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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없이

by 안녕

이번엔 남편이다.


며칠 전부터 이상하다고는 했다.

목이 아프고, 열이 날듯하고,

몸이 쑤신다고.


독감 주사 맞았으니

괜찮겠지 않느냐며

성급히 일러두곤


아이 챙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밤새 39도를 넘나들던 남편은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떠는

오한까지 겪고 나서야

독감 확진을 받았다.


평온한 하루는

한 순간도 내어줄 수 없다는 듯이

우리 집에

바이러스가 떠돌고 있다.


그중 유일한 생존자인 나는

월요일엔 무조건 출근을 해야 하는 탓에

매 순간 긴장 중이다.


코로나가 한창 세상을 휩쓸던

그 시절처럼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며

수시로 손을 소독하고 있다.


조금 전에도 거실을 쓸고 닦다가 문득,

바쁘게도 살아온 우리 가족들,

이렇게라도 쉬라는 건가,

하는 생각이 스친다.


아이는 여덟 살이 되어

우리는 여덟 살을 키우는 부모가 되어

한숨도 쉬지 못하게 달려온 시절이 1년이다.


아침마다 울고

밤마다 훌쩍이고

때때로 아프던 아이가 중심이 된 우리는

어느샌가 내 마음 돌볼 시간조차

내어주기 힘들어졌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아픈 것도 공식적으로 인정받아야만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독감입니다.

5일 동안 격리 권고합니다.


라는 의사의 진단서 한 장이 있어야

모든 짐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것일지도.


그러면 아직 진단서 한 장 받지 못한 나는

목이 칼칼하고

머리가 띵하게 아파 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쉴 수는 없는 것.


엄마는 끄떡없어.

걱정 마. 나는 안 아파.

하면서도 괜스레 불안한 마음에

마스크 한 장 고쳐 쓰는 것.




그 옛날 언젠가.

엄마에게 물은 적이 있다.


"엄마. 엄마는 나 키울 때 언제가 제일 힘들었어?"


워낙 표현이 적고

뚝뚝한 엄마는

한참을 곱씹다가

담담히 뱉어냈다.


"나 아파 죽겠을 때. 그때 약 먹으면 졸리고, 병원은 갈 수도 없고.

너는 돌봐야 하고. 죽겠더라. 그때."


엄마가 되어보니 아는 마음.

찌르르, 전해지는 아픔이었다.


편히 쉴 수 없었을,

약 먹고 겨우 눈 붙이면서도

선잠을 자며 나를 돌봤을

서른 즈음의 엄마가 안쓰럽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그때의 엄마나

지금의 나나

아픔 앞에서 두려운 건

변함이 없다.




씁쓸한 마음이

빗자루질에 쓸려 나간 먼지와 함께

거실을 부유한다.


그저 이번 주말을 무사히,

무탈히, 보낼 수 있기를.


일요일 저녁에는

식탁 앞에 둘러앉아

소박한 저녁 한 끼

편히 먹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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