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다시없을

나의 이야기

by 안녕



마침 나는 글을 좋아했고,

으레 늘 그렇듯 학생들과 글을 쓰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글들이 쌓이기 시작하자 조금씩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한 편 한 편, 허투루 쓰기 싫어 애쓴 하루들이 많아졌다.

딴에는 본업보다 더 열심히 임했던 날들도 있었다.




‘과연 얼마나 쓸 것이 있을까?’ 생각했던 것이 무색하게

주변의 모든 것은 글감이 되었다.

우리를 스쳐간 인연, 상처를 준 인연, 그리고 성장하게 한 인연.

우리를 만든, 아니 나를 만든 것의 대부분은 사람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다 보니

한 권의 책이 되었다.






가장 공을 들여 쓴 글이 무어냐 묻는다면 당연히



<그 여름의 글쓰기>이다. 어쩌면 인생에 다시없을 소중한 제자이자, 이 글쓰기의 시작이자 끝인 제자 ‘J’에 대한 나의 마음을 담아 한 편의 소설로 완성했다. 소설 속의 나는 교사를 그만두고 일본에 가서 살고 있고 J는 성공한 변호사가 되어 있는데, 부디 나의 상상이 현실이 되길 바란다.



재밌게 쓴 글이 무어냐 묻는다면 <달빛 아래 세자 저하>. 한 장의 사진을 두고 상상한 이야기를 쓴 과제였는데 공교롭게도 J가 고른 사진과, 내가 고른 사진 속 인물이 같았다. 같은 인물을 바탕으로 나는 조선시대를, J는 미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쓴 게 재밌었다.


현생에 ‘현’과 ‘윤’은 같은 반이다. 나는 요새 매일 그들을 만나며 놀리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아픈 기억을 다룬 <차라리 선 넘는 드립이 낫겠어>는 후속으로 이어진 내용이 더 마음 아픈 글이다. 소통의 부재로 매 순간 힘들게 하는 교실 이야기인데 그 이후 나는 그 반에서 눈물까지 보이고 말았다. 여전히 힘들고 아프지만 스스로 극복하는 연습 중이다.



J의 글에서 가장 좋았던 것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미완성 작품(진행 중)>이다. 이 책의 제목이자, 녀석의 가치관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 읽을수록 곱씹게 되는 무언가가 있다. 열여섯의 나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공부하는 기계였는데 J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나름의 가치관을 지니고 있음에 감탄했다.



재밌었던 것은 단연코 <공갈>이다. J에게는 무척 잘 맞을 것 같은 친구 K가 있는데 두 녀석이 대화하는 것을 들어보면 정말 시트콤이 따로 없다. 내 보기엔 서로 지적인 자극을 주는 존재임에 분명한데 매 순간 너무 치열하게 부정하는 것을 보면, 그 역시 놀리는 재미가 있어 나는 쉬는 시간마다 두 녀석 사이를 얼쩡거린다.



읽으며 마음이 아팠던 적도 있다. <쳇바퀴> 같은 글은 ‘축제’를 주제로 다룬 나의 <좋아해!!>와 달리 무거워서 안쓰러웠다. 학생회장을 맡고 있는 J가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것을 알기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 성격 상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 못하고 본인이 다 하는 것을 보며, 예전의 내 생각도 났더랬다.






글 쓰며 잃은 것은 없고 얻은 것만 가득하니 이것은 순전히 이득만 넘치는 작업이다. 무엇보다 소중한 제자 한 명을 얻었다. 담임으로서 상담하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 있는 소통을 했기 때문인지 어떤 ‘전우애’ 같은 것을 느낀다. 이제 몇 달 후면 졸업한다는 것이 조금 많이 아쉽다. 나는 분명 펑펑 울 것 같은데 녀석은 눈물이 없는 편이라서, 걱정(?)이란다. (이후 제이는 수차례 설득 끝에(?) 인공눈물을 챙겨 오기로 했다.)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써본 것도 좋았다. 에세이만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시와 소설로 마음을 표현하니 새로웠다. 특히 ‘소설’은 내가 구축한 세계 속에 인물이 뛰어놀 수 있게 판을 깔아 준다는 점에서 너무나 소중하다. 심심해서 적어둔 <My love.mp3>, 그리고 독자들의 후속 이야기에 대한 요구가 빗발치는 <달빛 아래 세자 저하 2>, <그 여름의 글쓰기 2>는 언젠가 꼭 공개할 예정이다. (아마도?)



이 글쓰기는 아마도 겨울이면 끝이 날 것이다.

타버릴 듯한 여름에 시작해서

베일듯한 겨울에 끝날


우리들의 글쓰기.



우리들의 미완성 작품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25년 10월 25일 토요일

미완성 작품을

드디어 완성한 날, 서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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