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by 안녕

꼬박 3일을 아팠다.



목요일부터 뒤통수가 핑그르르 돌고

자칫하면 푹 하고 쓰러질 것 같은 것을

애써 무시하고 열심히도 살았다.



이건 아니다, 싶었던 게

금요일 아침이었다.

쉬고 싶었지만 해야 할 것이 넘쳤다.



26일에 예견된 일을 해내기에도

벅찬 하루들이라 쉼이 들어찰 자리가 없었다.

마침 아이들과 한 달 동안 열심히 찍은,

영상도 봐야 했다.



"선생님, 우리 영상은 언제 봐요?" 하며

물어 대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핑계를 댈 수 없었으니.



열심히 그러모은 간식을 일일이 포장하면서부터

속이 배배 꼬이기 시작했다.

울컥, 울컥, 조금만 방심하면 자꾸만

속에서 물컹한 것이 올라올 것 같았다.



애써 감추며 그렇게 2,3교시를 마쳤다.

영상을 보고, 투표를 하고, 사진을 찍고

상장을 건네며, 보낸 2시간이 마치 두 달 같았다.



쓰러질 듯 보건실로 달려가 내리 2시간을 자고

꾸역꾸역 5,6교시를 버틴 후,

도망치듯 학교를 빠져나왔다.



가던 병원까지 갈 힘이 없어

동네 병원에 가 급히 약을 타 먹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띠리리링-



아차 하면 아이 놓칠까 싶어

달려간 학원 앞에서 몇 번을 주저앉았다.

지긋지긋한 두통이었다.



언제부턴가 달에 몇 번은 두통이 찾아왔다.

웬만한 약으로는 듣지 않아

대학병원 신경과에도 다녀왔지만

별다른 차도는 없었다.



대부분 행복한 마음으로 살지만

이렇게 두통에 시달릴 때면

우울의 늪이 극에 달했다.

이렇게 평생을, 하는 생각까지 다다르면

그만 모두 놓아버리고 싶은 생각까지도 들었다.



매일 아침 눈을 들 때,

머리를 짓이기는 듯한 아픔이 없음에 감사하는 삶은

유쾌한 경험이 아님에는 분명하니.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한 건

일요일이 다 되어서다.

토요일 하루를 꼬박 자고, 자고 자고 또 자고.

아이가 옆에서 놀자고 달려들어도

엄마는 지금 너무 아파서 아무것도 못하겠다고,

미안하다고 울먹이다 잠에 빠져드는 것밖에는 못하다가

저녁 무렵 겨우 정신 차리고 만든 저녁밥을 깨작이다

다시 잠들고 깨다를 반복하다, 겨우 가라앉기 시작한 것은



일요일 새벽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제야 눈이 떠지고

천장이 보이고

그 밖의 하늘이 보이고

옆의 아이가 보였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에 등허리 한번 쓸어주고

볼에 뽀뽀한 번 해주니

눈에선 또르르, 눈물이 흘렀다.



약한 엄마가 된 것이 아니라

태생이 약한 사람이었다.

숨 넘어갈 듯 아파

유치원도 1년을 쉬었다.



약한 사람이 엄마가 되니

아이 앞에서 자꾸 아픈 모습을 보인다.

그게 싫어 꿋꿋하고 싶은데

악착을 떨수록 몸은 고꾸라질 때가 많았다.



8년. 제 삶의 대부분을 엄마의 아픈 모습을

보는데 힘쓰던 아이는,

어느 날 저녁엔가 그림 그리던 제 옆에서

잠든 내게 다가와 가만히 안경을 벗겨주었다.

일찍 철이든 아이 곁에는 꼭, 부모의 그늘이 있었다.



아픔이 가시면 양껏 놀아주겠다고 마음먹곤

하지 못한 세월이 가득이다.

오늘도 그렇다.

완전한 회복이 아니기에 불안해서

뭐 하나 신명 나게 놀아주지 못했다.

아픈 건 내 몫이지 아이의 것이 아닌데.

나는, 내 아픔을 아이에게까지 나누려고 했다.

어른 되려면 멀었다.



미안한 마음에 무리해서 싼 김밥을

아이는 맛있게도 먹어주었다.

치즈를 듬뿍 넣어달라는 야무진 바람에

나는 먹지도 않는 체다 치즈를

가득 담아 김밥을 돌돌, 꾹꾹 말아주었다.



동그란 모양에 주황, 노랑, 분홍이 훤했다.



저녁을 물리고

팔 베개 위에 곤히 잠드는 녀석을 뒤로하고

나와, 다시 나는 멀쩡한 어미가 되어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이제야 자리에 앉는다.



학교에서 하는 거 반만 해라,

애들 가르칠 때 보이는 다정함 반만 보여라,

매번 듣던 말은 잔소리가 되어 귓등으로 흘렸다.



제자들에겐 한없이 살가우면서

내 아이에겐 어쩐지 뚝뚝해지는 마음이 얄밉다.



결국 내 커리어를 위하는 것이면서

무리하다 아프면 아이에게 짜증을 풀어대는

모자람이 우습다.



결국, 내일이 되면

누구보다 엄마를 찾고 사랑할

아이 앞에서, 다시금 행복할 내가,

참, 어리석다.



머리가 맑고

아픔이 걷힌

그래서 마음이 사무치는,

그런.



꼬박 3일을 앓았다.

앓고 나니 보이는 것 때문에

마음이 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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