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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런 관계는 끊어 주기로

by 안녕

수업이 끝나자마자 달려 나가

택시를 잡았다.


하필이면 데이터가 없어

잘 잡히지 않아 발을 동동거리는데

제자 녀석 한 놈이

"핫스폿 켜드려요?" 하며

무심히 도와준 덕에

약속 시간에 닿을 수 있었다.


숨 고르며 올라간 교실엔

딸아이의 담임 선생님께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아이의 자리를 가늠하며

작디작은 의자에 앉아

자세를 고쳐 앉았다.


모든 이야기를 쓸 수 없음에

안타까울 뿐이다.

그저 분명한 것은

우리 딸이 꽤 오랜 기간 동안

다른 친구에 의해

심리적인 괴로움을 겪었다는 것.


"너, 쟤(우리 딸)랑 놀지 마."

"놀면 절교야."


하며 갑자기 끊어버린 관계.

늘 같이 다니던 공간에서

이유 없이 흘러나오던 냉기는

아이의 섬세한 마음을 콕콕

찌르기에 충분했다.


더위가 무르익던 6월부터 시작된

관계 통제가 ('절교놀이'라고 할까 하다가

가벼워 보여 무거운 단어로

감정을 눌러써 본다.)

9월, 그리고 11월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고

이건 아니다 싶어 바로 개입하기로 했다.


태권도 관장님께 말을 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면

아예 물리적 거리 두기를 하는 게 맞겠다

막연히 생각했는데,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놀라신

담임 선생님의 첫 번째 조언도

거리 두기라니.


한번 더 확신한 셈이다.


이어진 조언은

조금 더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도와주라는 것.

남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내 말이 상처가 될까 봐,

고민하는 마음의 화살이 결국

제 마음을 찌르는 녀석인지라

육아서에서 말하는 '배려'와 '이해'는

충분히 잘하고 있는 아이인지라,

지금부터는 싫은 소리 하는 법,

거절하는 법을 가르치라는 것.


이야기를 나누는 40분 동안

뜨겁게 달궈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작디작은 교실을 나오는 순간,

생각은 누구보다 깊어져 있었다.


비 오기 직전, 습기 가득 담긴

바람이 스치는데

나는 어쩐지 마음 한편 쓸쓸함이

피어오르는 걸 애써 무시한 채

아이를 데리러 학원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엄마, 하며 달려오는 아이를

안는 순간.


잊고 있던

그 시절의, 나를.

만나고야 말았다.


여덟 살.

절교의 대상이었던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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