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가 둔한 탓에
냄새를 잘 맡지 못한다.
코로나에 세 번 걸린 이후로
후각을 상실한 삶을 살고 있다.
벌써 4년이 흘렀다.
향기를 좋아하지만
향을 맡지 못하니
사는 것은 사치였다.
아이를 키우면서부터는
자극적인 향수가
아이에게 해가 될까 싶어
자제하고 또 자제했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을
핑계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진짜 이유는
치장하는 데에는
영 젬병인 탓이 크긴 하다.
시작은 지난번에 우연히
선물로 받은 향수 덕분이다.
잊고 지내던
어린 시절의,
대학생 시절의,
사회초년생 시절의
추억이 피어났다.
화장은 서툴러도
꼭 한 번은 향으로
나를 감싸려고 했던
그 시절들이
몽글, 몽글.
마침 방문한 서점에선
이름 모를 향수를 시향 할 수 있었고
그중 마음에 드는 것 몇 개를
골라두었다.
언젠간 꼭,
반드시 꼭.
"네가 말한 향수 가게가 어디야?"
"추운데...?"
"소화도 시킬 겸 가자!"
눈 내린 다음 날의
골목길은
아직 채 녹지 않은 눈으로
미끄러웠다.
찬 바람은 매서웠고
아이는 연신 다리가 아프다며
울상이었다.
서울의 한 골목길에서
발견한,
향수 가게.
딸랑, 하고 들어간 그곳에선
예상치 못한 환대와 함께
마음을 흔들어 놓은
향수들이 무려 100종 가까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만 너무 행복해
소리를 지를 뻔, 하였다.
선셋 그레이프푸룻이라는
향이 다른 99가지의 향보다
우선하였고,
나는 오랜만에 실로,
정말 오랜만에
나를 위한 향기를
손에 얻었다.
아주 예전부터 유난히
그런 것들이 좋았다.
남들이 다 아는 브랜드의 것보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발견한 가게에서 찾은 것.
모두가 원하는 화려한 반지보다
플리마켓에서 포크를 변형하여
만든 반지.
누구나 다 보는 베스트셀러보다
서점 구석진 서가에 꽂힌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로맨스.
그날,
눈 내린 골목에서
나는 또 한 번
내 취향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향수가 담긴 봉투를 들고
지하철의 덜컹거림을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힘든 줄을 몰랐다.
아직 열지도 않은
향수에선
짙은 자몽향이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해가 뉘엿뉘엿 이별을 고하고
사위가 어둑해지는
겨울
나 혼자만
여름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 여름 속에
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