더라…….”

“그렇죠. 보통 남학생들은 국어보단 체육을 글쓰기보다는 운동을 더 좋아하니까요. 그래서 사실 저도 반은 믿고 반은 안 믿고. (웃음)”


글쓰기를 제안한 남학생. 휘갈겨 적어둔 글귀는 아마도 소제목이리라. 20년 넘게 교직에서 아이들 글쓰기를 지도한 보람이 있었다. 연필 쥔 손만 보아도 무엇을 쓰는지 짐직할 수 있다. 그에게는 J의 이면이 구미를 당긴 모양이었다.


“부담, 부담되실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1대 1이라뇨. 저라면 못했을 것 같은데요.”


부담. 조금 더 다른 표현이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정확히 말하면 어려웠다. J와 글을 쓰는 것은 부담이 아니라 어려움이었다. 재미로 글을 쓰고 책을 엮던 시절이었다. 글 잘 쓰는 선생님은 아니었고 글 좋아하는 선생님이었으니까. 아이들 여럿의 글을 모으는 것은 쉬웠지만 한 아이와 매주 글감을 정해 글을 쓰고 나눈다는 것은 어쩐지 조금 어렵고 어려운, 그런 일이었다. 부담스럽다기보다는 조금 어려웠네요, 하며 고쳐줄까 하다가 아직도 곳곳에 선생티가 남아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줄까 싶어 멈추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전 조금 흥미롭기도 했어요. 게다가 J는 제게 특별한 제자였거든요.”


어떤 심리학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사람은 상대의 이야기에 집중하거나 흥미로울 때 몸을 상대방 쪽으로 기울인다고. 그와 반대의 경우엔 팔짱을 끼고 뒤로 몸을 젖힌다고. 기자의 몸은 이미 내 쪽을 향해 있었다. 글로 밥 벌어먹고사는 이의 촉은 분명 내 이야기가 자신을 ‘특종상’으로, 아니 이번 달 매거진 판매율을 치솟게 할 ‘이달의 기자’로 이끌어줄 것임을 직감한 듯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웃긴 마음이 들어 말을 있어나갔다.


“녀석이 열네 살 때, 그러니까 2023년에 처음 가르치게 됐어요. 그때는 그냥 평범한 남학생이었어요. 공부 좀 잘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성실하고. 애들하고 잘 놀고.”


중학교 1학년 시절을 아주 잠깐 풀어주었을 뿐인데 그는 반짝이는 눈으로 계속해서 무언가를 받아 적고 있었다. 책을 추천해 주고, 답장이 오고, 쪽지를 나누고, 그렇게 한 해를 보내며 나의 편견을 없애준 아이라는 그 지점에서 그는, 갑자기 펜을 내려놓더니 옆에 있던 찻잔을 치우곤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선생님! 너무 낭만적이에요. 이거 진짜 실화 맞죠?”


당사자가 풀어놓는 당사자의 이야기가 믿기 어려울 만큼 그 시절 J와의 이야기는 어딘가 낭만적인 구석이 있었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고 그저 기계처럼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조차도 어려웠던 상황. 예기치 못한 바이러스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차마 피어오르지 못해 메마른 모든 곳. 2020년대를 지배하던 회색빛의 세상에서 J와의 기억이 소중해 글로 적어 책으로 엮었다는 이야기까지 이르자 성미 급한 나의 인터뷰어는 급기야 내 말을 끊고 제 감정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직 채 버리지 못한 20대 시절, 날것 그대로의 언어로.


“헐. 대박. 진짜요? <중학생만 13년>? 그 책 아직도 있으세요? 보고 싶어요. 거기엔 J작가님과의 편지도 있는 거예요? 어머나. 나 완전 대박이잖아?”


격식을 차리지 않은 언어는 통통 튀어 내 주위를 맴돌았다. 나는, 공기를 타고 스며든 그의 말들에서 문득문득 수십 년 전의 학교를 느꼈다. 만났던 아이들은 모두 비슷했다. 편한 선생님인 내게 솔직한 그들의 언어를 보여주었다. 때로는 욕과 상스러운 말도 멈추지 못했다. 멈추지 않았다면 상처였겠지만 멈추지 못한 경우가 많아 웃으며 넘어갈 수 있었다. 답답한 현실 속에 숨통 트여줄 사람 1로 존재할 수 있음에 감사하던 시절들.


“그럼요. 진짜죠. 그 책은, 안타깝지만 지금 구할 순 없어요.”


아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한 그는 차라리 다음 이야기를 재촉하는 것이 이해타산에 맞겠다는 판단을 마치고서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런데요. 선생님. 도대체 무슨 글을 어떻게 쓰셨어요?”


돌려 말하는 것을 못하는 성격인 듯했다. 나는 두괄식보다 미괄식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나이 예순이 넘어도 두괄식 화법은 어지러울 때가 있었다. 글쎄. J와 나누던 글. 그걸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 사람. 사람에 대해서요.”

“사람… 이요? 사람? 사람에 대해서 뭐요?”


말끝마다 이어진 물음표에 답을 했을 뿐인데 수많은 물음표들은 나를 그 시절 그곳으로 이끌어 주었다. 2025년, 여름이 시작될 무렵 쓰게 된 우리들의 ‘사람’ 이야기.


“그때 J가 학생회장이었어요. 꽤나 열심히 하던 녀석이었는데 문득 주변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사람이란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글을 써 보고 싶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럼 우리 글감은 ‘사람’으로 하자, 고 결정했어요. 조금 추상적이긴 했는데 이야기 나누다 보면 뭔가 방향이 잡힐 것도 같았고요.”


“그래서 어떤 사람에 대해 쓰셨나요?”

“다양했어요. 내 삶에 영향을 준 사람, 영감을 준 사람, 내 곁에 있는 사람. 때로는 우리 모두가 아는 선생님, 우리 모두가 아는 같은 학년 친구. 그렇게 매번 주제를 바꾸었어요.”

“와…. 듣기만 해도 너무 재밌을 것 같은데 실제로 쓰시긴 힘들었을 것도 같고요.”


글 쓰는 사람만이 아는 고충을 이해하고 있구나, 이 기자. 믿음이 갔다. 적어도 당신은 유명인의 SNS를 그대로 긁어 오타와 비문이 넘쳐나는 기사를 쓰지는 않는구나.


“힘은… 들었죠. 그래도 뭔가 살아있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살아있는?”

“네. 그 당시 저는 마흔을 갓 넘긴 나이였고 아이는 어렸어요. 학교에선 중요한 부장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그 일이 너무나 많아서 새벽까지 집에서 일을 하다 잠들고 4시간도 못 자고 출근하기를 밥 먹듯이 했어요. 건강도 상하고, 우울감도 오고, 그래도 책임감, 성격, 뭐 그런 것 때문에 놓치를 못하고.”


걱정해 주는 눈빛이 와닿는다. 기자양반. 고맙지만 이제는 괜찮답니다.


“그때 힘이 되어준 건 그 글쓰기였어요. 살아있는 느낌. 뭐 그런 걸 받았어요. 알겠지만 밥벌이하려고 쓰는 글은 얼마나 삭막해요. 교사도 뭐, 똑같아요. 영혼 없는 공문서 작성, 매년 비슷하게 반복되는 학습지. 문득 그런 모든 반복되는 것들이 지긋지긋해질 즈음엔 꼭 한 주가 흘러가 있고 J와 함께 쓰기로 한 글감이 모니터 앞에 붙어있었어요. 매주 과제를 완성하기 위해 애썼죠. 힘이 들기도 했지만 행복했어요.”


“약속이 밀리거나 하진 않았나요? 처음엔 호기롭게 시작했다가 나중엔 흐지부지 되거나……. 보통 그런 경우 많잖아요.”


당연한 질문이었다. 맞다. 보통이면 조금씩 과제를 밀리는 경우가 많고 더 높은 확률로 흐지부지 되어 결국 서로 멋쩍어하며 ‘시간이 없어서 안 되더라.’며 웃어넘기는 것이, 분명 맞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J와 나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둘 다 너무 성실했고 성실했다. 늦게 제출할지언정 백지를 보내진 않았다. 성실함에 끈기를 더한 글쓰기는 졸업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와… 이쯤 되니 그때 쓰셨다는 그 글들, 한 번 보고 싶은데요?”


나는 가만히 옆에 놓인 가방을 만지작거렸다. 이메일을 받았던 순간부터, 커피숍에서 만날 약속을 잡은 순간부터 가장 먼저 찾아둔 것은 책이었다. J와 함께 쓴 2025년의 기록을 엮은 책. 한국을 떠나며 다 정리하면서도 남겨둔 딱 한 권. 언제고 들춰보며 나의 그 시절을 추억하고 싶어 남긴 한 권이었다. 내 시선이 닿는 곳을 보던 그는 더 이상 신입태가 나는 앳된 얼굴의 기자가 아니었다. 이젠 완전히 승리할 수 있는 사냥감을 확보한 야수의 그것이었다.


伏龍鳳雛


먼 옛날 수경(水鏡) 선생께서 이르시길 복룡(伏龍)과 봉추(鳳雛) 그중 하나만 얻어도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고 하셨도다.


하나 적로(的盧)의 변덕과 청룡의 목은 천하를 세 개로 나누는데 그쳤다.


이윽고 복룡과 봉추가 다시 재림하였으니 누군가 이릉(夷陵)에서 뜨거운 미소를 지으며 말하리라.


“수경의 말씀은 그른 것이 아니었구나.”




기자의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간 글은 생경하면서도 끌리는 것이 있었다. 한창 사람에 대한 시를 쓰고 누구인지 맞히는 글쓰기를 할 때의 일이었다. 삼국지 속 이야기를 활용해 쓴 시의 화자도 대상도 누구인지는 알겠으나, 왜인지는 몰라 답답해 난감했던 그때가 기억이 났다.




“선생님! 삼국지 진짜 재밌어요. 한 번 읽어보세요!” 하며 추천하던 J가 선했다. 녀석은 책 읽기를 좋아했고, 그래 ‘이상’을 좋아했다. 어느 날 갑자기 질문이 있다면서 “이상의 날개, 오감도를 아세요?”라고 묻기도 했다. 책을 읽어보마 받아서 주말 내내 읽고 글의 일부를 해석해 준 기억까지 밀려오기 시작했다. 과거. 아주 까마득했던 과거가 현재로 나타나 지금 내 앞에 있다.




“지금 J작가님의 모습으론 상상이 안 돼요. 뭐랄까. 약간 장난스럽기도 하고 철학적이기도 한? 종잡을 수 없는?”




확실히 성공할 가능성이 보이는 기자였다. 통찰력이 있었다. 몇 개의 에피소드에서 J의 성격을 간파하다니. 어리지만, 수많은 시간을 견딘다면 당신은 편집장이 되어있을지도 몰라. 그 세상에 내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J작가님의 버릇? 같은 거 있으셨을까요? 은근히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거거든요. 그런 게. 역사도 정사보단 야사처럼!”




“버릇이요? 음… 녀석이 자주 했던 말은 있어요. 기특한 마음에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하면 ‘아무거나요.’, ‘뭐든지요.’, ‘전 어떤 것도 좋습니다.’ 뭐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분명 취향이 없는 아이는 아닌데 맞추는 것 같다는 느낌도 좀 받았고. 그때 J랑 친해졌을 때라서 제가 한 번은 ‘너 금지어라고. 아무거나, 뭐든지, 언제든’ 이런 거 금지어다,라고 하면서 서로 웃고. 그랬어요.”




“와. 지금 작가님은 아니 변호사님이지. 암튼 J작가님은 애매한 거 정말 싫어하시던데.”


“아직도 (자기 스스로) 금지어일 수도 있고요. 뭐 그 정도 모범생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읏음)”


“아. 선생님. 진짜 너무 웃기세요. 은사님? 맞으신가 싶기도 하고요. 칭찬과 디스가 묘하게 섞였어. 그래서 더 진짜 같기도 하고?”




습관이 남아있었다. 학교에서 근무할 때에도 그랬다. 아이들이 내 말에 웃어주면 그게 그렇게 좋아 더 과장해 말하곤 했다. 말발 좋은 국어선생님. 수업이 지루하지 않은 선생님. 재밌는 선생님. 그 말에 열광했던 건 칭찬받고 싶은 어린 나였을 것이다. 이젠 그런 순수한 반응을 느낄 수 없던 내게 그의 반응은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인정하자. 나는 아주 많이 신이 나기 시작했다. 끝냈다고 생각했던 교사 시절의 내가 불뚝불뚝 나와 이제는 완전히 그 시절의 내가 되어버렸다.




“하하. 더한 것도 있었어요. 녀석이 좋아하는 음식은 망고였어요. 지금도 좋아하려나? 그걸 가지고 글을 썼는데 망고잼, 망고밥 등등 온갖가지 망고음식을 나열한 글을 제출하곤 했죠. 뭐 솔직히 말하면 급히 쓴 글이라 구조나 내용이 허술하긴 했지만 또래치곤 잘 써서 칭찬도 많이 해줬어요.”


“헐! 망고! 아직도 좋아하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그 책에서 봤거든요! 신라호텔 망고빙수가 최애시라고.”


“그래서 한 번은 망고에이드를 사준 적이 있는데 그것도 아무거나 먹겠다고 한 걸, 자꾸 아무거나,라고 말하면 아무것도 안 사준다,라고 나무란 적도 있어요. 뭐 J는 그러면 ‘안 먹겠습니다.’하는 애긴 했지만.”


“열여섯의 J작가님이 뭔가 눈에 그려지는 것 같아요. 바로 곁에 같이 있는 느낌?”


“먹는 것뿐 아니라 위트도 있었죠. 저는 녀석에게 늘 친구가 없어 어떻게 하느냐고 놀렸지만 사실 꽤 친한 친구들도 있었어요. 같이 부회장을 했던 ‘산초’도 꽤 의지했던 것 같고, 잘 지냈어요. 물론 J는 산초와 자신은 비즈니스 관계라고 끝까지 부인했지만. 뭐 어떤 비즈니스 관계가 방학식 날 같이 밥을 먹나요. 그거 친구라고 제가 계속 인정 좀 하라고 놀리기도 했죠.”




J는 은근한 고집이 있었다. 마음을 나누는 친구는 많지 않았지만 누구와도 두루두루 잘 지냈다.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는 자기 자신인 것 같은 아이. 누구에게 배웠는지 모를 재치도 남달라 교실에서 발언을 하면 모두의 시선을 받는 몰입감도 있었다. 문득, 그날 그때 수업이 생각이 났다.




“수업 때에도 돋보이는 편이었어요. 보통 J가 먼저 나서서 말을 하는 편은 아닌데 가끔 필요할 때 훅 치고 들어오는 게 그게 좀 재밌고 센스 있었달까. 그 판을 보고 끼어는 틈을 알아요. 그래서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딱 깔끔하게 놀다 빠지는 애였어요. 수업도 곧잘 들었고 필기도 잘했어요. 아 맞다. 약간 강박이 있었는데 형광펜, 볼펜 같은 걸 질서 정연하게 놓아야만 된다고 했어요. 전 또 그러면 약간 훼방 놓는 편이라서 일부러 흐트러고, 그러면 J는 아 선생님! 하면서 약간 울컥하고. 뭐 그랬죠.”


“선생님께서 장난을? 오. 선생님도 보통 아니셨군요.”




보통 아니다,라는 표현을 인생 처음 듣는다는 것을 알까. 이 사람, J는 간파했지만 나는 아직이구만. 기자님. 저처럼 보통인 사람이 이 세상이 흔한 줄 아십니까.




“한 번은 논증방식을 가르친 적이 있어요. 전 뭔가 재밌게 가르치는 것을 좋아해서 그때는 ‘빵’을 가져와서 그 빵을 얻을 수 있게 쌤을 설득해 보라는 미션을 주었죠. 다른 애들은 다 구구절절하게 사연을 늘어놓는데 녀석은 딱 한 마디 했어요.”


“뭐라고요? 궁금해요.”




달싹이는 입술에 꽂히는 시선이 정겹다. 수십 년 전 아이들도 내 손짓 하나에 내 한 마디에 울고 웃었지. 시험에 나온다, 이거 중요해, 힘들지, 조금만 힘내자, 너희들이랑 같이 수업하려고 선생님 진짜 새벽까지 열심히 준비했어. 분명 다음 말을 이어가야 하는데 머릿속은 그 옛날 수천번도 외쳤을 말들이 맴돌았다. 나, 그때 꽤 행복한 교사였구나.


“(…) 쿵.”


“네?”


“그게 뭐였냐면. 너무 배고파서 쓰러진 거래요. 그걸 표현한 거였어요.”


“하하하하하하. 그래서 빵, 받으셨어요?”


“제가 J랑 좀 친해졌다고 했잖아요. J가 센스 있게 잘 하긴 했는데 그렇다고 J를 주면 또 친해서 주는 거라고 아이들이 오해할까 봐 다른 방식으로 잘 한 아이를 줬죠.”


“아쉬워했겠어요.”


“그런데 자식이 그런 티를 안내는 애예요. 그리고 나중에 뭐 맛있는 것도 많이 사줬으니 그걸로 퉁-”




받아 적기를 멈춘 그였다. 몰입. 그래 당신은 내 이야기에 몰입했구나. 뿌듯했다. 수업 중에도 아이들은 내 이야기에 집중하면 필기를 멈추었다. 선생님이 중요한 건 집어 줄 테니 지금은 쌤 말 들어. 쌤은 조용한 관종이거든. 그 순간이 자꾸만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성실한 청중을 위해 더 솔직한 에피소드가 필요했다. 남는 건 기억력과 추억뿐. 매년 기록한 일기는 오늘을 위함이었으리라.


“필름 카메라. 아세요?”




건넨 질문에 당황한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마도 2020년대 그 언저리에 태어났을 그는 보도 듣지도 못했을 물건임은 분명했다. 필름을 끼우고 사진을 찍고, 필름을 다 쓰면 촤르르르. 돌아가는 그 감성적인 물건.


“J가 어느 날 동묘에서 필름 카메라를 샀다고 하더라고요.”


“어머나!”




감성적이야,라고 말하려는 제 입을 두 손으로 모아 가린 그는 더욱 내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글을 쓰고 망고를 좋아하며 재치가 넘치지면서도 약간의 완벽주의를 지닌, 필름 카메라를 쓸 줄 아는 중학생? 이건 특종을 넘어선 서사였다.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졸업을 하면 보기 힘들 테니, 열심히 추억을 남기자고요.”


성실한 J는 꾸준히 나와 내 동료를 찍어주었다. 피사체가 되는 것이 끔찍이도 싫은 나는 순전히 J의 부탁이어서 들어주었다. 퇴근 3분 전에 찾아와 카메라를 들이밀어도, 비에 앞머리가 다 젖어 소위 말하는 ‘떡진 머리’가 되어 사진을 찍기 싫은 날에도 J는 어김없이 찾아와 선생님, 필름이 남았어요, 했고 나는 “야. 너는 필름 쓰려고 나한테 오는 거지?” 하며 말로만 타박을 주곤 이내 브이를 그리거나 손하트를 만들어 주었다. 남는 건 사진 밖에 없긴 해. 그렇긴 하지. 하면서.




그 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흔적이 녀석의 필름 카메라에 담겼고 맨들 거리는 인화지엔 나의 추억이 피어올랐다. 애정하는 동료와의 추억은 오래 남았고 나는 아직도 그 사진들을 도쿄의 집에 몇 장. 한국의 집에 몇 장 보관하고 있었다.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시절이기에.




- 지이이잉




갑작스럽게 울려댄 진동은 나를 다시금 현실로 데려다주었다. 모르는 번호였다. 한창 옛 생각 중인데 난데없는 전화라니. 앞에 앉은 양반에게도, 나에게도 예의는 아니었다. 길게 이어지는 울림을 멈추려고 종료 버튼을 누르려는데 문자가 연이어 한 통 도착했다. 참을성 없는 발신자는 그 새를 못 참고 메시지를 남겼으리라.


- 김지윤, 선생님 맞으세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2025년에 선생님과 함께 글을 쓴……


중요한 장면에서 끊어버린 예고편 같은 문자였다. 2025년에 선생님과 함께 글을 쓴, 아이. 공손하지만 자신감이 배어있는 메시지.


J였다.




흔들리는 눈빛을 놓치지 않는 야수의 그것을 닮은 기자는 내게 호기심 어린 말투로 물어왔다.


“전화받으셔도 되는데. 누구… 세요?”




예전 같았으면 홀랑 넘어가 사실대로 말했겠지만 긴 시간 동안 나의 청중이 되어준 그를, 아니 이 이야기를 듣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 바로 원고를 써 버릴 그를 살짝은 골리고 싶어졌다. 아주 잠깐만. 어차피 그다음 에피소드도 당신에게 드릴 테니. 오늘은 아주 잠시만.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우리 어디까지 이야기했죠?”


식어버린 커피에서도 은은한 향기 배어 나왔다. 삶이란 그랬다. 흘러버린 시간은 잊혀 사라진 것 같아 아쉬울 적이 많았다. 허나, 그렇게 곁을 떠난 인연도, 지나간 시간도 무언가를 남기고야 말았다. 은은한 향이든, 짙은 그리움이든.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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