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사실 아직 8월이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더워 무섭다. 당장 내일부터 얼마나 더 더워지려고 그러나. 8월이 오는 게 무섭다. 떠나가는 7월의 마지막을 붙잡고 싶다.
꼭 보고 싶은 책이 있었다. 마침 동네 도서관에 있어 빌려와야겠다 마음먹었다. '망태 할아버지'를 핑계로 딸내미를 재운 후,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고, 어중간한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더위에 맞서는 마음가짐으로 도서관을 향했다. 인심 쓰듯 남편 몫의 반납 책들도 가방에 넣고선.
시원한 도서관에서 찰나의 행복을 만끽한 후, 책가방을 메고 집으로 향하는 길.
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이건 말도 안 되는 더위다. 이제 지구가 망하려나 보다고 구시렁구시렁대며 걸어가는데, 뙤약볕의 한가운데 아주 작고 까만 실밥 같은 게 군데군데 보인다. 이게 뭐야 싶어 눈을 비비니 한 걸음에 하나씩 발에 차인다. 도대체 누가 이런 걸 길에 버리는 거냐며, 짜증을 내고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다 말라비틀어져버린 지렁이의 반쪽이다. 나머지 반쪽은 아마도 이 길의 끝 어딘가에서 다른 누군가의 발에 차이고 있을 것이다. 까만 실밥의 정체가 지렁이였단 사실에 갑자기 숙연해진다. 짜증 낸 나의 옹졸함이 부끄러워진다.
다시 주변을 보니 마르고 말라 이제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지렁이들이 군데군데 널려 있었다. 아. 지렁이구나. 시원한 빗물이랑 새벽이슬 맞으러 나왔다가 미처 돌아가지 못한 지렁이구나.
아주 어릴 적, 비가 오는 날이면 땅 위로 지렁이들이 기어 나오곤 했다. 다음 날, 비가 그치고 햇빛이 쨍하게 내리쬐면 미처 땅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지렁이들이 볕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꿈틀거렸다. 어릴 땐 훨씬 용감했던 나는 지렁이를 손으로 잡아 축축한 땅 위에 올려주었다. 잘 살아, 다시는 혼자서 나오지 마,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그런데 지금의 나는, 지렁이를 도와주기는커녕 징그럽다고 피하기에 바쁘다. 비 오는 날이면 잔디밭이나 숲 속에서 튀어나와 행복을 만끽하는 녀석들을 밟을까 봐, 그 물컹한 느낌을 느낄까 봐 겁이 나 전전긍긍하기에 바쁘다. 그러면서도 딸에게는 "지렁이는 참 소중한 존재야"라고 어른스럽게 말하기에 바쁘다.
까만 실밥처럼 변해버린, 나와 만나기 전 이미 생을 마감한 지렁이 조차도 불쾌해하는 나는 어쩐지 어린 시절의 나와는 다른 어른이 된 것만 같다. 돈은 많이 벌지 못해도 순수하고 따뜻한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지금은 돈도 잘 못 벌면서 마음까지 새까맣게 변해버린 어른이 된 것만 같아 그게 더 서글프다. 친구들과 거짓 없이 진심을 나누던 모습은 사라지고 어느새 앞에선 적당히 맞장구 쳐주며 뒤에선 살짝 흉도 볼 줄 아는 그렇고 그런 어른이 된 것만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
나는 검게 물들었는데 작디작은 지렁이는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구나. 순간, 울컥, 하고 가슴속에서 무엇인가가 올라온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자연과 그 속에서 각자의 삶을 지켜나가며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반면에, 하루만 지나도 어제와는 다른 마음을 갖는 시시각각 변하는 내가 있다.
나도 저들처럼 한결같고 싶다.
그렇다면 내 삶의 어느 순간을 '있는 그대로' 유지하면 좋을까.
그런 순간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솔직히 인정하자. 지렁이가 나보다 낫다.
내가, 지렁이보다 못하다.